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30. 11:21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두 번째 방문 - 김미리, 김종일, 김준영, 신진오, 안영준, 이종호, 장은호, 최민호, 황희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8점
이종호 외 8인 지음/황금가지

지난 여름에 손에 떨어졌던 책. 받자마자 한 번 읽고 감상을 쓸 엄두가 안났었는데 다시 한 번 더 읽고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단편집, 그것도 한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 아니라 '공포'라는 대주제 안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단편을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고로 취향따라 골라잡을 수 있는 뷔페와 흡사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려나.


보기에도 꽤나 두꺼운 이 책은 400페이지에 달하며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해설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서운 괴담을 듣는 듣한 느낌의 유일한의 '어느날 갑자기'에 비해 공포문학단편선의 작품들은 괴담보다는 환상문학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보는 동안 팔뚝에 소름이 오스스 돋고 등골이 서늘한 기분을 맛보게 하는 점 또 주인공의 심정에 동조해서 긴장을 느끼는 점에서는 공포가 맞지만 이게 긴가민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갸우뚱 하는 내 이해를 벗어난 부분에서는 갈피를 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건 영상매체에 익숙해진 내 머리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영화 주온에서 그러했듯이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서도 일상적인 것들을 공포의 소재로 삼았다. 세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 층간소음(벽, 김종일), 빈부격차와 개념없는 아이들의 행동(레드 크리스마스, 안영준), 습기로 인해서 집 구석에 피는 곰팡이(벽 곰팡이, 황희), 병원과 환자의 죽음(캠코더, 장은호), 악몽(드림머신, 김미리), 갑자기 몸에 생긴 혹(통증, 김준영) 같은 누구나 한두번쯤은 경험해본 적 있는 것들로 그런 얘기들을 만들어내다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족을 달자면 난 정말 주온의 귀신 그 자체보다는 머리를 감거나 잠을 자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미지의 존재와 공유할 수 있다는 설정이 소름끼쳤었다.


나는 안영준의 '레드 크리스마스'가 참 슬펐고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던 노인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철이 없다 못해 개념이 없는 아이들의 행동에서 이 사회의 단면이 보여서 섬뜩했고, 슬펐다. 예전같았으면 '저런 애들이 어딨어.'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그네들보다 더한 '어른 아이'들이 넘치는 세상이기에 뒷맛이 더 쓸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도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날인 크리스마스를 결국 잔인한 복수와 함께 레드 크리스마스로 만들어보인 노인. 객관적인 결과만 본다면 몇 명을 살해한 범죄자지만 그래도 그의 손을 잡아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건, 어쩜 내 스스로가 부(富)층보다는 빈(貧)층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며,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부층들의 행위에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다양한 단편들이 모여있다보니, 정말 몰입해서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게 되는 작품도 있었고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앞장을 뒤적이거나 혹은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는 작품도 있었다. 작품의 호불보야 철저히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인테니 재미를 느끼는 작품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됐든 종합선물세트같은 단편집이었다.

공포문학단편선 1권의 작품들이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있던데, 원작의 맛을 잘 살려내준다면 좋겠다. 원작에서 소재만 빌려오고 링의 사다코가 넘쳐나는 그런 실패작이 아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섬뜩함과 소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http://nicky82.tistory.com2007-10-30T02:24:18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