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42건

  1. 2007.05.26 뿌리 깊은 나무 - 이정명 2
  2. 2007.05.16 들돼지를 프로듀스 - 시라이와 겐 2
  3. 2007.05.14 면장선거 -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3편) 6
  4. 2007.05.13 반야 - 송은일 6
  5. 2007.05.01 황혼녘 백합의 뼈 - 온다 리쿠 2
2007. 5. 26. 18:34

뿌리 깊은 나무 - 이정명

뿌리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밀리언하우스

이벵신의 강림으로 손에 떨어진 책.
시험의 압박으로 읽기를 미뤄놓고 있다가 시험 결과야 어떻든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니 집에 와서 드디어 이 책을 펴들고 2시간 걸려 겨우 헤치우다.
잠도 모자라고 마음도 싱숭생숭한 것이 집중 안되서 꽤 곤란했었다지.


지난 번 '반야'에 이어서 또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반야가 숙종대에서 시작해서 영조대를 배경으로 하고 시간도 쑥쑥 잘 지나가서 굵직한 사건이 쉬지 않고 터지는 반면, 뿌리 깊은 나무는 오로지 세종대왕대, 그것도 1443년 훈민정음 반포일 직전의 며칠 동안의 얘기를 진득하게 풀어낸다.


2권까지 마저 다 읽고 리뷰를 써야 마땅하지만, 따로 주문한 2권이 언제 올지 모르므로 방금 내려놓은 1권 중심으로 일단 얘기해보고자 한다.(이래서 시리즈물은 한 번에 질러줘야 되는거다;)


우선 책 허리띠에 씌여진 말을 소개해본다.

충격과 감동, 꼬리를 무는 입소문, [다빈치 코드]보다 놀랍고 [장미의 이름]보다 재미있다!
2006 네티즌 선정도서

뭐, 대강 이쯤이다.
원래도 추리소설을 좋아하며 역사물 또한 내 취향인데, 한국형 팩션인, 그것도 추리소설의 형실을 빌고 있는 이 소설은 일단 외형적으로는 내 취향 100% 되시겠다.
장미의 이름은 어디까지 보다 말았는지 기억이 모호하고 뒤늦게 주변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해서 접하게 됐던 다빈치 코드도 허술한 헐리우드 영화 한 편 보는 느낌이었기에(결국 영화화되긴 했지만ㅎㅎ;) 결국 이 책도 그러면 어떡하나 조금 걱정도 됐었다.


음, 관련없는 서두가 너무 길었다. "책"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이 책은 차례가 다른 책에 비해서 굉장히 특이하다. 소제목과 페이지의 나열이 일반적인 책의 목차라면 이 책은 큰 장 안에 작은 소제목이 없이 번호로만 나뉘고 그 챕터 안의 내용을 몇 줄로 요약하고 있다. 그 소제목들만 읽어보면 대강의 줄거리가 파악 될 정도.  

주인공은 강채윤이라는 말단 겸사복 청년이다(겸사복은 조선시대 기병 중심의 왕실 친위군이라 한다.). 어린 시절 세종이 지은 '농사직설'을 바탕으로 농사를 지어 그 효과를 체득한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함길도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는 야인들의 침입에 결국 그의 가족은 살해당하고 그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야인들에 맞서싸운다. 그러다가 김종서 장군의 밑에 들어가 병졸 노릇을 하다 그의 소개로 궁에 들어가 겸사복의 지위를 얻게 된다.

사건은 그가 숙직을 맡던 어느날 밤 궁내에서 살인사건이 밝혀지면서 시작된다. 왕의 친애를 받은 집현전의 말단 학자가 가슴에 칼을 꽂은 채 우물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말단 겸사복인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사체의 상태, 그리고 검시결과, 주변 정황을 미루어 꼬리를 하나 잡아내나 싶으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지니 정말 사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실제 강채윤이라는 인물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바 없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국사 교과서 혹은 야사에서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들이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봤던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 그네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데 어찌나 기뷴이 묘하던지.

국사책에서 "시험용"으로 외워야했던 했던 단편적인 지식들이 총출동되서 하나의 짜임새있는 이야기로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은 꽤 묘했다. 게다가 국정교과서에서 하는 애기와는 살짝 다른 해석들이 돋보이기도 했다. 늘 자주민족, 독립국가를 강조해왔던 조선이 사실은 명에게 있어서 속국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나 그 외에 다른 지배층에서 숨기고 싶어하는 얘기들을 까발린 점이라던가 말이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립하고 싶어하는 성향은 조선 후기 근대가 되어서야 나타났다고 생각했는데 성리학자들이 등한시하는 율서산이나 음악 등의 잡학을 장려하고 고유의 활자를 만들어 낸 등을 미루어보건데 세종대왕 때 일찌기 그것을 꿈꿨다고 하겠다.

시험용으로 배웠던 지식에서 조선 초기의 훈구파들은 다른 학문에 관대하고 부국강병에도 힘썼으며 자주적이었다는데 소설속에 나오는 그네들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이 책이 신선하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그 외 반인(백정) 가리온이나 무수리 소이 등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들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허준보다 앞서 사람의 해부를 하고, 어의들과는 또 다른 치료법을 가진 가리온을 보고, 또 그런 그를 혐오하는 채윤을 보면서 중세의 서양에서도 그랬지만 동양에서도 크게 다른 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불만을 하나 꼽아보자면,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화가 좀 어색했다는 것 정도?
"~~했어요"라는 현대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전형적인 그 시대의 어휘와 어투를 사용하기도 하니 이도 저도 아니어서 못돼먹은 성질머리에 마음에 걸리더라는 거다. 또 직위나 서적, 사건에 대해서 주석을 달아준 것은 좋았지만 사전을 찾아봐야 알 수 있는 단어도 꽤나 있었다는 것. 뭐, 문맥적으로야 대강 파악은 되지만 그래도 어려운 어휘가 꽤나 눈에 띄였다. 하지만 예쁜 고유어를 많이 쓴 건 칭찬할 점!!


일단 1권을 다 읽고난 소감을 얘기하자면, 역시 소문난 잔치에는 생각보다 먹을 게 없다, 정도일까? 혹은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수도 있겠지.
어찌보면 이제까지의 상식이나 통념을 뒤엎는 발상임이야 틀림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알려진 사실의 논리적인 배열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물론 이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일깨운 것은 높게 산다.).
아직 2권까지 다 보지 못했으니 섣불리 판단할수야 없는거니 일단 2권 주문 완료.
다 읽고 괜찮으면 다시 얘기하는거고, 귀찮으면 마는거고 ㅎㅎ;

또 하나 사족을 덧붙인다면, 이 책에 대해서 알았을 때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어? 별순검 소설판?!"이었다. 조선시대 과학수사, 비슷하잖아!!ㅎㅎ  
2007. 5. 16. 01:37

들돼지를 프로듀스 - 시라이와 겐

들돼지를 프로듀스
시라이와 겐 지음, 양억관 옮김/황매(푸른바람)


2006년 4분기 드라마였던가; 3분기 드라마였던가;
여튼 2006년에 방송했던 일본 드라마 '노부타를 프로듀스'의 원작 소설 되시겠다.

드라마가 꽤 괜찮았기에 원작 소설을 구입해서 보게 됐었는데,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원작이 있는 경우, 그것을 영상화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잘 없는데, 드물게 이 노부타는 드라마쪽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야마삐가 잘생겨 보여서 그랬을까?^^;


드라마에서의 노부타는 음침한 인상을 가진 소심하고 겁많은 전학생 소녀지만 원작에서의 노부타는 뚱뚱하고 스타일도 좋지 않은, 딱 이지메 당하기 좋은 인상의 소년이다. 뭐, 시청률을 생각해서 노부타를 여자애로 바꾸고, 또 원작에 없는 아키라라는(야미삐가 맡은 역) 인물을 첨가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극의 인물을 더 다양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주인공 키리타니 슈지는 급우들 사이에서의 "인기"에 집착하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소년이다. 아니, 그 또래의 수준에 비해서는 조금 더 생각이 깊은듯하기도 하나, 어찌보면 정저지와격으로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수렁에 빠지기도 했으니 그 생각이 올바르다고만 할 수도 없겠지.


슈지는 "유행어"를 만들거나 "방과후 모임"에 빠지지 않는 등, 친구들과의 원만한 관계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 관계는 겉으로만의 관계일 뿐이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서의 진희가 그러했듯이, 슈지 역시도 진짜 자신과 보여지는 자신을 구분짓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유치하다"고 욕하면서도 미움받거나 따돌림 당하는 건 싫기 때문에 늘 동급생들에게 맞춰주면서 인기인을 유지하는 재미없는 일상의 연속이 계속된다.

그런데 그네 반에 한 전학생이 오게 된다. 그의 이름은 고타니 신타, 외모는 뚱뚱한데다 오타쿠를 연상시킬만큼 음침하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전학 첫날 모두의 관심이 대상이 된 전학생은 순식간에 왕따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 고타니를 보다 못한 슈지, 노부타를 인기인으로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그래서 제목이 노부타를 프로듀스다). 아니, 애초에 고타니가 슈지에게 자신을 바꿔달라고 부탁했었던가; 어찌됐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 따위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슈지는 고타니를 변신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신타의 다른 발음이 노부타라 하고, 노부타는 일본어로 들돼지라한다.)


결과는 어이없을만치 성공적이었다. 노부타는 정말 반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인기인이 되버린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노부타에게 속으로 미안한 감정도 느끼는 슈지,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다.

물론, 사건은 이 때 벌어진다. 편의점에 갔다가 불량학생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괜한 일에 말려들기 싫어서 피했는데 알고보니 그 피해자가 자신의 친구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 동안의 슈지의 가면이 속속들이 들어나게 되고 급기야 그는 왕따가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이까지는 노부타의 성별이나 세세한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드라마와 소설이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결말은 좀 다르다.
드라마에서의 슈지가 노부타와 아키라에 의해서 진정한 "우정"을 깨닫게 된다면(은근 야마삐랑 마키의 커플링을 바랐었는데 그 바람은 산산히 부서졌다ㅜㅜ), 소설에서의 슈지는 다른 학교로 전학가서 거기서 또 새로운 가면을 덮어쓰게 된다.


헉, 어째 줄거리만 길게 늘여써버린 듯 하다, 시작할 떈 짧게 쓰고 말려고 했었는데, 끙;

이 소설의 작가는 상당히 젊다.
나보다 어린 85년생이었던가 83년생이었던가;
그래서 젊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의 문체는 흡사 우리나라의 인터넷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확 들어버려서 책을 덮고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성세대와는 또 다른, 현재 젊은이들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고, 나 스스로도 "보여지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괴리에 종종 고민하기에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로만 보자면 발랄한 청춘물이었던 드라마쪽이 더 유쾌했다.


덧)
책은 1년도 전에 봤지만, 갑자기 쓰고 싶어져서^^;
2007. 5. 14. 01:15

면장선거 -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3편)

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은행나무


남쪽으로 튀어 이후에 나름 반가운 오쿠다 히데오의 신간소식이다.
변태의사 이라부, 그가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도 4개의 단편이 묶여서 한 권의 소설로 나오게 된 듯 하다.


상식과 개념이 보통 사람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변태의사 이라부.
남들이야 속이 타든 말든 자기만 좋으만 만사형통인 민폐쟁이 마이페이스 이라부.


내 주변에 외모는 그와 정반대지만 성격이나 행동패턴만은 정말 똑같은 사람이 있기에 사람들이 이라부를 만날 때 당하는 정신적 고통을 공감하며 전작들을 봤었더랬지.


이번에는 또 무슨 무개념 짓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까?


책 소개나 표지에서 '주변에 이라부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글을 보면서 '남의 얘기니까 그렇지 실제 당해봐'라고 생각한 내가 역시 삐뚤어 진 것일까?
그 사람들은 병원 갈 때나 가끔씩 당하지 몇 년을 민폐형 마이페이스에게 휘둘리면 정말 질리게 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인것을.


어쨌거나,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 전개방식은 좋아라하기에 변태 이라부는 싫지만 예약주문-
리뷰는 언젠가 생각나면-_-;;

2007. 5. 13. 11:00

반야 - 송은일

반야 1
송은일 지음/문이당

나는 책을 고를 때 은근히 편식이 심한 편이다.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다 읽는 듯 하지만, 한 번 맘에 든 작가는 지속적으로 사랑해주고 한 번 눈에 난 작가는 타인의 평가야 어떻든 내 마음에 안차므로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새로운 작가를 접할 때는 '첫작품'이 주는 느낌이 굉장히 중요하다.
 
솔직히 '송은일'이라는 작가는 처음 접해본 작가였다. 우연한 기회로 이 작가의 '반야'라는 책을 접하게 됐고, 생각도 못한 흡입력에 놀라며 결국 일주일에 나눠봐야지 예상했었던 책을 이틀만에 다 읽고야 말았다. 그 만큼 눈을 못 떼게 하는 뭔가가 이 작가에게, 이 작품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제일 처음 책 제목인 '반야'를 접했을 때 생각났던 건 '반야심경'이었다. 실제 책 내용을 읽어보니 반야심경의 심경이 맞아서 살풋 웃게 됐었다지. 참고로 반야의 늦깎이 여동생의 이름은 '심경'이다:)

그리고 또 반야에 대해서 책을 읽기 전에 알 수 있었던 것은 출판사의 짤막한 소개와 책에 둘러진 띠에 씌인 말들. 조선시대에 인간 대접을 받기 힘들었던 무녀의 얘기를 다룬다 했었다. 소싯적에 접했던 '퇴마록'이나 '무'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무인(巫人)들의 얘기를 본 적은 있지만, 조선시대의 무인 얘기는 또 처음인지라 나름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지. 막상 책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자신을 던져 악과 싸우는 피투성이 검투사 무녀 반야"라고 적힌 문구는 사실 날 당황하게 했었다. '응? 무녀얘기라더니? 이 사람이 나중에 무술을 배워서 칼 들고 설치는건가'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 말이다. 실제 '검투사'라는 단어 때문에 계속 '검은 언제 배우는거지? 진짜 배우는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뭐 이런 얘기를 했으면 배우지 않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으려나, 하핫.


각설하고, 이제 반야에 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어찌되었든, 위에서 설명한대로 반야는 무인이 천인 취급을 받던 조선시대를 살아갔던 한 여자였다. 그 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났기에 일개 천인들과는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다른 삶을 살았으며 그 시대의 다른 여자들과도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던 여자가 반야였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
반야 개인에 촛점을 둔 '미타원 식구들'이야기, 그리고 설핏 동학당을 떠올리게 하는 '사신계'이야기. 나중에야 그 둘이 합치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되지만, 어쨌든 크게 두 개의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반야의 어미인 채정은 참 기구한 삶을 살았던 "여자"다. 누구의 어미니 여자라는 말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작품 속에서 가장 여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 그녀이기에 '여자'를 강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양가짓 규수로 태어났지만 굴레에서 스스로 뛰쳐나와 무녀의 양녀로 들어가서 무녀를 낳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데려와 모두 진짜 자신의 아이로 삼기도 하며, 세월이 흘러 어린 시절의 첫사랑과 재회하면서 버렸던 자신의 과거를, 그리고 여자인 자기 자신을 찾게 되는, 자신의 존재로 인해 자식들이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아 자신을 버리게 되는 그런 여자다. 어쩌면 주인공인 반야보다도 훨씬 다채로운 삶을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리고 주인공인 반야,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내림을 받지 않아도 신기가 있는, 무녀로써의 재능이 있다못해 넘치는 아이였다. 굿을 하는 쪽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점을 보거나 사람의 미래를 내다보고 귀신과 소통하는 그런 무녀. 아무리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가 천시받던 조선시대였지만 민간신앙의 최고봉인 점집 미타원의 주인 꽃각시 보살 반야는 그 뛰어난 능력으로 사람들 입소문을 타다, 나중에 궁궐까지 드나들며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여자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여러 남자들과의 인연으로 얽히고 급기야 그것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게 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을 능력의 일부로 사용했을 뿐이지 진정한 여자로 살다가지는 못했다고 보여진다. 소설의 주인공이면 무릇 완벽한 가운데서도 현실적인 맛이 있어야 끌리기 마련인데 그녀에게서는 인간의 매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해서 더더욱 정이 안가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신계에 대해서 짤막하게 얘기해야겠다. 아무래도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신계(四神界)'는 작가의 말에 의하면 '현실 속에 살면서도 현실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그 전 시대들에 비하면 완화되었다지만, 그래도 엄격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어찌 보면 발칙하고 어찌보연 가엾지만 너무나 대견한, 시대를 앞서가는 비밀결사에 가까운 단체였다.  

책에 있는 사신계 강령을 소개해본다.

사신계 강령(四神界 綱領)

凡人은 有同等自由而以己志로 享生底權利라.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가꿀 권리가 있다.

어쩌면 내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가졌던 사상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이며 이상적이다. 지금이야 민주주의를 강제 주입식으로 교육받아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연히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야 있지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소리냔 말이다. 그만큼 인간으로는 당연한 말이지만 시대와 맞지 않는 말이었기에 그들은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조용히 자신들만의 조직을 운영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줄거리를 얘기하자면 또 한 없이 길어질테니, 반야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야하지 싶다. 읽기는 꽤 재미있게 읽었는게 글로 쓰다보니 딱히 긍정적인 내용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책을 읽으면서 세부적인 사항이나 에피소드야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닥 내 맘에 드는 소설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뚜렷한 주제 의식 없이 그냥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그런 걸수도 있겠지. 슬픈 여자이야기가 보고 싶었는데 예쁘고 유능한 성격 안좋은 여자이야기를 봐버렸으니 말이다.


위에서 반야가 매력없는 인물이라 했는데 정정하고 싶다. '여자'로서의 반야나 '소설' 주인공으로서의 반야는 내게 매력없는 인물이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아, 이거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은 계속 들었었기 때문이다. 고로,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어쩌면 매력적인 인물이 반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것 저것 볼거리가 많을 것 같아서일까?


쓰다보니 글이 꽤 길어진 듯 하다. 내가 좋아하는 서정적인 문체도 신파적 내용도 아니고, 뒷통수를 때리는 반전도 없는 그런 소설이었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나름 이런저런 생각도 할 수 있게 해주었던 소설로 남지 싶다. 그리고 작가 송은일.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녀는 꽤 재능있는 이야기꾼인 것 같으니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2007. 5. 1. 01:09

황혼녘 백합의 뼈 - 온다 리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빠순이 모드 돌입했으므로 무조건 모으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니 지르긴 하는데


정   가 : 9,000원
판매가 : 8,100원(10%off, 900원 할인)
쿠   폰 : 2000원 추가할인(04.24~05.25)
마일리지 : 810원(10%)

이건 좀 기가 막힌다-_-


이렇게 할인해서 팔거면 애초에 책값을 낮춰서 내라니까-_-;
정가 9천원, 실 구매가격은 6100원, 거기에 마일리지까지 빼면 5300원 남짓.
서점에서 사는 거랑 4천원 정도 차이나잖아, 40% 할인이 말이나 되냐고.

싸게 사니 좋다는 생각도 들지만, 생각할수록 화난다.


제끼고, 책 내용은 삼월 4부에 나오는 미즈노 리세의 얘기라 한다.
이미 지른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가 그녀의 그 뒷 얘기, 이 책은 그 뒷 얘기라지-

며칠 전에 책 질렀는데 택배아저씨 또 보기 민망한걸, 후후훗-┏



아앗!!
실버 다이아몬드 10권이 나왔다!!!!!!!!!!!!!!!!!!!!!!!!!!!!!!!!!!!!!!!!!!!!!!!!!!!
일단 대여점에서 보고 나중에 지르는 게 나으려니, 허허허허허
스기우라 시호, 요즘에 왜 이래~~~
책 너무 자주 나오는 거 아니야?;ㅅ;
분발하라 ,이쯔끼 나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