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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9 나의 식인 룸메이트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 - 이종호 외 9인 1
  2. 2008.08.19 080731 드로잉쇼 6
  3. 2008.07.26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 최혁곤 외 1
  4. 2008.05.18 스탠드 1 - 스티븐 킹 2
  5. 2008.03.31 [문학 및 만화]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2
2008. 8. 29. 15:01

나의 식인 룸메이트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 - 이종호 외 9인

나의 식인 룸메이트 - 8점
이종호 외 9인 지음/황금가지



성경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말이 있었던가.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그 세 번째 시리즈, '나의 식인 룸메이트'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머릿속에 언뜻 스친 말이다. 처음 책을 보기시작했을 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었을까, 이전 작품들보다 재미없는 건 아닌가 싶었서 며칠 손에서 떼놓고 있었는데 웬걸,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에 쏙쏙 드는 작품들이 계속 나타나주시니 '완소'를 외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달까? (방금 정확한 인용을 위해 검색해보니, 욥기 8장 7절의 의미는 그다지 좋은 의미에서 쓰인 게 아니다. 하지만 본의미를 알았다 하더라도, 나는 읽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좋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번 공포문학 단편선 세 번째 이야기는 이제까지의 시리즈와는 다르게 특정 한 작품을 표제작으로 내세우고 부제를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으로 붙인 점이 눈에 띈다. 다만 표제작은 신지수씨의 나의 식 룸메이트지만 작가는 대중성 높은 이종호씨를 대표로 내세운 게 배신 아닌 배신감을 안겨준다는 게 흠 아닌 흠으로 보인다.


해설조차도 들어있지 않고 오직 작품만으로도 450페이지에 달하는 막강한 두께를 자랑하는 세 번째 이야기에는 열 명의 작가의 열 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제까지의 시리즈에서 봐왔던 눈에 익은 작가도, 처음 보는 낯선 작가도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우선 표제작, 나의 식인 룸메이트. 전혀 원치 않는 룸메이트를, 그것도 사람이 아닌, 사람을 식량으로 삼는 괴상한 존재를 룸메이트로 갖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 기대가 컸던 탓일까, 그냥 밍숭맹숭하게 읽혔다. 어쩌면 룸메이트의 존재는 주인공의 무의식의 표출은 아니었을까?

 다음 이야기 장은호의 노랗게 물든 기억. 어린 시절 사소한 실수, 혹은 질투로 친구를 저 세상으로 보낸 사람이 그로 인해 사고를 겪게 되고 그 죄를 평생 짊어지고 사는 이야기다. 어린 나이에 저지른 잘못, 그로 인해 느끼는 죄책감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후반부에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다크나이트의 하비 던트의 모습이 겹쳐졌다고 해버리면 스포일러가 되버리는 셈일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신진오의 공포 인자. 주제 자체에 완전 공감할수는 없지만 소재 선택에 10점 만점에 13점을 주고 싶은 소설. 어느 날 지구를 휩쓰는 공포증. 원인도 치료법도 알 수 없는 이 병은 마치 중세시대의 흑사병 마냥 지구를 잠식해간다. 가벼운 감기 기운으로 시작해서 평소에 자신이 두려워하던 것이 자신을 덮치는 환각 상태에 시달리다가 그 상태를 극복하거나 혹은 환각에 지는 사람들. 환각을 이겨낸 사람들은 가족애를 통해 환각을 이겨낼 수 있었으니 가족의 사랑이란 정말 위대한 것일지도. 개개인이 느끼는 공포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을 소재로 사용한 부분이 정말 맘에 든다.

어린 시절에 들은 괴담인지 귀신이야기 중에서, 밤에 밖에서 귀신이 자기를 부를 때 거기 대답하면 귀신에 홀려서 죽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명희의 담쟁이 집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이 바로 그 이야기. 우애가 좋던 자매가 동네의 흉가에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읽는 내내 주인공이 나이에 비해서 너무 조숙한 건 아닌가 싶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명희"라는 이름 덕에 혼자서 "뭐야, 이 작가 소설에 자기 등장 시킨거야?"이러면서 키득키득 웃으면서 본 소설.

엄성용의 스트레스 해소법. 요즘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고 있기에 이 사람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나 더 눈여겨 봤던 작품. 대형 마트 인테리어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 성격이 순하고 소심해서 늘 당하고만 사는 그는 스트레스로 미치기 일보 직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어느 순간, 그의 머릿속에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귀를 귀울인 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행동들을 하지만 결국 그 행동들은 그를 파멸시킨다. 사무직이면서도 서비스업에 가까운 직업을 가진 나는 더 끄덕끄덕 하면서 주인공의 스트레스 주범인 일안하는 동료와 진상 고객의 행동에 같이 분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길어서 초반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점이 좀 아쉽다.

한 편의 좀비영화가 생각나는 김준영의 붉은 비. 평소에 길가면서 닭둘기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으악"하고 비명을 지르는 나기에 보는 내내 소름이 오소소 돋았던 얘기. 과연, 그 붉은 비의 정체는 정말 뭘까?

보면서도, 보고나서도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던 전건우의 선잠. 반대편에서 돌진해 온 차 때문에 일어난 교통사고, 그 후 사라진 그녀의 존재. 대체 진실은 뭘까? 어디서 얼핏 이런 얘기를 본듯도 한데 그래도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완전 몰입해서 읽어내렸다. 반전이 드러난 후 에필로그로 나오는 그와 그녀의 첫만남. 나도 모르게 "어떡해!!"를 소리내서 말할 정도로 가슴이 너무 저려왔다. 정말 나는 이런 류의 얘기에 약한가보다.

실제 있었던 신문기사를 재구성한 이종호의 은혜. '보험금'얘기와 '여자' 얘기에 어째선지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이 생각났다. 사람의 욕심이란 정말 무서운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던 이야기.

황희의 얼음 폭풍. 예전 벽 곰팡이에서도 미국으로 건너간 가족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이번 얼음 폭풍도 이민간 가족의 얘기를 하고 있다. 갑자기 쏟아진 폭설로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카지노에서 진 빚으로 인해 변해버린 남편. 그 가족의 파멸을 보면서 씁쓸함만이 느껴졌다. 소설의 마지막 문구, '오직 살아있다는 것만이 공포였다.'가 머리에 달라붙어 떠나지 않는다.

마지막 이야기 김종일의 불. 누구나 어린 시절 친구와 했을 법한 비밀 얘기, 그리고 "이거 다른 사람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돼."하는 약속들. 그런 에피소드와 왕따문제, 그리고 자연발화 현상을 결합시켜서 만들어 낸 오싹한 이야기가 김종일의 불이었다. 우명희의 담쟁이 집에서의 주인공과 같이 똑같이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지만 불의 주인공이 더 어린아이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인을 발화시키는 능력의 전이라니, 예전 강풀 만화에서도 저승사자의 능력이 정의되지 않았었던가?


매년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는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 이번 시리즈에서는 '공포'라는 장르 안에 묶여 있기에는 아쉬운 이야기들이 보였다. 단독으로 나서도 충분히 훌륭한데 장르문학의 옷을 입고 있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내가 괜시리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거다.

이제 매년 여름이면 으레 '공포문학단편선'이 나오겠구나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올해는 바빠서 여름이 다 가고나서야 책을 손에 쥘 수 있었는데 늦게 읽은 게 미안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내년에는 또 어떤 작가들이 어떤 이야기로 나를 즐겁게 해줄까?

2008. 8. 19. 08:53

080731 드로잉쇼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당첨되고도 날 당황케 했던, 약속을 잡았다가 취소했다가 결국은 가게 된 드로잉쇼.
다녀온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니 시간이 빠르다는 건 역시 변명밖에 되지 않으려나^^;

여튼, 뒤늦은 드로잉쇼 리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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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장소인 대학로 질러홀, 처음에 티켓박스 찾는다고 약간 헤매다.
설마 저기서 티켓을 배부할 줄이야,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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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질러홀 전경, 저 화살표대로 해서 지하 2층인가까지 내려갔던 것 같다.
저 건물 윗층은 온통 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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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떨어진 드로잉쇼 표!!
지금 보니 공연 티켓은 영화 티켓이랑 다르게 꽤나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완전 넓은 손바닥 지못미.orz

C블럭은 무대에서 봐라봤을 때 1층 왼쪽 사이드, 15,16번은 오른쪽에 치우친 자리였던가 가운데 자리였던가;
사이드라 약간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워낙 가까워서 공연 보는데 무리 없던 자리였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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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쳐 계속 짜증만 내던 효정.
오빠랑 영상통화 하면서 조금 기운을 차리는 듯.^^;


밖에서 30분쯤 대기하다가 입장 시간 되서 입장. 내부는 촬영 금지라 그저 핸폰이든 디카든 꺼낼 엄두 못내고 그저 조용히 지켜볼 뿐.

총 공연시간이 100분 좀 안됐던 것 같은데 시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갔다고 하면 역시나 상투적인 표현 밖에 되지 않더라도 사실이었음.

예전 티스토리 이벤트페이지에서 제일 먼저 내 눈에 꽂혔던 건 "넌버벌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 생각해보면 난타나 점프 같은 공연들도 넌버벌 퍼포먼스임에 틀림없는데 그 당시에는 넌버벌퍼포먼스라는 어휘가 마냥 생소하고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월E'라는 영화를 봤는데 대사는 그닥 많지 않고 대부분의 전개가 주인공들의 몸짓으로 전개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드로잉쇼가 생각났었다는 사족.ㅋㅋ;

드로잉쇼라고 해서 주구장창 "그림"만 그릴 줄 알았는데 회화의 여러 기법을 사용했었으니 "미술"쇼가 더 그럴듯할지도 모르겠다. 종이나 철판에 그냥 빠른 손놀림이 지나가면 완성되어 있는 그림들, 거기에 조명과 음악, 특수효과가 더해지니 분위기가 반전되는 작품이 완성되기도 했었다지. 그림그리던 세 분 가운데 계속 혼나던 한 분이 허밍으로 부르던 '돈 맥크린의 빈센트'는 완전 큰 웃음 선사해주셨고 말이다. 나름 로맨틱한 노래인 빈센트가 그렇게 코믹하게 변해버릴줄이야, 푸핫.

중간에 파스텔 같은 걸로 그림 그려서 바나나껍질로 문대고 관객들한테 선물하는 게 있었는데 우리 앞줄에 앉아계시던 분이 받아가서 완전 부럽고 또 아쉬웠었음, 푸핫, 또 생각난다, 스타리스타리 나잇~ㅋㅋㅋ

외계에서 온 우주인들 룩(LOOK)들. 그러나 정작 그네가 보여준 그림들은 현대 우리의 모습이었다. 불타는 숭례문, 전쟁으로 겁먹은 아이들, 전쟁 영웅. 나폴레옹 그림을 가운데 두고 사이드에 있던 그림들이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내가 앉았던 자리 바로 앞에서 보이던 아프리카 아이의 슬픈 눈망울에 괜히 맘이 더 아팠다고 하면 너무 감상적인 척 하는 거?^^;;

이벤트 신청할 때 썼던 말이 "때로는 말보다 몸짓이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였는데, 정말 그렇더라. 변변찮은 대화 없이 몸짓만으로,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이 느껴졌다. 어른들이 보는 것도 괜찮지만, 아이들 데리고 가족 단위로 관람하는 것을 더 추천할만한 공연.


↓ 아래는 마지막 포토타임 때 찍었던 사진들~
그 때의 감동을 다시 살리기는 힘들겠지만 맛보기로 구경이라도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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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으라고 포즈 취해주시는 그림 그리던 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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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보고도 찰칵~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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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상자 앞에 뚫린 구멍은 카메라, 저 카메라로 공연장을 보여주는데 되게 신기했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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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저 차림으로 나와서 춤추던 오빠~
저기서는 동상내지는 마네킹 역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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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훈훈한 몸매 어쩔거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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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손흔드는 자세 만들어주는 더벅머리 아즈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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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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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덧)
그러고보니 공연 보는 내내 공연자들의 팔뚝 근육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ㅎㅇㅎㅇ
나만 그런 거 아니고 효정이도 같이 그랬었음 ㅋㅋ
2008. 7. 26. 17:17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 최혁곤 외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 8점
최혁곤 외 지음/황금가지


영화나 소설을 볼 때 꼭 남자여자 편을 가르자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로맨틱 코미디'나 '할리퀸류의 로맨스'는 여자 쪽이, '액션'이나 '스릴러'는 남자 쪽이 더 선호하지 싶다. 나는 별나게도 어릴 때 부터 "여성스러운"(분홍색이라던가 프릴, 하늘하늘하거나 공주풍, 인형놀이) 것은 딱히 좋아하지 않았었고 두 살 어린 남동생과 함께 로보트 놀이를 하거나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의 영향일까 나이를 먹은 지금도 내 취향은 로맨틱 코미디 보다는 호러나 스릴러 영화다.

그래서 결국 얘기하고 싶은 건 제목에도 썼듯이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이라는 책이다. 작년 여름 이맘 때에는 '한국 공포문학단편선 2'가 나왔던 것 같은데 올해는 조금 빨리 추리스릴러 단편선이 출판되었다. 밀클 카페 눈팅 결과 조만간 공포문학단편선 3가 나온다고 하니 목을 쭉 빼고 기다리는 재미가 있을지도. 이러나저러나 무서운 이야기는 여름에 접해야 제맛이니까 말이다.


추리스릴러 단편선에는 총 10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여느 단편집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재밌게 잘 읽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추리와 스릴러, 그리고 공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기에 공포문학선에 가도 괜찮을 것 같은 이야기도 더러 눈에 띈 덕분이리라.


우선 첫 이야기, '푸코의 일생'.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살인 청부업자의 얘기라고 하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정규교육의 힘일까, 푸코라는 단어를 본 후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푸코의 진자였다. 하지만 얘기 속의 푸코는 듣지도 짖지도 못하는 유기견의 이름이었다. '버려졌다'는 것에 자신과의 동질감을 느낀 주인공이 함께 사는, 감정이입의 대상이랄까. 살인청부업자로 살고 있는 주인공, 한 번의 실수로 인해서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게 된다. 언뜻 아닌 듯 두 편의 에피소드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패턴은 알고나면 "뭐야, 뻔하잖아"싶지만 모르고 보면 "아하~" 싶을지도.


그 다음은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의한 불가사리'. 우선 형식의 독특함에 10점 만점 기준, 10점을 주고 싶다. 처음엔 재미없겠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괜찮아져서 더 마음에 들었달까. 평소 밀실살인에 큰 관심이 없어 설렁설렁 읽어내려간 게 미안할 정도로 후반부에 정독을 하게 된 작품. 추리 잡지의 형태를 빌려서 소설을 진행할 줄이야! 그나저나, 그래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세 번째 얘기는 '암살'. 제주도 4.3 사건을 소재로 갖고 와서 한 군인의 죽음에 대해서 파헤치고 있다. 나름 탄탄했지만 4.3 사건에 대한 생각보다는 지루하게 진행됐지 싶다. 나는 4.3 사건 하면 어째선지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라는 단편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암살'이 재미없게 느껴진 이유는, 이 소설이 순이 삼촌 처럼 만큼은 내 마음에 와닿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네 번째 '싱크홀'. 동굴이 붕괴되어 생긴 구멍을 싱크홀이라고 하나보다. 어쩐지 공포문학단편선 2권에 있던 '길 위의 여자'가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감금'을 소재로 다루었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되게 성격 안맞는 사수랑 남주인공의 이름이 같아서 감정이입 해가면서, '이런 나쁜 놈!' 해가면서 읽은 작품. 그러고보니 영어 사전에서는 싱크홀이 '악의 소굴'이라는 뜻도 있다. 작가가 의도한 건 '악의 소굴'이었을까?


'안녕 나의 별'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 연예인에 미쳐있던 한 소녀가 그에게서 벗어나 정도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긴데, 살인 사건을 접목시켰다. 빼어난줄은 모르겠으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도 여자지만 글을 읽으면서 와닿는 건, 역시 여자는 무서운 존재라는 거^^;

나머지 작품들은 그냥그냥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트랜스젠더와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 '거짓말', 현대가 아닌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불의 살인'과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리니', 몇 년 전부터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대두된 스토킹을 다룬 '일곱 번째 정류장', 어쩐지 영화 '본 얼티메이텀'이 생각났던 '오리엔트 히트'.


한 달 전부터 조금씩 덧붙여서 쓰다보니 어째 글이 상당이 난잡해진 기분. 책을 읽은지도 오래 되서 띄엄띄엄 떠오르는 기억에 의존해서 쓰다보니 어 따로국밥이 되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끙!

어찌됐든, 이번 단편선도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 더더욱 요즘같이 바빠서 장편 소설 한 권도 제대로 못 읽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단편선이 훨씬 더 몰입해서 즐기기 편하기 때문이다. 늘 단편집을 읽으면 하는 말이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다 있는 종합선물세트를 접하는 기분을 또 한 번 맛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들의 나이는 나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어쩌면 나와 시대를 공유한 그들의 작품이기에 더 기대되고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2008. 5. 18. 20:21

스탠드 1 - 스티븐 킹

스탠드 1 - 8점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황금가지


오랜만에 손에 잡은 스티븐 킹.
학교 다니던 시절에 봤던 "데스퍼레이션" 이후로 처음이 아닌가 싶은 걸 보니 데스퍼레이션이 정말 취향이 아니긴 했었나보다(앗, 제목이 가물가물해서 검색해봤는데 데스퍼레이션이 맞고, 놀랍게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왔었던 책이다!ㅋㅋ 괜시리 신기하고 반갑다).


스티븐 킹의 명성과 작품에 대해서 내가 말해봤자 입 아픈 얘기가 될 게니 잡설은 집어치우고 '스탠드'에 대한 얘기나 해보도록 하자. 1권 밖에 안 읽고 얘기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얘기가 되어버릴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권의 부재는 '바이러스'다. 당연히 로빈 쿡의 에볼라 바이러스가 연상됐었고 실제 이 책에서 나오는 바이러스의 존재는 에볼라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그럴 듯"하게 씌어진 소설이니 더더욱 피부에 와닿았다고나 할까. 만병의 근원이지만 누구나 걸릴 수 있고 대수롭지 생각하는 "감기"의 탈을 쓴, 치사율이 "99%"가 넘는 바이러스라니, 너무 그럴싸 하단 말이다. 더더구나 1년 중에 2/3 이상은 콜록거리면서 감기를 달고 사는 나로서는 더더욱 무서워하면서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소설이 시작되면서, 정황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한 군인 가족이 자신이 사는 곳을 다급히 떠난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을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그 가족이 무사히 탈출하기를 바랐었는데 웬걸, 그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해버리고 그네들의 탈출이 아무도 바라지 않는 공포의 문을 활짝 열어 버리게 된다.


음식을  나눠먹지도 않고 신체 접촉 없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 만으로도 전염되는 바이러스라니, 거기다가 걸리기만 하면 원인도 모른 채 고열과 기침, 가래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니, 세상에 이런 게 어딨냐고 작가에게 따지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바이러스. 알고보니 군부대에서 실험을 시작했단다. 아니, 대체 왜? 1권에서 알 수 있을 내용은 아니었고 나중에 가면 이유가 밝혀지겠지.

전 6권으로 이루어진 스탠드, 그 시작답게 1권에서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하지만 그들의 70% 이상이 바이러스로 인해 죽는다.-_-;).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인해서 죽어가지만 특이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몇몇, 아마 그들이 앞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아쉽게도 1권에서는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 이외의 활약(-_-;;)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고 화두 중 하나는 '광우병'이다. 잠복기가 길지만 한 번 발병하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뺏길 수 밖에 없다는 광우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히 발병률이 높다는 광우병, 에이즈보다도 더 무섭다고 하는 치료약조차도 없다는 광우병. 스탠드에서 종횡무진으로 날뛰는 이 바이러스가 현재 우리를 공포에 떨게하는 광우병과 닮아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단순히 내가 너무 삐딱해서일까?


손에 떨어진지는 꽤 되었지만 이제서야 보게 된 스탠드. 늦게 펴든 게 미안할 정도로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었다. 아니, 거기서 끊어버리다니, 완결편까지 한 번에 지르고 후회한 적이 많았던지라 2권 이하를 준비해놓지 못하고 책을 보기 시작한 내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달까. 역시 인기 작가는 이유없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 법이다.


덧)

미국 대중 소설 답게, 스탠드에서도 비속어가 꽤나 눈에 많이 띄었었다. 습관적으로 욕쟁이 번역가(죄송^^;) "조영학"씨를 떠올렸으나 웬걸, "조재형"이라는 분이 옮긴 책이었다. 정말 습관이란 무서운 법이다.
2008. 3. 31. 21:56

[문학 및 만화]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 6점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지음, 윤우섭 외 옮김/황금가지


러시아 작가의 작품이라니, 처음에는 낯설다고 느껴졌었는데 생각해보니 고전 문학 중에 러시아 작가의 수는 적지 않다. 그 유명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주인공 푸슈킨, 이 외에도 꼽으면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나오지 싶다.

하지만 현대 러시아는 또 다르다. 공산주의체제가 붕괴하면서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본주의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예전 강대국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힘든 러시아, 특히 내게는 만화 "올훼스의 창"의 이미지와 더불어 추위, '마트로시카'라는 러시아 인형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어찌됐든 미국소설, 일본소설, 그리고 국내소설에 익숙해진지라 러시아 소설이라니 어떻게 진행될지 꽤나 기대를 했었다. 내 상황이 안좋았기 때문이었을까, 기대에 조금 못 미친 것이 아쉽다. 아니면 제목이 내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고하는 게 더 정확하려나. 처음 한두얘기를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렸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특정 시즌에 관련된 얘기라 제목이 좀 낚시같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긴, 그렇다고 '크리스마스' 혹은 '연말연시'와 관련된 러시아 여성추리작가 작품집이라는 제목이었으면 그게 더 이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첫 작품인 '니나의 크리스마스 기적'은 훈훈하게 시작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분위기는 점점 줄어들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계급이나 현실 상황이 널리 알려지지않은 러시아 사회의 얘기라 더 낯설게 읽힌 것도 있으리라.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이야기인 '공포의 인질 또는 내 고독의 이야기'와 일곱 번째 이야기 '복수의 물결'이 참 재미있었다. 물론 무서운 살인 사건을 다룬 얘기지만 그녀들의 복수에는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네들의 얘기에는 계절 한정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일까, 전문적인 탐정이 등장하기보다는 보통 사람보다 조금 관찰력이 뛰어나고 조금 의심이 많은 그런 인물들이 주인공을 맡고 있다. 하긴,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그네들은 범상치 않으니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알맞은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참 힘들게 읽었다. 갑자기 바쁜 일이 겹쳐서 한 번에 읽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 작품씩 읽지도 못하고 정말 짬짬이 시간을 내서 겨우겨우 읽었기 때문에 재미를 좀 덜 느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제목에 대한 아쉬움이 좀 많이 남는다. 다른 분이 말씀하신 것 처럼 작년 12월쯤에 나왔다면 시기와 맞물려서 조금 더 공감하면서 볼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한 가지 더 꼬집자면 유독 오자가 눈에 많이 들어온 책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공포문학단편선을 읽을 때 느꼈던 것, 단편집이니만치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작품과 더불어 책장을 넘기기에 급급했던 작품이 섞여있었다는 것이다. 뭐,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바로 단편집의 묘미인 것을. 세상을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듯이 어찌 재미있는 얘기만 골라서 볼 수 있겠냐고 하면 너무 비약이 심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재미있었다고 해서 남들이 재미있다는 보장 또한 없으니 말이다. 이러니저러니 하더라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밀클시리즈, 그리고 황금가지사에는 늘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