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s/책'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07.05.16 왜? - 니콜라이 포포프 2
  2. 2007.05.16 들돼지를 프로듀스 - 시라이와 겐 2
  3. 2007.05.13 반야 - 송은일 6
  4. 2007.03.22 카스테라
  5. 2007.03.20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2007. 5. 16. 10:11

왜? - 니콜라이 포포프

왜?
니콜라이 포포프 지음/현암사
작년 생일에, 지금은 남이 되어버린 옛지인에게 선물받은 책이다.


이 책에는 글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제목이나 작가 소개 이런 건 제외^^;)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그림만으로 밀고 나가지만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뭔가를 느끼고 말았다.


'왜?'의 주인공은 개구리와 쥐다.
물론 그들이 인간을 대변한다.



표지에서 보듯이, 풀밭에 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있다. 그는 꽃향기를 즐기면서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다. 그러다 갑자기 땅을 쑥 뚫고 쥐 한마리가 우산을 들고 나타난다. 주변을 둘러보는 쥐, 개구리와 쥐는 잠시 서로를 응시하다 쥐가 우산을 팽개치고 개구리에게 달려든다. 아마 자기가 가진 우산보다 개구리의 꽃이 더 마음에 들었나보다.

다음 장에서 개구리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쫓겨나있고 두 손을 번쩍 들고있다. 그리고 쥐는 개구리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꽃을 들고 꽃향기를 즐긴다. 어디선가 다른 개구리가 또 나타나서 쥐를 공격한다. 개구리의 승리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또 다른 쥐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위해를 가한다.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고 서로를 함정에 밀어넣으려 노력하고 자신은 탱크 속에 안전히 숨으려 한다. 아주 난리가 났다.

거의 마지막장에 다다르면 이미 처음의 꽃밭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해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의 전쟁으로 초토화가 되어버렸고 폭탄의 파편이나 탱크의 잔해 등 전쟁의 흔적만이 쓸쓸하다. 마지막 페이지, 최초의 쥐가 바위에 앉아 꽃을 들고 있지만 그 꽃은 이미 꽃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이다. 다른 쪽에서는 처음의 그 개구리가 너덜너덜해진 우산을 들고 있다.


글로 써보니 어째 지리해졌는데, 이 책은 직접 봐야 알 수 있다.
그 우울한 색감과 분위기, "뭐야~"하면서 이마를 찌푸리게 되지만 뭔가가 가슴에 끈끈하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태초에, 먹고살만한 여유가 생기면서 더 편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사람들은 전쟁을 시작했다 한다. 요즘의 전쟁또한 스케일만 커졌을 뿐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게다. 자국의, 혹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하여 인간으로써의 기본 개념은 어디론가 팽개쳐두고 참혹한 결과를 낳는 전쟁을 한다. 살아있는 인간이 제일 잔인한 것이다.


그림책이라고 하지만, 니콜라이 포포프의 "왜?"는 어린이들이 보기에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어른인 내가 봐도 감정의 동요는 느꼈지만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전메세지"를 담고 있는 이런 책들도 "그리하여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하는 동화책들만큼이나 애들에게 접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반전(反戰)"은 당연한 거잖아.
2007. 5. 16. 01:37

들돼지를 프로듀스 - 시라이와 겐

들돼지를 프로듀스
시라이와 겐 지음, 양억관 옮김/황매(푸른바람)


2006년 4분기 드라마였던가; 3분기 드라마였던가;
여튼 2006년에 방송했던 일본 드라마 '노부타를 프로듀스'의 원작 소설 되시겠다.

드라마가 꽤 괜찮았기에 원작 소설을 구입해서 보게 됐었는데,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원작이 있는 경우, 그것을 영상화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잘 없는데, 드물게 이 노부타는 드라마쪽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야마삐가 잘생겨 보여서 그랬을까?^^;


드라마에서의 노부타는 음침한 인상을 가진 소심하고 겁많은 전학생 소녀지만 원작에서의 노부타는 뚱뚱하고 스타일도 좋지 않은, 딱 이지메 당하기 좋은 인상의 소년이다. 뭐, 시청률을 생각해서 노부타를 여자애로 바꾸고, 또 원작에 없는 아키라라는(야미삐가 맡은 역) 인물을 첨가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극의 인물을 더 다양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주인공 키리타니 슈지는 급우들 사이에서의 "인기"에 집착하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소년이다. 아니, 그 또래의 수준에 비해서는 조금 더 생각이 깊은듯하기도 하나, 어찌보면 정저지와격으로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수렁에 빠지기도 했으니 그 생각이 올바르다고만 할 수도 없겠지.


슈지는 "유행어"를 만들거나 "방과후 모임"에 빠지지 않는 등, 친구들과의 원만한 관계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 관계는 겉으로만의 관계일 뿐이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서의 진희가 그러했듯이, 슈지 역시도 진짜 자신과 보여지는 자신을 구분짓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유치하다"고 욕하면서도 미움받거나 따돌림 당하는 건 싫기 때문에 늘 동급생들에게 맞춰주면서 인기인을 유지하는 재미없는 일상의 연속이 계속된다.

그런데 그네 반에 한 전학생이 오게 된다. 그의 이름은 고타니 신타, 외모는 뚱뚱한데다 오타쿠를 연상시킬만큼 음침하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전학 첫날 모두의 관심이 대상이 된 전학생은 순식간에 왕따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 고타니를 보다 못한 슈지, 노부타를 인기인으로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그래서 제목이 노부타를 프로듀스다). 아니, 애초에 고타니가 슈지에게 자신을 바꿔달라고 부탁했었던가; 어찌됐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 따위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슈지는 고타니를 변신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신타의 다른 발음이 노부타라 하고, 노부타는 일본어로 들돼지라한다.)


결과는 어이없을만치 성공적이었다. 노부타는 정말 반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인기인이 되버린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노부타에게 속으로 미안한 감정도 느끼는 슈지,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다.

물론, 사건은 이 때 벌어진다. 편의점에 갔다가 불량학생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괜한 일에 말려들기 싫어서 피했는데 알고보니 그 피해자가 자신의 친구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 동안의 슈지의 가면이 속속들이 들어나게 되고 급기야 그는 왕따가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이까지는 노부타의 성별이나 세세한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드라마와 소설이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결말은 좀 다르다.
드라마에서의 슈지가 노부타와 아키라에 의해서 진정한 "우정"을 깨닫게 된다면(은근 야마삐랑 마키의 커플링을 바랐었는데 그 바람은 산산히 부서졌다ㅜㅜ), 소설에서의 슈지는 다른 학교로 전학가서 거기서 또 새로운 가면을 덮어쓰게 된다.


헉, 어째 줄거리만 길게 늘여써버린 듯 하다, 시작할 떈 짧게 쓰고 말려고 했었는데, 끙;

이 소설의 작가는 상당히 젊다.
나보다 어린 85년생이었던가 83년생이었던가;
그래서 젊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의 문체는 흡사 우리나라의 인터넷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확 들어버려서 책을 덮고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성세대와는 또 다른, 현재 젊은이들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고, 나 스스로도 "보여지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괴리에 종종 고민하기에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로만 보자면 발랄한 청춘물이었던 드라마쪽이 더 유쾌했다.


덧)
책은 1년도 전에 봤지만, 갑자기 쓰고 싶어져서^^;
2007. 5. 13. 11:00

반야 - 송은일

반야 1
송은일 지음/문이당

나는 책을 고를 때 은근히 편식이 심한 편이다.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다 읽는 듯 하지만, 한 번 맘에 든 작가는 지속적으로 사랑해주고 한 번 눈에 난 작가는 타인의 평가야 어떻든 내 마음에 안차므로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새로운 작가를 접할 때는 '첫작품'이 주는 느낌이 굉장히 중요하다.
 
솔직히 '송은일'이라는 작가는 처음 접해본 작가였다. 우연한 기회로 이 작가의 '반야'라는 책을 접하게 됐고, 생각도 못한 흡입력에 놀라며 결국 일주일에 나눠봐야지 예상했었던 책을 이틀만에 다 읽고야 말았다. 그 만큼 눈을 못 떼게 하는 뭔가가 이 작가에게, 이 작품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제일 처음 책 제목인 '반야'를 접했을 때 생각났던 건 '반야심경'이었다. 실제 책 내용을 읽어보니 반야심경의 심경이 맞아서 살풋 웃게 됐었다지. 참고로 반야의 늦깎이 여동생의 이름은 '심경'이다:)

그리고 또 반야에 대해서 책을 읽기 전에 알 수 있었던 것은 출판사의 짤막한 소개와 책에 둘러진 띠에 씌인 말들. 조선시대에 인간 대접을 받기 힘들었던 무녀의 얘기를 다룬다 했었다. 소싯적에 접했던 '퇴마록'이나 '무'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무인(巫人)들의 얘기를 본 적은 있지만, 조선시대의 무인 얘기는 또 처음인지라 나름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지. 막상 책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자신을 던져 악과 싸우는 피투성이 검투사 무녀 반야"라고 적힌 문구는 사실 날 당황하게 했었다. '응? 무녀얘기라더니? 이 사람이 나중에 무술을 배워서 칼 들고 설치는건가'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 말이다. 실제 '검투사'라는 단어 때문에 계속 '검은 언제 배우는거지? 진짜 배우는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뭐 이런 얘기를 했으면 배우지 않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으려나, 하핫.


각설하고, 이제 반야에 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어찌되었든, 위에서 설명한대로 반야는 무인이 천인 취급을 받던 조선시대를 살아갔던 한 여자였다. 그 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났기에 일개 천인들과는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다른 삶을 살았으며 그 시대의 다른 여자들과도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던 여자가 반야였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
반야 개인에 촛점을 둔 '미타원 식구들'이야기, 그리고 설핏 동학당을 떠올리게 하는 '사신계'이야기. 나중에야 그 둘이 합치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되지만, 어쨌든 크게 두 개의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반야의 어미인 채정은 참 기구한 삶을 살았던 "여자"다. 누구의 어미니 여자라는 말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작품 속에서 가장 여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 그녀이기에 '여자'를 강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양가짓 규수로 태어났지만 굴레에서 스스로 뛰쳐나와 무녀의 양녀로 들어가서 무녀를 낳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데려와 모두 진짜 자신의 아이로 삼기도 하며, 세월이 흘러 어린 시절의 첫사랑과 재회하면서 버렸던 자신의 과거를, 그리고 여자인 자기 자신을 찾게 되는, 자신의 존재로 인해 자식들이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아 자신을 버리게 되는 그런 여자다. 어쩌면 주인공인 반야보다도 훨씬 다채로운 삶을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리고 주인공인 반야,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내림을 받지 않아도 신기가 있는, 무녀로써의 재능이 있다못해 넘치는 아이였다. 굿을 하는 쪽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점을 보거나 사람의 미래를 내다보고 귀신과 소통하는 그런 무녀. 아무리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가 천시받던 조선시대였지만 민간신앙의 최고봉인 점집 미타원의 주인 꽃각시 보살 반야는 그 뛰어난 능력으로 사람들 입소문을 타다, 나중에 궁궐까지 드나들며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여자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여러 남자들과의 인연으로 얽히고 급기야 그것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게 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을 능력의 일부로 사용했을 뿐이지 진정한 여자로 살다가지는 못했다고 보여진다. 소설의 주인공이면 무릇 완벽한 가운데서도 현실적인 맛이 있어야 끌리기 마련인데 그녀에게서는 인간의 매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해서 더더욱 정이 안가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신계에 대해서 짤막하게 얘기해야겠다. 아무래도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신계(四神界)'는 작가의 말에 의하면 '현실 속에 살면서도 현실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그 전 시대들에 비하면 완화되었다지만, 그래도 엄격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어찌 보면 발칙하고 어찌보연 가엾지만 너무나 대견한, 시대를 앞서가는 비밀결사에 가까운 단체였다.  

책에 있는 사신계 강령을 소개해본다.

사신계 강령(四神界 綱領)

凡人은 有同等自由而以己志로 享生底權利라.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가꿀 권리가 있다.

어쩌면 내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가졌던 사상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이며 이상적이다. 지금이야 민주주의를 강제 주입식으로 교육받아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연히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야 있지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소리냔 말이다. 그만큼 인간으로는 당연한 말이지만 시대와 맞지 않는 말이었기에 그들은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조용히 자신들만의 조직을 운영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줄거리를 얘기하자면 또 한 없이 길어질테니, 반야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야하지 싶다. 읽기는 꽤 재미있게 읽었는게 글로 쓰다보니 딱히 긍정적인 내용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책을 읽으면서 세부적인 사항이나 에피소드야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닥 내 맘에 드는 소설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뚜렷한 주제 의식 없이 그냥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그런 걸수도 있겠지. 슬픈 여자이야기가 보고 싶었는데 예쁘고 유능한 성격 안좋은 여자이야기를 봐버렸으니 말이다.


위에서 반야가 매력없는 인물이라 했는데 정정하고 싶다. '여자'로서의 반야나 '소설' 주인공으로서의 반야는 내게 매력없는 인물이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아, 이거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은 계속 들었었기 때문이다. 고로,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어쩌면 매력적인 인물이 반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것 저것 볼거리가 많을 것 같아서일까?


쓰다보니 글이 꽤 길어진 듯 하다. 내가 좋아하는 서정적인 문체도 신파적 내용도 아니고, 뒷통수를 때리는 반전도 없는 그런 소설이었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나름 이런저런 생각도 할 수 있게 해주었던 소설로 남지 싶다. 그리고 작가 송은일.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녀는 꽤 재능있는 이야기꾼인 것 같으니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2007. 3. 22. 09:19

카스테라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문학동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너무나 좋았기에, 크게 기대하고 봤다가 낭패감을 느낀 박민규의 단편집.


그의 다른 작품에서 그러하듯...이라고 쓰려했는데 생각해보니 삼미 슈퍼스타즈 말고는 그의 작품을 본 기억이 없구나;;
삼미에서 그러했듯이 카스테라 전편에서도 그는 천민 자본주의에 냉소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존재로 본다, 어느 종교에서 얘기하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과 통한다면 통하는 걸까?


어디에서 읽었는지 생각 안나는데, 1990년대의 김영하가 맡던 역할을 2000년대에 와서는 박민규가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순수 문학보다는 대중 문학에 가깝고 현실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비틀어 보는 거 보면 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김영하가 비속어나 은어를 아끼지 않고 사용하는 데 비해 박민규는 그만의 독창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기발하다. 김영하가 현실적이라면 박민규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사용해 블랙 코미디, 혹은 동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난 박민규보다는 김영하를 더 좋아하니 뭐;


이 책에서는 [카스테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아, 하세요 펠리컨], [야쿠르트 아줌마], [코리언 스텐더즈], [대왕오징어의 기습], [헤드락], [갑을고시원 체류기] 의 단편이 살아숨쉰다.
한 번에 다 읽기엔 음미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하루에, 혹은 한 번에 단편 하나씩 끊어읽었었는데 덕분에 몇 달이 지나고 난 지금은 두루뭉실한 이미지만 남아있어서 씁쓸하다.
10편의 단편 중 서너개는 정말 쉴 새 없이 킥킥대면서 배아프게 웃으면서 봤었고 몇 개는 "아,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심정으로 전투적으로(군인이냐;;) 봤었기에 "마음에 안들어"와 "재밌었지"가 팽팽히 맞서고 있달까?

한 번 읽고, "아, 이 책 누구 줘야겠다, 의외로 경택이 취향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었고, 결국 이 책 내 손을 떠나고야 말았다. 삐대함을 사랑하는 경택군이 아닌 황진이 양에게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 두 권을 선물했는데 다행히 진이가 둘 다 좋아라해줘서 다행이었달까;



시작할 때 배경은 분명히 현대 대한민국인 것 같은데 쉴 틈을 주지 않고 이(異)세계로 빠져대는 박민규의 카스테라,
"정말?" 하는 의심이 후반부로 갈수록 "정말"하는 동감으로 바뀌니 알 수 없다, 정말.


개인적으로 추천 작품은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아, 하세요 펠리컨], [야쿠르트 아줌마], [갑을고시원 체류기].
야쿠르트 아줌마는 특히 변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배를 잡고 구를거라는 데 소심하게 5백원 걸어본다-.-;



덧)

황진이양이 [동정없는 세상]의 박현욱과 [세계영웅전설]의 박민규를 동일인물로 알고있어서 당황;;
'아니야, 둘이 다른 사람이야, [아내가 결혼했다]는, 어라, 누구더라;;'이러면서 '박'과 '욱'만 입에 맴돌아서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내뱉을 뻔 했었다지, 하지만 내 집요함으로 '박현욱'을 기억해냈지만 정작 황진이양은 어차피 둘을 동일인물로 알고있었으니 심드렁했을 뿐orz

찐, 아내가 결혼했다는 박현욱이 맞아;;; 나 그 사람 데뷔작 재밌게 봤다고 ㅋㅋ;;
2007. 3. 20. 13:39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이토야마 아키코 지음, 권남희 옮김/작가정신

별 생각 없이 집어들었던 책.
아마, 번역가가 권남희씨여서 집어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얇기도 했었고-


이 책은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제작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와 그 후속편 격인 [오다기리 다카시의 변명], 그리고 [알리오 올리오]라는 단편이 있으니 두 편이라는 게 맞는 표현일까?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는 짝사랑을 하는, 혹은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맞아, 맞아"라고 공감할 얘기들로 가득하다. 고등학교 때 한 눈에 반해서 12년 째 선배에게 들이대는 주인공, 하지만 그 남자 알 수 없기만 하다-_-;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고, 포기하고 다른 남자를 사귀면 찝적대오고, 애정을 보이면 부담스러워하고, 중요한 일이 있으면 찾아대고.
읽는 내가 "아, 어쩌라고, 이런 미적지근한 관계!!"라고 버럭 짜증을 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여전히 좋아하기만 하더라만;


이도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관계를 못견뎌하는 나로써는 맘이 있어보이는데도 튕겨대는 오다기리가 한 없이 미울 수 밖에, 게다가 질질 끌려다니는 여주인공 역시도 절대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음, 동족 혐오인가-┏


이에 비해, [오다기리 다카시의 변명]에서는 튕기는 남자 오다기리와 그를 쫓아다니는 그녀의 시점이 교차된다. 이 남자,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다. 천하무적 안하무인에 마이 페이스랄까-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도 적당히 하라구요, 쯔쯧.
 

여튼, 스쳐지나가는 단 한 줄의 독백에서 오다기리 역시도 그녀를 "특별취급" 하는 건 알 수 있지만 둘의 관계는 여전히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가족보다는 가깝지만 연인이나 친구로 정의하기엔 모호한 그런 관계.
나중에 각자 결혼을 하더라도 유지될 것 같은 둘의 관계(여주는 아예 자기가 오다기리 선배랑 결혼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않는다-.-;).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사랑 얘기를 해대는 파울로 코엘료나 에쿠니 가오리의 사랑 얘기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지만, 그래도 기대에는 못미쳐서 어쩐지 아쉽다.


이에 비해서, [알리오 올리오]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우연찮은 기회로 조카인 형의 딸과 천체 박물관에 가게 된 후 그녀와의 관계를 맺게 된다(절대 육체관계는 아니다-_-;;).
실시간과 디지털, 빠름을 추구하는 조카와 아날로그와 실존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기준에서의 성공과는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삼촌. 핏줄이기는 하지만 가깝지는 않은 그들의 사이에 메일이 아닌 "편지"가 오고가면서 생기는 변화는 순수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하다.
나 역시도 요즘에 "아날로그"를 잃어가는 것 같아서 더욱 둘의 관계가 부러웠다.


번역후기까지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 아하, 이 책도 일본 "서점대상" 출신작이었구나.
그러나 이제까지의 서점 대상이 내 맘에 쏙 들었던 것에 비해서(밤의 피크닉, 공중 그네, 박사가 사랑한 수식, 더 있던가;;) 이 작품은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는 게 아쉽다.
다 같은 사람과 사람의 얘기지만 남녀간의 애정에 비중을 둬서 그런 거였을까-?
마지막 짤막한 단편인 [알리오 올리오]는 미소지으면서 덮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이거 영화로 만들면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것이 꽤나 재밌겠다>_<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