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소설'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8.02.13 환야 - 히가시노 게이고 2
  2. 2007.10.06 청춘, 덴데케데케데케~ - 아시하라 스나오
  3. 2007.10.03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이사카 고타로 4
  4. 2007.09.12 아름다운 아이 - 이시다 이라
  5. 2007.09.10 편지 - 히가시노 게이고
2008. 2. 13. 14:06

환야 - 히가시노 게이고

환야 1 - 8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다른 사람들은 책을 보는 순서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표지와 속 날개, 만화책은 겉표지 안쪽에 있는 표지까지 훑어보고 나서 목차나 인물설명부터 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또 본문을 바로 보는 것도 아니고 작가의 말이나 역자의 말까지 다 읽고 나서 비로소 본문을 보기 시작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추리소설을 비롯하여 각종 스포일러가 범람하는 역자는 아차 싶어서 본문을 보지만(지금 보는 이사카 코타로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로커의 역자는 스포가 있으니 본문을 다 보고 후기를 보라고 친절하게 충고까지 해주더라ㅋ) 어찌 됐든 긴 본 내용을 시작하기 전의 몸 풀기로 추천사나 역자 후기부터 보고 시작하게 되는 버릇이 붙어버린 것을 인제 와서 어떡하랴.

이번 '환야'는 지난 번의 '흑소 소설'과 '독소 소설' 이후 오랜만에 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그러나 역자 후기 덕에 조금씩 부풀어 가던 풍선에 작은 구멍이 나서 더는 커지지 못하고 오히려 쭈그러드는 경험을 해버린 책으로 기억되지 싶다. 이렇게 계속 당하면 이제 후기부터 안 보면 될 텐데 그건 또 버릴 수 없는 습관이니 모든 것은 내 죄려니, 에구.


으아, 서론이 너무 길다. 이제 책 얘기 시작.


1995년 고베 대지진을 배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불경기에 빚으로 시달리다 자살한 아버지의 장례식, 아버지를 잃은 슬픔 앞에서도 빚에 대한 부담감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청년이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나타난 외삼촌 또한 그를 위로하는 척하며 예전에 자신이 강탈하다시피 빌려간 돈의 차용증을 들이대며 보험금 일부를 요구한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지는 큰 지진이 일어나고 청년은 재빨리 빠져나가 자신의 목숨을 구한다. 무너진 집을 돌아보는데 자신의 외삼촌이 대들보에 깔렸다. 그의 주머니에서 차용증을 거두고 그 자리를 떠나려는 청년, 외삼촌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되고 뭐에 홀린 것일까, 주변에 떨어진 벽돌로 외삼촌의 머리를 내려친다. 그리고 뒤돌아보는 순간 그의 눈앞에 빼어나게 아름다운 한 여자가 서 있다. 자신의 범죄 현장을 고스란히 들킨 그, 당황할 뿐이다. 그 여자를 향해 한발 다가가는 순간 여진일 발생하고 여자는 홀연히 사라진다.

구호소에서 다시 보게 된 그녀, 가까운 아파트에 살던 노부부의 딸이라고 한다.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도 않는 그녀, 그는 계속 그녀를 주시하다 강간범에게 구해주기도 하고 밥을 나눠 먹고 하다가 조금 친해지게 되고 '떠나자, 같이.'라는 그녀의 말에 그녀를 따라 도쿄로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이제는 도쿄. 그-미즈하라 마사야는 원래 가지고 있던 기술을 살려서 금속을 가공하는 공장에 취직하게 되고, 그녀-신카이 미후유는 '하나야'라는 유명한 보석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기만 하다. 어떤 사건일 일어나기만 하면 알게 모르게 신카이 미후유와 연관이 있는 거다.


소설은 다양한 화자의 입을 빌려서 진행된다. 큰 축은 마사야와 미후유, 그리고 최초의 보석가게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 형사 가토. 이들 외의 주변 인물들도 있으나 이네가 국어 시간에 배웠던 대로 표현하면 주인공급 인물들이다.

미모가 빼어나고 머리가 좋은 여자, 그리고 그녀에게 반한 남자가 저지르는 범죄, 그들의 주변에서 연달아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뒤쫓는 형사. 1권을 읽는 내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거다. 중간에 여주인공이 '이제 우리는 밝은 대낮에 다닐 수 없어. 해가 지지 않는 밤이 있다고 해도 그건 낮은 아니야.' 이런 비슷한 얘기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 '아!' 하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 그리고 뭔가 과거가 수상한 여주인공을 보면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생각났더랬다.


백야행과 화차의 얘기를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큰 맥락은 다 파악할 수 있지 싶다. 그래도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2권 끝에 있는 작가의 후기에서 '이 소설은 백야행의 후속편입니다.'라고 해버린 거다. 순간 허탈해져서 책을 건성으로 읽게 돼버렸다. 아예 처음부터 백야행의 후속편인 것을 알고 봤다면 또 모르겠지만 중간에 알게 되는 바람에 괜히 배신당한 기분이었달까.

백야행 때보다는 시간이 흐른 만큼 소설 안의 시대도 많이 바뀌었다. 1995년부터 밀레니엄 팡파르를 터트리던 2000년 자정까지가 시대적 배경인데, 작가가 준비하고 있다는 3부는 정말 '현재'의 얘기를 하게 되지 싶다. 전작 백야행과 다른 점은 소설 안에서 미후유를 제외한 주인공들의 행태와 심리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 백야행에서는 '아니, 얘네가 그래서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는 건데?' 싶어서 마지막 장까지 달렸다면, 환야는 미후유의 장기 말이 되어버린 마사야의 심리상태와 행동에 대해서는 숨기지 않고 보여 주며 간접적으로 미후유의 심리상태를 드러내 주기도 한다.

뭐, 소설 자체만 보면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꼭 보라고 추천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별 세 개 반쯤 주고 싶은 정도? 재미는 있었지만 백야행을 읽고 난 후 느꼈던 아릿한 슬픔을 느낄 수는 없었다. 이 후속작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일신의 안녕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는(이것이 정말 팜므 파탈인가?) 미후유, 아니 유키호의 끝이 어떨지는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환야를 다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에 조금 실망하려던 찰나 작년에 사놓고 띄엄띄엄 읽던 '붉은 손가락'을 다 봤다. 후반부에 몰려있는 거듭하는 반전과 슬픔, 이런, 히가시노 게이고는 역시 멋지다. 흑소, 괴소, 독소 소설 시리즈도 역시 모아야 하려나?


덧)

오랜만에 맞춤법 검사기 돌려가면서 썼는데(팡파레가 아니라 팡파르!), 아우, 정말 나는 경택님하 말대로 '띄어쓰기 막장'. 문장부호나 어휘 1개 걸릴 때 띄어쓰기는 5개씩 걸리는 수준, 컥.
국어 맞춤법은 정말 어려워요.ㅜㅜ

환야 2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2007. 10. 6. 16:33

청춘, 덴데케데케데케~ - 아시하라 스나오

청춘, 덴데케데케데케~청춘, 덴데케데케데케~ - 4점
아시하라 스나오 지음, 이규원 옮김/청어람미디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즐거운 인생'의 여흥일까, 예전에 한 번 눈여겨보고 잊고 있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서 표지를 훑어보고 '밴드소설'에 혹해서 집어 든 소설.


제목의 '덴데케데케데케'를 조형기 아저씨가 만들었던 유행어 '좌우지장지지지'쯤으로 이해했었는데 알라딘의 책소개에 나와있는 설명에 따르면 '제목의 '덴데케데케데케'는 트레몰로 글리산도 주법으로 연주되는 벤처스의 '파이프라인' 도입부의 의성어.' 라고 한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되서 방금 벤처스(Ventures)의 파이프라인(Pipeline)을 들어봤는데, 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 연주곡이구나 정도? 라이브 공연을 본다면 멋질지도.

작품의 화자면서 주인공, 그리고 록킹 호스맨(Rocking Horseman)의 리더인 칫쿤은 고등학생이 된 후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벤처스의 파이프라인을 듣고 일렉신의 계시를 듣는다. '덴데케데케데케', 넌 이제 기타를 쳐야 해.

고등학생이 된 후 이렇다 할 집중거리를 못찾던 칫쿤, 이제 밴드를 하겠다를 열망을 지니고 밴드의 멤버를 찾아헤맨다. 그리하여 경음악부에 있던 시라이와 어린 나이에 이미 촉망받는 스님인 후지오, 그리고 그에게 경음악부의 존재를 알려줬던 다쿠미를 꼬드겨서 밴드 결성에 성공한다.

악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 삼매경이었던 여름방학, 변변히 연습할 곳이 없어서 좁은 방에 틀어박혀서 했던 연습해야 했던 나날들, 기계 만지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시이짱을 특별회원으로 영입한 후 가졌던 합숙훈련, 동네 가게 행사에서 했던 첫 연주회, 그리고 그들 밴드 활동의 절정이었던 축제에서의 공연까지, 그들은 음악과 함께하기에 언제나 즐겁고 유쾌하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실제 이 소설이 씌어지고 상을 받은 직후에 록킹 호스맨이 20년 만에 부활해서 다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한다. 세월이 흐른 후 예전에 몰두했던 것을 그리워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시 찾는다는 것, 쉽지 않을텐데 대단하다. 그래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가 이들의 고등학교 시절인데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얘기라 '그렇겠구나.' 짐작하며 읽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 시대적 배경에 지방 소도시의 얘기여설까, 무라카미 류의 '69'가 생각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었으리라. 각 장의 제목으로 사용한 노래들에 대해서 잘 알고있다면 조금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글을 쓰면서 찾을 수 있는 곡은 찾아서 들어봤는데 의외로 귀에 익은 곡이 많아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이래서 Oldies but Goodies인걸지도.^^

개인적으로는 각 장의 제목을 아주 맛깔나게 번역한 역자의 힘도 소설을 읽는데 큰 몫을 했지 싶다. 본문의 번역은 그저 그랬지만 제목만은 정말 끄덕끄덕 하면서 감탄했기 때문.

쉽게 읽힌다는 것 이외에 그리 큰 장점은 없는 것 같다. 중간중간 미소지을 수야 있었지만 딱히 가슴에 와닿는 뭔가를 찾을 수 없었다. 중학생 권장도서에 들어가있는데, 흠, 글쎄, 요즘의 중학생들이 자신들의 시대도 사상도 음악조차도 자신들과 완전 딴판인 이런 책을 과연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http://nicky82.tistory.com2007-10-06T07:33:430.3410
2007. 10. 3. 22:48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이사카 고타로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8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은행나무

'사신 치바', '중력 삐에로'에 이은 내가 접하는 이사카 고타로의 세 번째 작품이다. 난 이 작가 안지 얼마 안됐는데 도서관에 이사카 코타로의 책이 많아서 살짝 당황하며 알라딘에서 본 기억이 있는 낯익은 제목을 선택.


진짜 재밌다는 얘기를 들었던 사신 치바가 참 별로였기에 후에 중력 삐에로와 사신 치바의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참 놀랐었다. 중력 삐에로에서의 쿨한 대사들이 마음에 들었기에 일단 선택. 다행스럽게도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다.


네 명의 은행강도가 책의 주인공이다. 보통 한 명의 서술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진행을 담당하는데 이 책은 단편소설도, 옴니버스도 아니면서 소제목마다 화자가 바뀐다. 개인적으로는 나루세 Ⅴ이런 식으로 제목이 나오고 그 옆에 감성사전 마냥 단어의 정의를 사전인 척 재정의한 것들이 참신해서 배를 잡고 웃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반성[反省] ①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봄.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고찰하고 일정한 평가를 내리는 일. ② 자기가 앞으로도 같은 과오를 되풀이할 것임을 재확인하는 행위.
p. 111

전말[顚末] ①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상황. ② 범인의 고백에 의한 지루한 설명.
p. 276

질문[質問] ① 의문 또는 이유를 묻는 일. ② 설명하는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
p. 361

뭐, 이런 정도?
재미없다고 돌 들지 말기. 난 정말 이런 식의 피식 웃게 만드는 유머가 좋으니까.

시청에서 근무하는 자폐증에 걸린 아들이 있는 살아있는 거짓말 탐지기 '나루세'와 입만 열면 일장연설에 그 내용의 진위가 늘 의심스러운 '교노'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리고 체내에 초단위로 시간을 계산하는 시계가 있어서 특이한 능력을 가진데다 못훔치는 차가 없는 '유키코'와 인간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소매치기에 재능있는 '구온'. 이 네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명랑한 갱들이다.

이네들은 오래전 영화관에서 있었던 폭탄 사건으로 안면을 트고 얼마 후에는 가까운 장소에서 은행강도에게 포로로 잡히는 진귀한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 특이한 인연을 가진다. 그 후 그네들은 "첫째, 경보장치를 차단한다. 둘째, 돈을 챙긴다. 셋째, 도망친다."의 간단한 3단계를 기본으로 간간히 은행을 턴다. 예전에 그네를 붙잡고 있다가 결국 사살당한 멍청한 은행강도들보다 자신들이 훨씬 잘해날 수 있을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명랑한 갱들은 이번에도 역시나 4천만엔이라는 금액을 빼앗는데 성공하지만 웬걸, 그들이 도주하는 도중에 갑자기 '현금수송차 잭'이라는 일당들이 나타나서 그들의 돈을 다시 또 빼앗아간다. 은행강도가 강도를 당하다니 이것 참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긴 것이다.

허탈해하는 그들, 그러나 소매치기의 귀재 구온이 그들의 돈을 훔쳐간 일당 중 한 명의 지갑을 슬쩍했고 그들은 다시 뭉쳐서 현금수송차 강도 일당을 추척하기 시작한다. 여기부터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다고도 볼 수 있겠지. 그래도 뭐 복선을 너무 많이 뿌려대서 충분히 예상가능하니 정통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니 추리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추측하면서 볼 수 있는 소설 정도가 맞지 싶다.

어찌됐든 그들은 각종 인맥을 이용하여 악당들을 추적하고 끝내 허를 찌르는 작전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앞쪽에 언급했었던 "쓸 데 없는 물건"이 제대로 활용된다. 추리소설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다음 전개가 다 보이던걸.^^;


처음부터 결말까지 유쾌하게웃을 수 있어서 좋기도 했었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가짜들 가운데 진짜가 하나만 섞여도 사람들은 전부 진짜라고 여긴다.', ''적을 감싸는 자도 적이다'라는 억지논리를 큰 나라 대통령이 당당히 공표하는 걸로 봐서 중학생 정도야 그런 생각 쯤 하고 남을 일이다.' 등의 교노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작가의 사상이 참 맘에 드는 책이었다.
이 명랑한 갱들의 후속작이 출판됐다는데 언제 한 번 날 잡에서 서점에 놀러가서 구경이나 해봐야겠다.

글이 꽤 길어졌는데 목차가 재미있으므로 목차를 첨부하며 이 책의 소개를 마친다.


    

제1장 악당들은 사전 조사 후 은행을 습격한다
'개가 꼭 도둑만 보고 짖는 건 아니다.'

제2장 악당들은 반성을 하고, 시체를 발견한다
'세금과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제3장 악당들은 영화관 이야기를 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매를 아끼면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진다.'

제4장 악당들은 작전을 짜고, 허를 찔린다
'바보는 여행을 보내도 바보인 채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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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icky82.tistory.com2007-10-03T13:45:210.3810
2007. 9. 12. 08:35

아름다운 아이 - 이시다 이라

아름다운 아이아름다운 아이 - 6점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작가정신


3년 전쯤엔가 파란색 표지에 흰색으로 [4teen]이라는 제목이 씌여졌던 이시라 이라의 작품을 나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던 중 아무 망설임없이 작가 이름만을 보고 이 [아름다운 아이]를 선택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 그냥 소설이구나.' 정도? 도서관에서 빌려봤기 망정이지 서점에서 구입했다면 돈이 아까워서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묘하게도 같은 날 빌렸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와 매우 흡사한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살인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의 이야기. 하지만 두 작가가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방식은 완전 다르다. 중견 소설가와 신인 소설가니, 필력이나 전개방식을 비교하는 건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을 비교하는 격이려나?

어찌됐든, 지루한 초반을 넘어서서 중반부터는 이야기에 탄력을 받아서 끝까지 읽어낼 수야 있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그 찝찝함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주인공 미키오는 유메미산 중학교 2학년이다. 유독 교육열이 높은 이 도시, 그리고 이 학교에서 그는 뛰어난 성적보다는 식물 쪽에 재능이 있는 특기생의 위치를 가진다. 친구들과 뛰노는 것도 재밌지만 숲에서 식물들을 관찰하며 관찰일지를 쓰는 것 또한 그의 즐거움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는 동생이 두 명 있다. 피부가 좋지 않아서 별명이 감자인 자신과는 다르게 어머니를 닮아 출중한 외모를 가진 남동생과 여동생. 어릴 때는 어머니의 성화에 동생들이 모델로 활동했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여동생만 아동모델을 계속하고 있고 남동생은 음침한 성격으로 변해버리고 집에서도 혼자 겉도는 성격이 된다.

가끔 개념없이 자신과 친구를 괴롭히는 유치한 동급생이 있지만 그래도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감자. 조용한 그의 동네에서 초등학생 여아 실종사건이 벌어진다. 갑자기 도시는 발칵 뒤집히고 경찰들도 기자들도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끝내 그 아이는 '밤의 왕자(the prince of the night)'라는 낙서와 함께 시체로 발견된다. 그 아이가 여동생과 동급생이었고 또 친하기까지 했었다기에 더더운 안타까움을 느끼는 감자,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초등학생 살인범이 자신의 남동생인 것이다.


단 하루만에 그의 일상은 뒤바뀌게 된다. 매스컴이 가족을 괴롭히고 여동생과 둘이 부모를 떠나 다른 사람의 집에 지내게 되고 학교에서도 보이지 않는 시선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감자는 동생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없고 동생의 정체가 정말 밤의 왕자였는지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감자는 그 아이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동생이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려 한다. 그런 감자의 곁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들이 큰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 그리고 나름 충격적인 결말.


과연 살인이 이렇게 허술하게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작품이었다. 뭐, 정통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청소년의 심리 묘사와 내적 성장에 중점을 둔다면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데 비해서는 그닥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다. 이젠 슬슬 일본소설에 질려가고 있기 때문일까?

차라리 와닿았던 부분은 이지메를 하는 감자네 학교의 아이들. 처음에는 감자의 등교에도 동요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그 사건이 없었던 것 처럼 위장하고 있던 아이들이 시험이 다가옴에 따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감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물론 드라마 '라이프'의 경우 처럼 표나게 괴롭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넌 살인자의 가족이야."하는 편지를 신발장에 넣어둔다던가 실내화에 압정을 넣어둔다던가 하는 어쩌면 이지메의 정석을 따라가는 거 보면 공부 잘하는 애들의 상상력이란 뻔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면서 뒤에서는 감자를 괴롭히는 그네들의 모습에서 소위 '이중적'이라고 하는 일본인 특유의 음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왕자를 모티브로 한 패러디 소설 '밤의 왕자'. 미키오는 그 소설을 읽고 매우 슬프다고 느끼지만 글쎄, 이렇게 우울한 글은 딱히 내 취향이 아니므로 그냥 그랬다.
전문까지는 못구하겠고 일부분은 여기를 눌러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4teen 한 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시다 이라, 아름다운 아이 한 권으로 내 마음에서 멀어져버렸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the zombies의 중학생 버전같았던 그네들의 모습은, 흠, 뭐 지금 생각해보니 미키오의 수사를 도와주는 친구들의 재기발랄함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른들이 바라는 정도를 걷는 모범생이 아닌 주인공 감자보다도 친구들이 훨씬 더 매력적인 캐릭터였으니까 말이다.


혹 이 책을 보실 분이라면 당부할 것 한 가지, 절대 역자후기부터 보지 말라는 것. 역자후기, 혹은 작가후기부터 먼저 보는 취미가 있는 나는 후기에서 모든 줄거리를 다 까발리는 바람에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정도로 밖에 책을 즐기지 못했으니까.
http://nicky82.tistory.com2007-09-11T23:35:010.3610
2007. 9. 10. 15:51

편지 - 히가시노 게이고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부모도 가까운 친척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냉혹한 현실에 간신히 적응해서 이제 좀 살만하다 싶어지면 여지없이 세상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그는 허물어진 탑을 다시 처음부터 쌓아야 한다. 그에게는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과연 그와 그의 배경을 분리해서 남자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봄에 초희랑 둘이 서점에서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맞대고 읽었던 '산타아줌마' 이후 오랜만에 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구나.'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면 너무 안일한 감상이 되어버리는 걸까? 오랜만에 소설책을 손에 대기도 했지만 소설 자체의 흡입력이 장난이 아닌지라 정말 눈을 못떼고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처음에 얘기한대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강도살인범'의 동생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단 둘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형제, 형은 형이라 당연히 동생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 동생은 형의 바람이 부담스럽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한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이삿집을 옮기는 등의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형이 허리를 다치게 되면서 이 형제의 앞길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게 된다. 생계가 막막해지고 코 앞으로 다가온 동생의 대입, 현실적인 어려움에 형의 눈은 흐려져 몇년 전 이사를 도왔던 혼자 살고 있는 부자 할머니의 집을 털기로 한다. 그 할머니는 돈이 많으니 괜찮을거라고 애써 자신을 정당화해가면서. 그러나 세상이 맘먹은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쉽겠는가? 처음 돈봉투를 무사히 챙기는 듯 했으나 할머니가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당황한 형은 갖고간 드라이버를 흉기로 사용해 할머니를 살해하게 된다.


챕터의 시작은 교도소에서 날아오는 형의 '편지'. 편지 내용은 지극히 동생을 아끼는 형의 편지 답게 동생의 생활을 궁금해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동생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그러나 그 형의 편지 덕분에 주인공 다케시마 나오키의 삶은 번번히 큰 좌절을 맛보게 되니 세상일이란 참 알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신의 삶에 끼어드는 형의 존재를 수용하려고도, 부정하려고도 해봤지만 그에게 있어서 도통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전에 사시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와 사형제도에 대해서 얘기한 적 있다. 어쩌다 형법의 근원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크게 죄를 지은 본인에게 그 죗값을 치르게 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 형벌제도가 등장했다고 한다. 그 법으로 인해 죄인이 자신의 죗값을 받는 건 마땅하지만 그 가족들에 대해서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지난 번 [13계단]에서 미카미의 가족, 그리고 이번 [편지]에서 제대로 "아, 이럴 수도 있구나."하는 으례 지나치기 쉬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다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지만 아직까지도 난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서지는 않는다. 요즘 여기저기서 '인권'을 부르짖는데 과연 그 인권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지켜져야만 하는 것일까? 처음엔 나름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볼수록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에 동화되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냉철한 판단은 제쳐두고 스토리 진행 따라가기에 급급했기에 더더욱 혼란스럽다. 어찌됐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 솜씨는 대단하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르는 걸 통제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끝으로 역자의 후기에 있던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에 관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사랑만으로 가득찬 세계를 꿈꾸고 노래하던 존 레논은 1980년 뉴욕에서 마크 채프먼이라는 자신의 팬에게 저격당해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아내 오노 오코는 레논의 유지를 받들어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사랑과 평화만이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간이 흘러 존 레논의 추모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를 제작하게 되고 레논을 닮은 사람들을 모아 오디션을 보는데 정말 그과 똑닮은 사람이 최종으로 남게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노 요코의 반대로 오디션에서 낙방할 수 밖에 없었는데 반대 이유인 즉슨 그의 이름이 존 레논의 살해범인 '마크 채프먼'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다. 그리고 역자는 덧붙인다, 오노 요코의 반대 분명 평소의 언행과 일치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그래도 피해자의 가족임을 고려한다면 타인이 쉽게 얘기할 수는 없는 부분일 것이라고. 정말 그렇지 싶다. 남의 일이니까 쉽게 판단하고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