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08.07.26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 최혁곤 외 1
  2. 2007.10.30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두 번째 방문 - 김미리, 김종일, 김준영, 신진오, 안영준, 이종호, 장은호, 최민호, 황희 2
  3. 2007.10.01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4. 2007.09.29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6
  5. 2007.09.26 팔란티어 - 김민영
2008. 7. 26. 17:17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 최혁곤 외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 8점
최혁곤 외 지음/황금가지


영화나 소설을 볼 때 꼭 남자여자 편을 가르자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로맨틱 코미디'나 '할리퀸류의 로맨스'는 여자 쪽이, '액션'이나 '스릴러'는 남자 쪽이 더 선호하지 싶다. 나는 별나게도 어릴 때 부터 "여성스러운"(분홍색이라던가 프릴, 하늘하늘하거나 공주풍, 인형놀이) 것은 딱히 좋아하지 않았었고 두 살 어린 남동생과 함께 로보트 놀이를 하거나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의 영향일까 나이를 먹은 지금도 내 취향은 로맨틱 코미디 보다는 호러나 스릴러 영화다.

그래서 결국 얘기하고 싶은 건 제목에도 썼듯이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이라는 책이다. 작년 여름 이맘 때에는 '한국 공포문학단편선 2'가 나왔던 것 같은데 올해는 조금 빨리 추리스릴러 단편선이 출판되었다. 밀클 카페 눈팅 결과 조만간 공포문학단편선 3가 나온다고 하니 목을 쭉 빼고 기다리는 재미가 있을지도. 이러나저러나 무서운 이야기는 여름에 접해야 제맛이니까 말이다.


추리스릴러 단편선에는 총 10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여느 단편집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재밌게 잘 읽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추리와 스릴러, 그리고 공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기에 공포문학선에 가도 괜찮을 것 같은 이야기도 더러 눈에 띈 덕분이리라.


우선 첫 이야기, '푸코의 일생'.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살인 청부업자의 얘기라고 하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정규교육의 힘일까, 푸코라는 단어를 본 후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푸코의 진자였다. 하지만 얘기 속의 푸코는 듣지도 짖지도 못하는 유기견의 이름이었다. '버려졌다'는 것에 자신과의 동질감을 느낀 주인공이 함께 사는, 감정이입의 대상이랄까. 살인청부업자로 살고 있는 주인공, 한 번의 실수로 인해서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게 된다. 언뜻 아닌 듯 두 편의 에피소드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패턴은 알고나면 "뭐야, 뻔하잖아"싶지만 모르고 보면 "아하~" 싶을지도.


그 다음은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의한 불가사리'. 우선 형식의 독특함에 10점 만점 기준, 10점을 주고 싶다. 처음엔 재미없겠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괜찮아져서 더 마음에 들었달까. 평소 밀실살인에 큰 관심이 없어 설렁설렁 읽어내려간 게 미안할 정도로 후반부에 정독을 하게 된 작품. 추리 잡지의 형태를 빌려서 소설을 진행할 줄이야! 그나저나, 그래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세 번째 얘기는 '암살'. 제주도 4.3 사건을 소재로 갖고 와서 한 군인의 죽음에 대해서 파헤치고 있다. 나름 탄탄했지만 4.3 사건에 대한 생각보다는 지루하게 진행됐지 싶다. 나는 4.3 사건 하면 어째선지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라는 단편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암살'이 재미없게 느껴진 이유는, 이 소설이 순이 삼촌 처럼 만큼은 내 마음에 와닿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네 번째 '싱크홀'. 동굴이 붕괴되어 생긴 구멍을 싱크홀이라고 하나보다. 어쩐지 공포문학단편선 2권에 있던 '길 위의 여자'가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감금'을 소재로 다루었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되게 성격 안맞는 사수랑 남주인공의 이름이 같아서 감정이입 해가면서, '이런 나쁜 놈!' 해가면서 읽은 작품. 그러고보니 영어 사전에서는 싱크홀이 '악의 소굴'이라는 뜻도 있다. 작가가 의도한 건 '악의 소굴'이었을까?


'안녕 나의 별'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 연예인에 미쳐있던 한 소녀가 그에게서 벗어나 정도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긴데, 살인 사건을 접목시켰다. 빼어난줄은 모르겠으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도 여자지만 글을 읽으면서 와닿는 건, 역시 여자는 무서운 존재라는 거^^;

나머지 작품들은 그냥그냥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트랜스젠더와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 '거짓말', 현대가 아닌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불의 살인'과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리니', 몇 년 전부터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대두된 스토킹을 다룬 '일곱 번째 정류장', 어쩐지 영화 '본 얼티메이텀'이 생각났던 '오리엔트 히트'.


한 달 전부터 조금씩 덧붙여서 쓰다보니 어째 글이 상당이 난잡해진 기분. 책을 읽은지도 오래 되서 띄엄띄엄 떠오르는 기억에 의존해서 쓰다보니 어 따로국밥이 되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끙!

어찌됐든, 이번 단편선도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 더더욱 요즘같이 바빠서 장편 소설 한 권도 제대로 못 읽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단편선이 훨씬 더 몰입해서 즐기기 편하기 때문이다. 늘 단편집을 읽으면 하는 말이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다 있는 종합선물세트를 접하는 기분을 또 한 번 맛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들의 나이는 나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어쩌면 나와 시대를 공유한 그들의 작품이기에 더 기대되고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2007. 10. 30. 11:21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두 번째 방문 - 김미리, 김종일, 김준영, 신진오, 안영준, 이종호, 장은호, 최민호, 황희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8점
이종호 외 8인 지음/황금가지

지난 여름에 손에 떨어졌던 책. 받자마자 한 번 읽고 감상을 쓸 엄두가 안났었는데 다시 한 번 더 읽고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단편집, 그것도 한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 아니라 '공포'라는 대주제 안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단편을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고로 취향따라 골라잡을 수 있는 뷔페와 흡사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려나.


보기에도 꽤나 두꺼운 이 책은 400페이지에 달하며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해설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서운 괴담을 듣는 듣한 느낌의 유일한의 '어느날 갑자기'에 비해 공포문학단편선의 작품들은 괴담보다는 환상문학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보는 동안 팔뚝에 소름이 오스스 돋고 등골이 서늘한 기분을 맛보게 하는 점 또 주인공의 심정에 동조해서 긴장을 느끼는 점에서는 공포가 맞지만 이게 긴가민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갸우뚱 하는 내 이해를 벗어난 부분에서는 갈피를 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건 영상매체에 익숙해진 내 머리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영화 주온에서 그러했듯이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서도 일상적인 것들을 공포의 소재로 삼았다. 세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 층간소음(벽, 김종일), 빈부격차와 개념없는 아이들의 행동(레드 크리스마스, 안영준), 습기로 인해서 집 구석에 피는 곰팡이(벽 곰팡이, 황희), 병원과 환자의 죽음(캠코더, 장은호), 악몽(드림머신, 김미리), 갑자기 몸에 생긴 혹(통증, 김준영) 같은 누구나 한두번쯤은 경험해본 적 있는 것들로 그런 얘기들을 만들어내다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족을 달자면 난 정말 주온의 귀신 그 자체보다는 머리를 감거나 잠을 자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미지의 존재와 공유할 수 있다는 설정이 소름끼쳤었다.


나는 안영준의 '레드 크리스마스'가 참 슬펐고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던 노인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철이 없다 못해 개념이 없는 아이들의 행동에서 이 사회의 단면이 보여서 섬뜩했고, 슬펐다. 예전같았으면 '저런 애들이 어딨어.'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그네들보다 더한 '어른 아이'들이 넘치는 세상이기에 뒷맛이 더 쓸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도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날인 크리스마스를 결국 잔인한 복수와 함께 레드 크리스마스로 만들어보인 노인. 객관적인 결과만 본다면 몇 명을 살해한 범죄자지만 그래도 그의 손을 잡아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건, 어쩜 내 스스로가 부(富)층보다는 빈(貧)층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며,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부층들의 행위에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다양한 단편들이 모여있다보니, 정말 몰입해서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게 되는 작품도 있었고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앞장을 뒤적이거나 혹은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는 작품도 있었다. 작품의 호불보야 철저히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인테니 재미를 느끼는 작품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됐든 종합선물세트같은 단편집이었다.

공포문학단편선 1권의 작품들이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있던데, 원작의 맛을 잘 살려내준다면 좋겠다. 원작에서 소재만 빌려오고 링의 사다코가 넘쳐나는 그런 실패작이 아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섬뜩함과 소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http://nicky82.tistory.com2007-10-30T02:24:180.3810
2007. 10. 1. 14:46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달콤한 나의 도시 - 6점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


나로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들어버린 작품이다. 하긴, 태반의 베스트셀러들이 잘팔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경우가 많았던 거 보면 나는 대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혹은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몇 년 전의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이후 낸 장편 소설인데, 글쎄, 딱히 그녀의 글솜씨나 사상이 전작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어보인다. 그 중의 유리의 성과 트렁크를 잘 버무려서 장편소설로 만든 느낌이랄까.


그녀의 소설은 무겁지 않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얘기를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음직한 그런 여자들의 얘기를 하고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웬걸, 내게는 그녀의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순정만화나 로맨스 소설, 혹은 트렌디 드라마에서 빠져나온듯한 인물들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들 보다야 조금 더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조금 더 현실적이고 조금 더 쿨하다. 그렇다해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어쩐지 남자주인공과의 해피엔딩 장면이 빠진 로맨스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에 남편, 아이, 직장이 없다면 정말 패배자의 무리에 속하게 되는 걸까? 아직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하기엔 나는 이미 이 사회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대목이 계속 눈에 밟힌다. 한 사람이 가진 객관적인 것들이 그가 사회적으로 판단되는 잣대로 사용되는 사회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씁쓰레한 것 만은 어쩔 수 없다.
 


황석영씨가 얼마 전의 기자회견에서 얘기했다던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깊이가 없다."고 한 말이 문득 떠오르는 건 역시 이 작품이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겠지. 편하게 한 번 읽고 덮어버리는 일본 현대소설 처럼 말이지.


내 곁에 다가왔다 떠난 이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읽고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단 한 가지. 그들이 기억하고 있을 그 어떤 나의 얼굴도 오롯한 오은수는 아니라는 것. 완전한 오은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여기, 맵고 달콤하고 뜨겁고 말캉한 떡을 묵묵히 씹어 삼키고 있는 나의 심장은 1초에 한 번씩 진지하게 뛰고 있다.
p. 440


 
http://nicky82.tistory.com2007-10-01T05:46:20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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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29. 11:38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1 - 8점
장용민 지음/시공사


알라딘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오른쪽 상단에 배너가 떠서 클릭.
익숙한 제목이다 했더니 역시나 예전의 그 책 재판으로 나온 듯^^


음, 역시 시공사...인가?-_-ㅋ


내 기억이틀린 게 아니라면 신은경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었는데.
아마도 난 영화를 계기로 이 책을 봤던 것 같고.
중딩 때였던가, 고딩 때였던가.


한참 김진명의 민족혼을 불태우는 소설류를 많이 볼 때 이 책도 같이 봤던 것 같은데, 아니나다를까, 결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읽는 동안은 "오오, 그런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몰입해서 열심히 봤을텐데 결말이 이해가 안됐거나 납득하기 힘들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일단 내가 설명하면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1997년 출간되고 이듬해 영화화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개정판. 출간 이후 계속된 자료조사와 한계까지 밀어붙인 상상력의 결과를 담아 10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천재시인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모티프 삼고 조선총독부라는 건물을 핵심소재로 끌어들인 팩션으로, 애국주의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천재시인 이상이 죽은 지 70년이 지난 시점. 은표와 지우는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 엄청난 음모가 감춰져 있다는 내용의 소설을 인터넷에 연재한다. 흥미로운 역사 음모론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소설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의 내용이 그대로 현실에 재현되며 관련 인물들이 하나 둘 죽음을 맞이하는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일제의 사라진 보물 '오다니 컬렉션'을 둘러싼 일본의 거대한 음모와 베일에 싸인 이상의 행적. 은표와 지우는 이상과 구인회 멤버들의 시를 해석하며,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아, 알라딘에서 다시 정보를 살펴보니 개정판이란다.
예전의 그 얘기에서 기본은 그대로 두고 꽤나 뜯어고쳤으려나?
흠, 이러면 한 번 보고싶어지기도 하는데.^^


작가의 말을 소개하면서 포스팅은 여기까지.
십 년이 지나서 다시 세상에 인사하는 책이니만치 뭔가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구해볼 책 리스트에 추가.

이따 서점 나가서 구경이나 한 번 해봐야겠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글이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후 처음으로 완성한 장편이었고 나를 세상과 만나게 해준 고마운 글이다. ... 먼지 속에 갇혀 있던 케케묵은 이 글을 다시 펼쳤을 때 나는 치기 어리고 부족했던 10년 전 나를 발견하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초보자가 언제나 그렇듯 나는 단번에 세상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어리석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글을 다지기보다는 치기 어린 자만에 둘러싸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이 책을 펴낸 이후 오랜 시간 나는 매순간 등 뒤에서 매섭게 바라보는 객관이라는 이름의 관찰자를 감수하며 글을 써왔다. 때문에 지금의 나에게 예전의 두서없는 문장들은 수치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힘들게 두 권의 초판본을 다 읽고나자 어렴풋한 작은 불꽃 하나가 나를 비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힘 있는 주제와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독자적인 소재였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다시 손보고 새 옷을 입혀 재출간을 하게 만들었다.

개정판을 준비하며 나는 10년 전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에 기초적인 의무조차 잊어버린 어리석은 부모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이제 먼 길을 돌아온 첫 아이를 보듬어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고 마음을 다잡아 다시 세상에 내보내려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지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 지루한 작업이었다. ...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아이가 세상에 나가고 10년이 지난 후 다시 펼쳐들었을 때 이번과 같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그 청사 건립 이야기>(허영섭 지음, 한울)가 이 책의 사실성을 더하는 데 큰 참고자료가 되었음을 밝혀둔다.

2007년 가을. - 장용민
2007. 9. 26. 15:52

팔란티어 - 김민영

팔란티어 1 - 8점
김민영 지음/황금가지

간만에
밤새 읽어버린 소설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처음 책을 봤을 때 두께에 한 번 겁먹은데다 초반에 진도가 안나가서 애먹었는데 탄력이 붙고 나니,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다는 프링글스 뚜껑을 열어젖힌 양 마지막 페이지가 나올 때 까지 손을 떼지 못했으니 팔란티어 스토리의 매력에 대해서는 두 말 하면 입이 아프리라.


1999년에 한 번 나왔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고등학생이던 당시에 이 책을 봤다면 프로이트를 비롯한 심리학에 대한 내 인식이 달라졌을게다. 혹은 심리학과로 대학 진학을 결심하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심리학에 대한 얘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책이 처음 출판됐을 때의 2011년은 먼 미래였겠지만 이 책을 읽은 시점에서의 2011년은 그리 멀지 않은 고작 몇 년 후의 미래다. 2011년이 되었을 때 정말 우리나라가 소설에서의 모습을 보이진 않을게다. 그래서 약간은 비현실적인 면이 보였지만 그런 건 정말 옥의 티도 안 될 정도의 수작으로 생각된다.


첨단 기기를 이용한 현실감 넘치는 게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대낮의 국회의원 살인사건.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던 두 가지가 알고 보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프로그래머면서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게임의 유저,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게임 회사의 뒤를 쫓는 프로그래머의 친구 형사. 그들을 둘러싼 현실의 얘기가 진행되면서 숨가쁘게 얘기가 진행된다.

이와는 별개로 프로그래머 원철이 게임에 접속해서 레벨을 키워가는 과정 또한 중요하게 진행된다. 게임 초반에는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던 게임 캐릭터가 언제부턴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서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 알고 보니 게임 속의 자신은 평소 이성에 의해 통제되던 무의식이 활동하는 거라고 한다. 그 무의식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게임과 현실이 거의 일치되고, 비밀이 파헤쳐진 후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나름의 반전도 숨어있고 숨가쁘기 그지 없다. 다만 내가 언급해버리면 스포가 되어 버릴 어떤 인물의 정체나 마지막 장면은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하다는 거.


알라딘 서평에서 다른 분들이 지적하셨다시피 '스릴러'라고 부르기에는 뭔가가 좀 모자란 느낌이다. 범죄의 범인과 숨겨진 비밀을 추리하는 과정을 본다면 추리소설의 기본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지만 판타지 세계의 비중이 너무 커서 자주 맥을 끊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팔란티어의 단점 아닌 단점이라면 '판타지 세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얘기도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판타지의 세계관이나 용어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들거라는 거. 나야 뭐 익숙한 얘기들이니 재밌게 볼 수 있었지만 판타지 소설을 전혀 보지 않은 친구에게는 재미있는 책이 있다고 설명을 하다가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임에는 틀림 없다. 순수 문학이 아니라 통속 문학이니만치 문학적 가치나 의미를 찾을 수는 없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그 시간을 만끽할 수 있으니 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팔란티어 2 - 8점
김민영 지음/황금가지
 
팔란티어 3 - 8점
김민영 지음/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