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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0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권정은, 김민영, 김종일, 박동식, 신진오, 엄성용, 우명희, 이종호, 장은호, 최민호
  2. 2007.12.30 줄어드는 남자 - 리처드 매드슨 4
  3. 2007.11.30 머더리스 브루클린(Motherless Brooklyn) - 조나단 레덤 6
  4. 2007.10.30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두 번째 방문 - 김미리, 김종일, 김준영, 신진오, 안영준, 이종호, 장은호, 최민호, 황희 2
  5. 2007.10.06 청춘, 덴데케데케데케~ - 아시하라 스나오
2008. 1. 20. 09:23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권정은, 김민영, 김종일, 박동식, 신진오, 엄성용, 우명희, 이종호, 장은호, 최민호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8점
이종호 외 9인 지음/황금가지



지난 여름에 봤었던 공포 문학 단편선의 첫 번째 이야기.
누가 추천해주기도 했었고, 서점에서 보면 19금 딱지와 함께 포장까지 되어있는지라 미리 훔쳐볼 수도 없어서 정체가 늘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손에 떨어져서 볼 수 있었다. 으하핫.


다 읽고나니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잔인한 묘사 덕에 확실히 19금 딱지가 붙을만 하다 싶었다.^^;
공포와 스릴러를 즐기면서도 스플래터는 좋아하지 않는 나라서 중간중간 조금 힘들기도 했다. 워낙 빈곤한 상상력에 책이었기 망정이지 영상화 된 영화였으면 상상만으로도 정말 으악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몇 개는 현재 영화화 하고 있다는데, 흠, 잔인한 내용이 넘쳐날 수도 있으니 무턱대고 기대할 수 없으니 슬퍼진다.


모두 10개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터넷 경력이 좀 되고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은 읽어봤을 반가운 소설이 수록되어 있었다. 박동식의 '모텔 탈출기'가 바로 그것인데, 반전을 다 알고 읽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고 모니터와 책은 확실히 와닿는 게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지.


김종일의 '일방통행'은 지난 달에 읽었던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중 '결투'와 괜시리 겹치는 느낌이었다.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한 번 쯤은 만난 적이 있는 '놈'의 얘기기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불평만 쏟아내는 듯한 주인공도 그렇게 마음에 들지만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버렸다.

은둔과 감옥, 상자, 아내의 남자. 다 재미있는 얘기들이었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많이 접해서인지 이야기의 진행이 다 보였고 반전의 예상도 쉬웠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확실히 "재미"는 있다는 거. :)


우명희의 '들개' 또한 괜찮은 작품이었다. 해설에서 언급했듯이 모방범죄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적나라한 시체 해부 과정과 살인장면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 나쁜 짓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이라는 것 또한 확실하지만 주인공에게 동정이 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절대 있어서야 안 될 것이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에 잡힌 유영철이 이 비슷한 짓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영문도 모르고 지배자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는 장은호의 '하등인간'. 만화 '이십세기 소년'에서 세계를 쥐고 휘두르는 '친구'가 지배자와 겹쳐지기도 했고 독재정권이 부활할 것 같은 우리나라의 미래같기도 해서 괜시리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야 않겠지만 지배자의 뜻에 따르지 않아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예전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으니 미래에도 확실히 생길 것이니 말이다.



무더운 더위를 잊게 해주는 힘 덕분일까,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공포라는 장르는 여름에 인기를 끈다. 납량 특집으로 쏟아지는 공포 영화들이나 괴담들, 그리고 그 괴담들을 적절히 편집해서 내는 공포특급류의 책까지, 우리나라의 여름에서 공포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대세와 무관하게 찬바람이 쌩쌩부는 한겨울에 접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넘쳐나는 피 덕분에 기대에는 조금 못미치는 듯 했지만 그래도 지난 번 처럼 다양한 종류의 공포와 다양한 이야기를 맛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이런 추세라면 올 여름에는 이 시리즈의 세 번째 방문이 있지 싶은데 거기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나를 오싹하게 할지 꽤나 기대가 된다.
2007. 12. 30. 15:44

줄어드는 남자 - 리처드 매드슨

줄어드는 남자 - 8점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했겠지만 대중들에게는 '나는 전설이다'로 유명해져버린 리처드 매드슨의 다른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줄어드는 남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밀클 카페의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 처럼 사실 처음에 표지를 보고 좀 많이 웃었었는데 다 읽고나서는 어쩐지 끄덕끄덕. 주인공 스콧의 상황을 이보다 더 적절히 표현할 수 없는 표지라고 여겨진다. 디자이너분, 센스쟁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던 남자가 방사능에 노출된 후 온 몸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다. 하루에 0.36cm, 미약하지만 확실히 줄어드는 자신의 몸에 스콧과 그의 가족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원인조차 알 수 없어 당황하고 뒤늦게야 원인을 알게 된 후에는 이미 그의 몸은 100cm 근처, 치료방법도 없고 이미 그의 가정과 일상은 망가진 지 오래다.

그렇게 온 몸이 줄어들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조금씩 잃어가는 스콧, 급기야 지금 그의 키는 3cm도 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하실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제일 심각한 것은 식량난, 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지하실에 살고 있는 거미다.

바로 이 상황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굶주림과 거미에 맞서 싸우면서도 조금씩 줄어드는 스콧, 조금씩 줄어드는 과거를 회상해봐도 현재의 자신의 상황을 살펴봐도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간다. 힘들게 냉장고 위까지 기어올라가서 곰팡이가 핀 비스켓을 구해오고 핀을 무기로 거미를 퇴치한다. 개미만한 몸이 되었을지언정 그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계속 줄어들다 결국 0cm에 가까워진 스콧, 엉뚱하게도 난 그의 마지막을 '다시 조금씩 자라나서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는 것'을 기대했고 간절히 바랐었다. 난무하는 반전에 익숙해진 탓일걸까, 아님 스콧이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났으면 싶었던 걸까?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은 예상과 전혀 달랐고 탄성을 내뱉게 해줬다. 이래서 역시 소설가는 아무나 못하는 거다!!!


상처 위에 난 딱지가 서서히 벗겨지듯이 그렇게 그도 조금씩 인간사회에서 분리되어 갔다.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나도 그와 함께 마음 아파하고 또 절망하고 때로는 기뻐할만큼 흡입력이 강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전설이다보다도 줄어드는 남자가 내 취향에 훨씬 더 재미있었다.^^;


중편 줄어드는 남자 이외에도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이 9개나 실려있다. 1954년작 부터 1994년작까지 그의 작품 변화를 잘 알 수 있다. '결투'와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은 영상화도 되었다는데 내가 본 기억이 없어서 그냥 이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음, 재미있었다. 다 재미있었지만 특히 마지막의 '파리지옥'이 제일 재밌고, 또 공감되기도 했었다. 종종 방에 파리나 모기 한 마리가 들어와서 왱왱거리면서 신경을 자극하는데, 여름 밤에 모기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쳐 본 사람이라면 절대 공감할 수 잇는 얘기가 아닐까?


내가 본 그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서서히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면서 외부와도, 자기 자신과도 처절하게 맞서싸우게 되는데 그래도 그들은 절망은 하되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책 읽으면서 주인공의 상황에 잘 동화되는 나로서는 푹 빠져서 보면서도 정말 견디기 힘든 경험을 하게 해준달까. 역자가 후기에서 말했듯이, 내가 그 상황에 빠진다면 정말 으악이다. 난 리처드 매드슨의 주인공들처럼 잘 견뎌낼 자신이 없다. 뭐,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또 모를 일이긴 하지만.


2007. 11. 30. 23:37

머더리스 브루클린(Motherless Brooklyn) - 조나단 레덤

머더리스 브루클린 - 6점
조나단 레덤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틱 증후군(틱증, tics)

눈을 깜박이는 운동, 고개를 끄덕이는 운동, 고개를 갸웃거리는 운동, 머리를 흔드는 운동, 혀를 차는 운동 등을 심하게 반복하는 증세를 들 수 있다. 히스테리성격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추체외로계(錐體外路系)의 장애에 의한 것이 있다. 특히 뇌염 후의 파킨슨병에 합병하는 수가 많다. 유효한 치료법은 아직 없고, 진정제를 투여한다. 규칙적인 체조가 효과를 볼 때도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쉽게 말해 일정한 동작을 반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혹은 상황에 맞지 않는 말들을 뱉아내는 것 또한 해당되겠지.

갑자기 틱 증후군의 얘기를 꺼낸 이유는 막 책장을 덮은 '머더리스 브루클린(Motherless Brooklyn)'이라는 책의 주인공이 틱 증후군, 그것도 개중에 꽤나 심각한 투렛 증후군(아마도 몸짓틱과 언어틱을 동시에 가지는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표지에 원제가 표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주의하게 한글 제목만 본 나는 머더리스를 murder라는 단어와 연관지어 생각했었더랬다. 여태까지 읽어온 밀리언셀러 클럽의 특징 상 살인자와 피해자가 등장할 것은 틀림없을 것 이기에 당연한 사고의 과정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뒤늦게야 머더리스가 엄마가 없다는 단어를 뜻함을 알고 혼자 얼굴을 붉히기도 했었다.


내게 있어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을 읽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나', 즉 주인공과 가장 일체감을 느끼며 이야기를 즐길 수야 있지만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정보에 따라 생각하고 또 그의 사고와 행동을 따라 얘기가 진행되기에 전체적인 구조의 파악이 후반부에 가서야 다급히 이뤄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이다. 그래서 원래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부담스러운 내가 틱 증후군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에 푹 빠지는데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단순히 '산만하다'라는 말로만은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이야기의 맥을 툭툭 끊어놓았기 때문이다.

틱 증후군에 시달리는 나, 라이어넬 에스로그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튀어나온 틱으로 인해 일찌기 '미친놈'으로 유명했던 그는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 셋과 함께 프랭크라는 사람의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라이어넬과 그의 친구들은 고아원에서의 삶을 벗어나게 해 준 프랭크를 우상으로 생각하며 그의 똘마니로 지내고 어느새 어른이 된다.

여느 때와 같은 임무를 하는가 했는데 어쩐지 오늘은 이상하다. 도청기를 몸에 달고 한 선당(禪堂)으로 들어간 프랭크,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끌려가고 급기야 그들 앞에 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병원으로 옮겨가지만 목숨을 거두고 만다. 프랭크의 똘마니로만 살아왔던 프랭크맨인 그들에게 프랭크의 죽음은 더할나위 없는 충격이다. 설상가상으로 뉴욕 경찰은 프랭크를 병원으로 데려간 라이어넬과 그의 친구 길버트를 용의자로 생각하는 눈치다.

프랭크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서 복수를 결심하는 라이어넬에게 주어진 힌트는 거의 없다. 프랭크가 죽기 전에 누군가와 했던 대화에서 나온 '라마 라마 딩동', '어빙' 등의 이름과 그 선당을 조사하는 것 등으로만 진범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틱 증후군에 시달리는 라이어넬은 동료들에게조차도 "꼴값"으로 불리며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 그를 따라 사건을 쫓아가는 나도 어휴, 정신이 없다, 이건 도대체 뭐가 뭔가 싶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그의 틱들, 고백하건데 이탤릭체로 표시되지 않았다면 중간에 책을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그의 틱과 함께 추적을 하다보면 비밀이 밝혀진다. 이것 참, 세상에는 역시 믿을 놈이 없다.


프랭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도록 하자. 다만 옆에서 귀에 대고 쉼없이 중얼거리는듯한 주인공의 산만함은 각오하고 책을 펴는 게 좋을거다.


간간히 영어 독해를 할 때나 초벌번역된 글을 볼 때면 생각하는 일이지만 다른 언어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다. 특히나 이번 머더리스 브루클린은 번역자의 힘이 제대로 돋보인 소설이다. 특히나 작가도 힘들었다고 고백한 라이어넬의 틱들, 단순히 의미 뿐만이 아니라 어감까지 같이 전달해야 했기에 더더욱 힘들었을게다. 그래서 사실 중간중간 말도 안되는 억지로 끼워맞춘 듯한 틱들이 없지만은 않았었다. 어찌됐든, 라이어넬의 틱은 단순 번역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것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소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귀여니의 끄적임들이 중국에서 출판되면서 훌륭한 소설로 재탄생했듯이 말이다.). 데릭 스트레인저 시리즈와 800만가지 죽는 방법에서 이미 충분히 단련되었기 때문일까, 이젠 웬만한 욕설에서는 놀라지도 않고 책장을 넘기는 내 모습에 어쩐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2007. 10. 30. 11:21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두 번째 방문 - 김미리, 김종일, 김준영, 신진오, 안영준, 이종호, 장은호, 최민호, 황희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8점
이종호 외 8인 지음/황금가지

지난 여름에 손에 떨어졌던 책. 받자마자 한 번 읽고 감상을 쓸 엄두가 안났었는데 다시 한 번 더 읽고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단편집, 그것도 한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 아니라 '공포'라는 대주제 안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단편을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고로 취향따라 골라잡을 수 있는 뷔페와 흡사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려나.


보기에도 꽤나 두꺼운 이 책은 400페이지에 달하며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해설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서운 괴담을 듣는 듣한 느낌의 유일한의 '어느날 갑자기'에 비해 공포문학단편선의 작품들은 괴담보다는 환상문학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보는 동안 팔뚝에 소름이 오스스 돋고 등골이 서늘한 기분을 맛보게 하는 점 또 주인공의 심정에 동조해서 긴장을 느끼는 점에서는 공포가 맞지만 이게 긴가민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갸우뚱 하는 내 이해를 벗어난 부분에서는 갈피를 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건 영상매체에 익숙해진 내 머리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영화 주온에서 그러했듯이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서도 일상적인 것들을 공포의 소재로 삼았다. 세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 층간소음(벽, 김종일), 빈부격차와 개념없는 아이들의 행동(레드 크리스마스, 안영준), 습기로 인해서 집 구석에 피는 곰팡이(벽 곰팡이, 황희), 병원과 환자의 죽음(캠코더, 장은호), 악몽(드림머신, 김미리), 갑자기 몸에 생긴 혹(통증, 김준영) 같은 누구나 한두번쯤은 경험해본 적 있는 것들로 그런 얘기들을 만들어내다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족을 달자면 난 정말 주온의 귀신 그 자체보다는 머리를 감거나 잠을 자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미지의 존재와 공유할 수 있다는 설정이 소름끼쳤었다.


나는 안영준의 '레드 크리스마스'가 참 슬펐고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던 노인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철이 없다 못해 개념이 없는 아이들의 행동에서 이 사회의 단면이 보여서 섬뜩했고, 슬펐다. 예전같았으면 '저런 애들이 어딨어.'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그네들보다 더한 '어른 아이'들이 넘치는 세상이기에 뒷맛이 더 쓸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도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날인 크리스마스를 결국 잔인한 복수와 함께 레드 크리스마스로 만들어보인 노인. 객관적인 결과만 본다면 몇 명을 살해한 범죄자지만 그래도 그의 손을 잡아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건, 어쩜 내 스스로가 부(富)층보다는 빈(貧)층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며,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부층들의 행위에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다양한 단편들이 모여있다보니, 정말 몰입해서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게 되는 작품도 있었고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앞장을 뒤적이거나 혹은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는 작품도 있었다. 작품의 호불보야 철저히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인테니 재미를 느끼는 작품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됐든 종합선물세트같은 단편집이었다.

공포문학단편선 1권의 작품들이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있던데, 원작의 맛을 잘 살려내준다면 좋겠다. 원작에서 소재만 빌려오고 링의 사다코가 넘쳐나는 그런 실패작이 아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섬뜩함과 소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http://nicky82.tistory.com2007-10-30T02:24:180.3810
2007. 10. 6. 16:33

청춘, 덴데케데케데케~ - 아시하라 스나오

청춘, 덴데케데케데케~청춘, 덴데케데케데케~ - 4점
아시하라 스나오 지음, 이규원 옮김/청어람미디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즐거운 인생'의 여흥일까, 예전에 한 번 눈여겨보고 잊고 있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서 표지를 훑어보고 '밴드소설'에 혹해서 집어 든 소설.


제목의 '덴데케데케데케'를 조형기 아저씨가 만들었던 유행어 '좌우지장지지지'쯤으로 이해했었는데 알라딘의 책소개에 나와있는 설명에 따르면 '제목의 '덴데케데케데케'는 트레몰로 글리산도 주법으로 연주되는 벤처스의 '파이프라인' 도입부의 의성어.' 라고 한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되서 방금 벤처스(Ventures)의 파이프라인(Pipeline)을 들어봤는데, 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 연주곡이구나 정도? 라이브 공연을 본다면 멋질지도.

작품의 화자면서 주인공, 그리고 록킹 호스맨(Rocking Horseman)의 리더인 칫쿤은 고등학생이 된 후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벤처스의 파이프라인을 듣고 일렉신의 계시를 듣는다. '덴데케데케데케', 넌 이제 기타를 쳐야 해.

고등학생이 된 후 이렇다 할 집중거리를 못찾던 칫쿤, 이제 밴드를 하겠다를 열망을 지니고 밴드의 멤버를 찾아헤맨다. 그리하여 경음악부에 있던 시라이와 어린 나이에 이미 촉망받는 스님인 후지오, 그리고 그에게 경음악부의 존재를 알려줬던 다쿠미를 꼬드겨서 밴드 결성에 성공한다.

악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 삼매경이었던 여름방학, 변변히 연습할 곳이 없어서 좁은 방에 틀어박혀서 했던 연습해야 했던 나날들, 기계 만지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시이짱을 특별회원으로 영입한 후 가졌던 합숙훈련, 동네 가게 행사에서 했던 첫 연주회, 그리고 그들 밴드 활동의 절정이었던 축제에서의 공연까지, 그들은 음악과 함께하기에 언제나 즐겁고 유쾌하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실제 이 소설이 씌어지고 상을 받은 직후에 록킹 호스맨이 20년 만에 부활해서 다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한다. 세월이 흐른 후 예전에 몰두했던 것을 그리워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시 찾는다는 것, 쉽지 않을텐데 대단하다. 그래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가 이들의 고등학교 시절인데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얘기라 '그렇겠구나.' 짐작하며 읽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 시대적 배경에 지방 소도시의 얘기여설까, 무라카미 류의 '69'가 생각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었으리라. 각 장의 제목으로 사용한 노래들에 대해서 잘 알고있다면 조금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글을 쓰면서 찾을 수 있는 곡은 찾아서 들어봤는데 의외로 귀에 익은 곡이 많아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이래서 Oldies but Goodies인걸지도.^^

개인적으로는 각 장의 제목을 아주 맛깔나게 번역한 역자의 힘도 소설을 읽는데 큰 몫을 했지 싶다. 본문의 번역은 그저 그랬지만 제목만은 정말 끄덕끄덕 하면서 감탄했기 때문.

쉽게 읽힌다는 것 이외에 그리 큰 장점은 없는 것 같다. 중간중간 미소지을 수야 있었지만 딱히 가슴에 와닿는 뭔가를 찾을 수 없었다. 중학생 권장도서에 들어가있는데, 흠, 글쎄, 요즘의 중학생들이 자신들의 시대도 사상도 음악조차도 자신들과 완전 딴판인 이런 책을 과연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http://nicky82.tistory.com2007-10-06T07:33:430.3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