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42건

  1. 2007.10.03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이사카 고타로 4
  2. 2007.10.01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3. 2007.09.29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6
  4. 2007.09.26 팔란티어 - 김민영
  5. 2007.09.12 아름다운 아이 - 이시다 이라
2007. 10. 3. 22:48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이사카 고타로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8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은행나무

'사신 치바', '중력 삐에로'에 이은 내가 접하는 이사카 고타로의 세 번째 작품이다. 난 이 작가 안지 얼마 안됐는데 도서관에 이사카 코타로의 책이 많아서 살짝 당황하며 알라딘에서 본 기억이 있는 낯익은 제목을 선택.


진짜 재밌다는 얘기를 들었던 사신 치바가 참 별로였기에 후에 중력 삐에로와 사신 치바의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참 놀랐었다. 중력 삐에로에서의 쿨한 대사들이 마음에 들었기에 일단 선택. 다행스럽게도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다.


네 명의 은행강도가 책의 주인공이다. 보통 한 명의 서술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진행을 담당하는데 이 책은 단편소설도, 옴니버스도 아니면서 소제목마다 화자가 바뀐다. 개인적으로는 나루세 Ⅴ이런 식으로 제목이 나오고 그 옆에 감성사전 마냥 단어의 정의를 사전인 척 재정의한 것들이 참신해서 배를 잡고 웃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반성[反省] ①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봄.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고찰하고 일정한 평가를 내리는 일. ② 자기가 앞으로도 같은 과오를 되풀이할 것임을 재확인하는 행위.
p. 111

전말[顚末] ①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상황. ② 범인의 고백에 의한 지루한 설명.
p. 276

질문[質問] ① 의문 또는 이유를 묻는 일. ② 설명하는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
p. 361

뭐, 이런 정도?
재미없다고 돌 들지 말기. 난 정말 이런 식의 피식 웃게 만드는 유머가 좋으니까.

시청에서 근무하는 자폐증에 걸린 아들이 있는 살아있는 거짓말 탐지기 '나루세'와 입만 열면 일장연설에 그 내용의 진위가 늘 의심스러운 '교노'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리고 체내에 초단위로 시간을 계산하는 시계가 있어서 특이한 능력을 가진데다 못훔치는 차가 없는 '유키코'와 인간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소매치기에 재능있는 '구온'. 이 네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명랑한 갱들이다.

이네들은 오래전 영화관에서 있었던 폭탄 사건으로 안면을 트고 얼마 후에는 가까운 장소에서 은행강도에게 포로로 잡히는 진귀한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 특이한 인연을 가진다. 그 후 그네들은 "첫째, 경보장치를 차단한다. 둘째, 돈을 챙긴다. 셋째, 도망친다."의 간단한 3단계를 기본으로 간간히 은행을 턴다. 예전에 그네를 붙잡고 있다가 결국 사살당한 멍청한 은행강도들보다 자신들이 훨씬 잘해날 수 있을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명랑한 갱들은 이번에도 역시나 4천만엔이라는 금액을 빼앗는데 성공하지만 웬걸, 그들이 도주하는 도중에 갑자기 '현금수송차 잭'이라는 일당들이 나타나서 그들의 돈을 다시 또 빼앗아간다. 은행강도가 강도를 당하다니 이것 참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긴 것이다.

허탈해하는 그들, 그러나 소매치기의 귀재 구온이 그들의 돈을 훔쳐간 일당 중 한 명의 지갑을 슬쩍했고 그들은 다시 뭉쳐서 현금수송차 강도 일당을 추척하기 시작한다. 여기부터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다고도 볼 수 있겠지. 그래도 뭐 복선을 너무 많이 뿌려대서 충분히 예상가능하니 정통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니 추리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추측하면서 볼 수 있는 소설 정도가 맞지 싶다.

어찌됐든 그들은 각종 인맥을 이용하여 악당들을 추적하고 끝내 허를 찌르는 작전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앞쪽에 언급했었던 "쓸 데 없는 물건"이 제대로 활용된다. 추리소설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다음 전개가 다 보이던걸.^^;


처음부터 결말까지 유쾌하게웃을 수 있어서 좋기도 했었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가짜들 가운데 진짜가 하나만 섞여도 사람들은 전부 진짜라고 여긴다.', ''적을 감싸는 자도 적이다'라는 억지논리를 큰 나라 대통령이 당당히 공표하는 걸로 봐서 중학생 정도야 그런 생각 쯤 하고 남을 일이다.' 등의 교노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작가의 사상이 참 맘에 드는 책이었다.
이 명랑한 갱들의 후속작이 출판됐다는데 언제 한 번 날 잡에서 서점에 놀러가서 구경이나 해봐야겠다.

글이 꽤 길어졌는데 목차가 재미있으므로 목차를 첨부하며 이 책의 소개를 마친다.


    

제1장 악당들은 사전 조사 후 은행을 습격한다
'개가 꼭 도둑만 보고 짖는 건 아니다.'

제2장 악당들은 반성을 하고, 시체를 발견한다
'세금과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제3장 악당들은 영화관 이야기를 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매를 아끼면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진다.'

제4장 악당들은 작전을 짜고, 허를 찔린다
'바보는 여행을 보내도 바보인 채 돌아온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http://nicky82.tistory.com2007-10-03T13:45:210.3810
2007. 10. 1. 14:46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달콤한 나의 도시 - 6점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


나로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들어버린 작품이다. 하긴, 태반의 베스트셀러들이 잘팔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경우가 많았던 거 보면 나는 대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혹은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몇 년 전의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이후 낸 장편 소설인데, 글쎄, 딱히 그녀의 글솜씨나 사상이 전작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어보인다. 그 중의 유리의 성과 트렁크를 잘 버무려서 장편소설로 만든 느낌이랄까.


그녀의 소설은 무겁지 않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얘기를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음직한 그런 여자들의 얘기를 하고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웬걸, 내게는 그녀의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순정만화나 로맨스 소설, 혹은 트렌디 드라마에서 빠져나온듯한 인물들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들 보다야 조금 더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조금 더 현실적이고 조금 더 쿨하다. 그렇다해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어쩐지 남자주인공과의 해피엔딩 장면이 빠진 로맨스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에 남편, 아이, 직장이 없다면 정말 패배자의 무리에 속하게 되는 걸까? 아직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하기엔 나는 이미 이 사회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대목이 계속 눈에 밟힌다. 한 사람이 가진 객관적인 것들이 그가 사회적으로 판단되는 잣대로 사용되는 사회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씁쓰레한 것 만은 어쩔 수 없다.
 


황석영씨가 얼마 전의 기자회견에서 얘기했다던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깊이가 없다."고 한 말이 문득 떠오르는 건 역시 이 작품이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겠지. 편하게 한 번 읽고 덮어버리는 일본 현대소설 처럼 말이지.


내 곁에 다가왔다 떠난 이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읽고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단 한 가지. 그들이 기억하고 있을 그 어떤 나의 얼굴도 오롯한 오은수는 아니라는 것. 완전한 오은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여기, 맵고 달콤하고 뜨겁고 말캉한 떡을 묵묵히 씹어 삼키고 있는 나의 심장은 1초에 한 번씩 진지하게 뛰고 있다.
p. 440


 
http://nicky82.tistory.com2007-10-01T05:46:200.3610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2007. 9. 29. 11:38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1 - 8점
장용민 지음/시공사


알라딘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오른쪽 상단에 배너가 떠서 클릭.
익숙한 제목이다 했더니 역시나 예전의 그 책 재판으로 나온 듯^^


음, 역시 시공사...인가?-_-ㅋ


내 기억이틀린 게 아니라면 신은경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었는데.
아마도 난 영화를 계기로 이 책을 봤던 것 같고.
중딩 때였던가, 고딩 때였던가.


한참 김진명의 민족혼을 불태우는 소설류를 많이 볼 때 이 책도 같이 봤던 것 같은데, 아니나다를까, 결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읽는 동안은 "오오, 그런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몰입해서 열심히 봤을텐데 결말이 이해가 안됐거나 납득하기 힘들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일단 내가 설명하면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1997년 출간되고 이듬해 영화화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개정판. 출간 이후 계속된 자료조사와 한계까지 밀어붙인 상상력의 결과를 담아 10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천재시인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모티프 삼고 조선총독부라는 건물을 핵심소재로 끌어들인 팩션으로, 애국주의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천재시인 이상이 죽은 지 70년이 지난 시점. 은표와 지우는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 엄청난 음모가 감춰져 있다는 내용의 소설을 인터넷에 연재한다. 흥미로운 역사 음모론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소설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의 내용이 그대로 현실에 재현되며 관련 인물들이 하나 둘 죽음을 맞이하는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일제의 사라진 보물 '오다니 컬렉션'을 둘러싼 일본의 거대한 음모와 베일에 싸인 이상의 행적. 은표와 지우는 이상과 구인회 멤버들의 시를 해석하며,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아, 알라딘에서 다시 정보를 살펴보니 개정판이란다.
예전의 그 얘기에서 기본은 그대로 두고 꽤나 뜯어고쳤으려나?
흠, 이러면 한 번 보고싶어지기도 하는데.^^


작가의 말을 소개하면서 포스팅은 여기까지.
십 년이 지나서 다시 세상에 인사하는 책이니만치 뭔가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구해볼 책 리스트에 추가.

이따 서점 나가서 구경이나 한 번 해봐야겠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글이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후 처음으로 완성한 장편이었고 나를 세상과 만나게 해준 고마운 글이다. ... 먼지 속에 갇혀 있던 케케묵은 이 글을 다시 펼쳤을 때 나는 치기 어리고 부족했던 10년 전 나를 발견하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초보자가 언제나 그렇듯 나는 단번에 세상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어리석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글을 다지기보다는 치기 어린 자만에 둘러싸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이 책을 펴낸 이후 오랜 시간 나는 매순간 등 뒤에서 매섭게 바라보는 객관이라는 이름의 관찰자를 감수하며 글을 써왔다. 때문에 지금의 나에게 예전의 두서없는 문장들은 수치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힘들게 두 권의 초판본을 다 읽고나자 어렴풋한 작은 불꽃 하나가 나를 비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힘 있는 주제와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독자적인 소재였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다시 손보고 새 옷을 입혀 재출간을 하게 만들었다.

개정판을 준비하며 나는 10년 전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에 기초적인 의무조차 잊어버린 어리석은 부모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이제 먼 길을 돌아온 첫 아이를 보듬어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고 마음을 다잡아 다시 세상에 내보내려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지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 지루한 작업이었다. ...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아이가 세상에 나가고 10년이 지난 후 다시 펼쳐들었을 때 이번과 같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그 청사 건립 이야기>(허영섭 지음, 한울)가 이 책의 사실성을 더하는 데 큰 참고자료가 되었음을 밝혀둔다.

2007년 가을. - 장용민
2007. 9. 26. 15:52

팔란티어 - 김민영

팔란티어 1 - 8점
김민영 지음/황금가지

간만에
밤새 읽어버린 소설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처음 책을 봤을 때 두께에 한 번 겁먹은데다 초반에 진도가 안나가서 애먹었는데 탄력이 붙고 나니,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다는 프링글스 뚜껑을 열어젖힌 양 마지막 페이지가 나올 때 까지 손을 떼지 못했으니 팔란티어 스토리의 매력에 대해서는 두 말 하면 입이 아프리라.


1999년에 한 번 나왔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고등학생이던 당시에 이 책을 봤다면 프로이트를 비롯한 심리학에 대한 내 인식이 달라졌을게다. 혹은 심리학과로 대학 진학을 결심하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심리학에 대한 얘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책이 처음 출판됐을 때의 2011년은 먼 미래였겠지만 이 책을 읽은 시점에서의 2011년은 그리 멀지 않은 고작 몇 년 후의 미래다. 2011년이 되었을 때 정말 우리나라가 소설에서의 모습을 보이진 않을게다. 그래서 약간은 비현실적인 면이 보였지만 그런 건 정말 옥의 티도 안 될 정도의 수작으로 생각된다.


첨단 기기를 이용한 현실감 넘치는 게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대낮의 국회의원 살인사건.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던 두 가지가 알고 보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프로그래머면서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게임의 유저,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게임 회사의 뒤를 쫓는 프로그래머의 친구 형사. 그들을 둘러싼 현실의 얘기가 진행되면서 숨가쁘게 얘기가 진행된다.

이와는 별개로 프로그래머 원철이 게임에 접속해서 레벨을 키워가는 과정 또한 중요하게 진행된다. 게임 초반에는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던 게임 캐릭터가 언제부턴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서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 알고 보니 게임 속의 자신은 평소 이성에 의해 통제되던 무의식이 활동하는 거라고 한다. 그 무의식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게임과 현실이 거의 일치되고, 비밀이 파헤쳐진 후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나름의 반전도 숨어있고 숨가쁘기 그지 없다. 다만 내가 언급해버리면 스포가 되어 버릴 어떤 인물의 정체나 마지막 장면은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하다는 거.


알라딘 서평에서 다른 분들이 지적하셨다시피 '스릴러'라고 부르기에는 뭔가가 좀 모자란 느낌이다. 범죄의 범인과 숨겨진 비밀을 추리하는 과정을 본다면 추리소설의 기본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지만 판타지 세계의 비중이 너무 커서 자주 맥을 끊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팔란티어의 단점 아닌 단점이라면 '판타지 세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얘기도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판타지의 세계관이나 용어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들거라는 거. 나야 뭐 익숙한 얘기들이니 재밌게 볼 수 있었지만 판타지 소설을 전혀 보지 않은 친구에게는 재미있는 책이 있다고 설명을 하다가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임에는 틀림 없다. 순수 문학이 아니라 통속 문학이니만치 문학적 가치나 의미를 찾을 수는 없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그 시간을 만끽할 수 있으니 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팔란티어 2 - 8점
김민영 지음/황금가지
 
팔란티어 3 - 8점
김민영 지음/황금가지
2007. 9. 12. 08:35

아름다운 아이 - 이시다 이라

아름다운 아이아름다운 아이 - 6점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작가정신


3년 전쯤엔가 파란색 표지에 흰색으로 [4teen]이라는 제목이 씌여졌던 이시라 이라의 작품을 나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던 중 아무 망설임없이 작가 이름만을 보고 이 [아름다운 아이]를 선택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 그냥 소설이구나.' 정도? 도서관에서 빌려봤기 망정이지 서점에서 구입했다면 돈이 아까워서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묘하게도 같은 날 빌렸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와 매우 흡사한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살인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의 이야기. 하지만 두 작가가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방식은 완전 다르다. 중견 소설가와 신인 소설가니, 필력이나 전개방식을 비교하는 건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을 비교하는 격이려나?

어찌됐든, 지루한 초반을 넘어서서 중반부터는 이야기에 탄력을 받아서 끝까지 읽어낼 수야 있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그 찝찝함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주인공 미키오는 유메미산 중학교 2학년이다. 유독 교육열이 높은 이 도시, 그리고 이 학교에서 그는 뛰어난 성적보다는 식물 쪽에 재능이 있는 특기생의 위치를 가진다. 친구들과 뛰노는 것도 재밌지만 숲에서 식물들을 관찰하며 관찰일지를 쓰는 것 또한 그의 즐거움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는 동생이 두 명 있다. 피부가 좋지 않아서 별명이 감자인 자신과는 다르게 어머니를 닮아 출중한 외모를 가진 남동생과 여동생. 어릴 때는 어머니의 성화에 동생들이 모델로 활동했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여동생만 아동모델을 계속하고 있고 남동생은 음침한 성격으로 변해버리고 집에서도 혼자 겉도는 성격이 된다.

가끔 개념없이 자신과 친구를 괴롭히는 유치한 동급생이 있지만 그래도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감자. 조용한 그의 동네에서 초등학생 여아 실종사건이 벌어진다. 갑자기 도시는 발칵 뒤집히고 경찰들도 기자들도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끝내 그 아이는 '밤의 왕자(the prince of the night)'라는 낙서와 함께 시체로 발견된다. 그 아이가 여동생과 동급생이었고 또 친하기까지 했었다기에 더더운 안타까움을 느끼는 감자,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초등학생 살인범이 자신의 남동생인 것이다.


단 하루만에 그의 일상은 뒤바뀌게 된다. 매스컴이 가족을 괴롭히고 여동생과 둘이 부모를 떠나 다른 사람의 집에 지내게 되고 학교에서도 보이지 않는 시선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감자는 동생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없고 동생의 정체가 정말 밤의 왕자였는지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감자는 그 아이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동생이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려 한다. 그런 감자의 곁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들이 큰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 그리고 나름 충격적인 결말.


과연 살인이 이렇게 허술하게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작품이었다. 뭐, 정통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청소년의 심리 묘사와 내적 성장에 중점을 둔다면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데 비해서는 그닥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다. 이젠 슬슬 일본소설에 질려가고 있기 때문일까?

차라리 와닿았던 부분은 이지메를 하는 감자네 학교의 아이들. 처음에는 감자의 등교에도 동요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그 사건이 없었던 것 처럼 위장하고 있던 아이들이 시험이 다가옴에 따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감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물론 드라마 '라이프'의 경우 처럼 표나게 괴롭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넌 살인자의 가족이야."하는 편지를 신발장에 넣어둔다던가 실내화에 압정을 넣어둔다던가 하는 어쩌면 이지메의 정석을 따라가는 거 보면 공부 잘하는 애들의 상상력이란 뻔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면서 뒤에서는 감자를 괴롭히는 그네들의 모습에서 소위 '이중적'이라고 하는 일본인 특유의 음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왕자를 모티브로 한 패러디 소설 '밤의 왕자'. 미키오는 그 소설을 읽고 매우 슬프다고 느끼지만 글쎄, 이렇게 우울한 글은 딱히 내 취향이 아니므로 그냥 그랬다.
전문까지는 못구하겠고 일부분은 여기를 눌러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4teen 한 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시다 이라, 아름다운 아이 한 권으로 내 마음에서 멀어져버렸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the zombies의 중학생 버전같았던 그네들의 모습은, 흠, 뭐 지금 생각해보니 미키오의 수사를 도와주는 친구들의 재기발랄함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른들이 바라는 정도를 걷는 모범생이 아닌 주인공 감자보다도 친구들이 훨씬 더 매력적인 캐릭터였으니까 말이다.


혹 이 책을 보실 분이라면 당부할 것 한 가지, 절대 역자후기부터 보지 말라는 것. 역자후기, 혹은 작가후기부터 먼저 보는 취미가 있는 나는 후기에서 모든 줄거리를 다 까발리는 바람에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정도로 밖에 책을 즐기지 못했으니까.
http://nicky82.tistory.com2007-09-11T23:35:010.3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