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에 해당되는 글 128건

  1. 2005.06.10 북한 사람들은 세종대왕을 모른다?!
  2. 2005.06.06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
  3. 2005.06.03 [펌] SHIFT 키의 숨겨진 10가지 기능 !
  4. 2005.04.25 간단한 한글 맞춤법 1
  5. 2005.04.20 한국 근현대사 쉽게 풀어쓰기 1
2005. 6. 10. 09:33

북한 사람들은 세종대왕을 모른다?!

지식Q&A>사회, 문화>민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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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북한 사람들은 세종대왕을 모른다?
평점 :
+ 246 (336 명)나도 평가하기jip8888  조회: 87370  답변: 1
사용자 삽입 이미지답변이 완료된 질문입니다.(2003-11-01 14:37 작성)신고하기
학교에서 비디오로 통일이 되었을 경우를 가상으로 보여주었는데요,
북한사람들이 처음 남한돈을 보고 물어보는 것이
세종대왕이 도대체 누군데 만원짜리에 새겨져있느냐는 질문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서 한글을 안쓰는 것도 아닌데
왜 북한에서는 세종대왕에 대한 교육이 전혀 없었던 걸까요?
설마 한글은 김일성이 만든거다 라고 가르치는건 아닐테고...
질문자가 선택한 답변사용자 삽입 이미지
북한 사람들은 세종대왕을 잘 모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withkbm(2003-11-01 20:56 작성)이의제기 진행중 (2)|신고하기
질문자 평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감사합니다. 좋은 답변이네요
통일연구원의 김석향 교수가 2002년 8월부터 10월까지

탈북자 35명을 정밀 면접조사한 결과

이중 세종대왕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33명이었는데

그중 11명은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설명해 달라고 했을 때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인물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22명이지만

그 사실을 북쪽을 떠난 뒤 중국이나 남쪽에 와서

알았다는 경우가 13명이나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35명 중 9명 만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인물이라는 것을

북한에서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율로 따지면 4분의 1 정도 됩니다.

탈북자의 경우 지적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북한에서 세종대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4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35명 중 31명이 성삼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고

또 35명 중 33명이 신숙주나 정인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따라서 공교육에서 세종대왕이나 기타 한글창제에 대해

기여한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훈민정음을 완성한 날을 기념한다는 뜻에서

1월 15일을 훈민 정음 창제 기념일로 지켜 왔는데

60년대 중반 이후에는 기념은 커녕 1월 15일이 어떤 날인지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1년부터는 북한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1월 15일이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이라고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역사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교육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왕이나 지배적인 관료집단을 매우 부정적으로 교육하고 있는데

이들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한글을 누가 만들었다는 것 자체를 이야기하지도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출처 : 직접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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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ir_id=612&docid=236602

 

 

교욱의 힘이란 정말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 글이랍니다!

김일성 수령님이 만들었다고 안가르쳐서 다행이다 싶기도 해요^^;

2005. 6. 6. 19:18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

6월 민주 항쟁


1. 6월 항쟁의 발발
   1985년 2·12총선 이후 야당과 재야 세력은 간선제로 선출된 제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의 도덕성과 정통성의 결여와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줄기차게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였다. 이에 전두환은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호헌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국은 대결국면으로 치달았다.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민주 헌법 쟁취 국민 운동 본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가두 집회가 열리고,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26일 전국 37개 도시에서 사상 최대 인원인 100여만 명이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력이 마비되자 정부는 한때 군 투입을 검토하였으나 온건론이 우세하여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며, 6·29 선언이 발표되었다.

2. 6·29 선언
   1987년 6월 29일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표 노태우가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특별 선언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 이양
② 대통령 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③ 김대중의 사면 복권과 시국 관련 사범들의 석방
④ 인간 존엄성 존중 및 기본 인권 신장
⑤ 자유 언론의 창달
⑥ 지방 자치 및 교육 자치 실시
⑦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⑧ 과감한 사회 정화 조치의 단행 등이 있다.

3. 6월 항쟁의 의의: 6월 민주 항쟁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민주 헌정 체제로의 복귀가 이루어졌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1. 개요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라 남도 및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여 벌인 민주화 운동이다.
   발발 당시에는 불순분자와 폭도들에 의한 난동으로 규정되었다가 1988년 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정식 규정되었고, 1988년 11월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2. 원인
   박정희의 오랜 군사 독재가 통치 능력을 상실하고, 1979년의 신민당 총재 김영삼 제명 파동, 같은 해 10월 16일의 부마 사태,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한 대통령 박정희 시해 사건(10·26사태) 등이 초래한 국가적 위기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 군부가 12·12 하극상을 통하여 군부를 장악하고 군사 독재의 연장을 통하여 해결하려 한 데서 비롯되었다. 신 군부 세력이 1980년 5월 17일 비상 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발표하고 민주 인사들을 체포 투옥하기 시작하자 광주에서 공수 부대의 과잉 진압과 이에 반발하는 학생·시민 연대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다.

3. 의의
   이 운동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 운동은 1970년대의 지식인 중심의 운동에서 민중 운동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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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 운동








4·19 혁명

 

1. 원인
(1) 이승만 정부의 장기 집권 도모
   - 전후 복구와 민심 수습의 노력
   - 강력한 반공 정책 추진, 북진 통일 추구
   - 자유당 창당 → 개헌 파동, 독재 정치 강화

(2) 사사오입 개헌
   이승만 정권은 1952년 7월에 계엄령 선포 하에서 발췌 개헌안을 통과시켰으며, 1954년 11월에는 이른바 사사 오입 개헌을 하였다. 이 사사 오입 개헌은 이승만의 대통령 3선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으며, 자유당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국회는 재적 의원 203명 중 202명이 출석하여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7표로 개헌한 부결을 선포하였다. 이것은 개헌안 통과의 3분의 2선인 136명에서 1표가 모자랐기 때문에 부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틀 후에 자유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사사 오입(반올림)의 이론을 내세우면서 가결을 선포하였다.

(3) 3. 15 부정 선거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을 정·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한편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을 정·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조병옥은 선거 실시 전에 미국에서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4선을 노리는 이승만의 대통령 경쟁자는 없어졌다. 그러나 당시 85세였던 이승만이 노령이었기 때문에 재임 중에 병사하면 이를 승계할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자유당 정권은 집중적이고, 조직적인 부정 선거를 자행하였다. 당시 민심은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부패 때문에 크게 이반되었는데, 자유당 정권은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하여 3. 15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

2. 전개: 마산 의거 → 서울 등 중요 도시의 시위 확산 → 계엄령 선포 → 학생·시민의 항거 계속

3. 결과
(1) 이승만 대통령 하야, 자유당 정권 붕괴
(2) 과도 정부의 수립 → 헌법 개정(내각 책임제, 양원제) → 총선거 실시, 민주당 승리(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
(3) 장면 내각의 구성

4. 의의: 학생들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부패 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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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기념탑




출처: 동아키드


수많은 민중들의 피가 흘려지고 난 후, 이 땅에 민주주의는 찾아왔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몇백년에 걸쳐서 이뤄낸 것들을 우리나라는 단숨에 해냈습니다

그래서 서양의 제도를 우리나라에 적용시키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인가봅니다

2005. 6. 3. 04:17

[펌] SHIFT 키의 숨겨진 10가지 기능 !

SHIFT 키의 숨겨진 기능 10 가지

1.윈도우즈 시작을 빠르게

윈도우즈가 시작될 때 쉬프트키를 계속 누르고 있으면 시작 메뉴에 등록했던 여러 가지 응용 프로그램들은 전혀 실행되지 않고 윈도우즈만 바로 시작한다. 따라서 시작 메뉴에 프로그램을 많이 등록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급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하면 편리하다.

2. 휴지통 거치지 않고 곧바로 파일 삭제하기

나중에 되살릴 일도 없고 전혀 필요도 없다면 굳이 휴지통에 넣었다가 비우느라 시간과 공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키를 누른 채로 <삭제> 키를 눌러 파일을 지우면 파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다.

3. 창 한꺼번에 닫기

깊숙한 곳에 있는 파일을 찾느라 여러 폴더를 열어 놓았다면 키를 누른 상태로 현재 폴더를 닫아보자. 그러면 지금까지 열어 놓은 상위 폴더까지 한꺼번에 닫힌다. 일일이 폴더마다 찾아다니면서 닫기 표시를 누르지 않아도 되므로 편리하다.

4. 파일을 이동시키자

키를 누른 채로 파일을 잡아 끌면 해당 파일을 이동할 수 있다. 은 복사하는 기능이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할 것!

5. 연속된 파일 선택을 쉽고 빠르게

탐색기에서 여러 개의 연속되는 파일을 선택할 때도 키가 이용된다. 제일 처음에 있는 파일을 선택한 후 키를 누른 채 마지막 위치에 있는 파일을 선택하면 처음과 마지막 파일을 포함하여 그 사이에 위치한 파일들이 모두 선택된다. 이 상태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파일 복사나 잘라내기,삭제 등의 작업을 수행하면 훨씬 쉽게 여러 개의 파일을 관리할 수 있다.

6. 탐색기를 어디서든 불러낸다

키를 누른 채로 `내 컴퓨터`를 선택해 보자. 탐색기가 곧바로 실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폴더에서도 키를 누른 채로 마우스로 클릭하면 해당 폴더를 기준으로 하는 탐색기가 실행된다.

7. 연결 프로그램 변경하기

해당 확장자의 파일을 선택하면 해당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연결 프로그램을 다른것으로 지정하고자 할 때도 키가 편리하다. 키를 누른 상태에서 파일을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누르면 단축 메뉴에 `연결 프로그램`이라는 항목이 나타난다. 여기서 다시 원하는 응용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이런 현식의 파일을 열 때 항상 이 프로그램을 사용` 을 선택해 주면 연결 프로그램이 바뀐다.

8. 음악 CD 자동 실행 중지

음악 CD를 넣으면 윈도우즈는 자동으로 CD 연주기를 구동시켜 음악을 플레이해준다. 때론 이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응용 프로그램에 따라 충돌 요인이 되기도 하는데 이때 음악 CD 를 넣으면서 키를 누르고 있으면 자동 실행되지 않는다. 이 기능은 데이커 CD에도 사용할 수 있다.

9. 시스템 재시작을 빠르게

시스템 종료 메뉴에 보면 시스템 재시작하기가 있다. 시스템의 설정 상태를 바꾸었다든지 윈도우즈가 좀 불안하게 동작하여 재시작 하려고 할 때 시작 프로그램을 수행하느라 지루한 경우가 많다. 이때 키를 누른채 재시작 메뉴의 `예(Y)`를 선택하면 윈도우즈가 빠르게 재시작된다.

10. 단축 메뉴 불러내기

바탕화면의 단축 아이콘 또는 폴더를 선택한뒤 키를 누른 채로 을 눌러 보자.
각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바로가기 메뉴가 뜰 것이다.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이용하면 바로가기 메뉴를 쉽게 불러낼 수 있지만 키보드를 이용하여 작업하는 도중이거나 마우스에 이상이 생긴 경우 유용하다


출처 → 윈비비에스

2005. 4. 25. 20:54

간단한 한글 맞춤법

1. 않, 안
'않다'라는 것은 하나의 동사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쓸 수 있겠죠.
(나는 멍청하지 않다.)

'안'은 동사나 형용사 앞에 붙어서 반대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아침밥을 안 먹었어. 나는 안 예뻐.)


2. 돼, 되

헷갈리시는 분이 많으신데요.
이런 원리랍니다. '돼'는 '되어'의 준말입니다.

(잘 됐어 = 잘 되었어) 이런 식이죠.
'잘 됬어'가 아닙니다. '잘 되었어'의 준말이니까 '잘 됐어'이죠.

비슷한게 있습니다. '되다'가 있으면 '하다'가 있는 법이죠.
'해'는 '하여'의 준말입니다.

(그렇게 해라 = 그렇게 하여라)

쉽죠?


-3번부터는 많이 헷갈리시는 표현입니다.-

3. 틀리다, 다르다.

쉽게 말해서 '틀리다'는 옳지 않은 것이고 '다르다'는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너 수학시험 2번 틀렸어. 우리는 서로 학교가 달라.)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회사의 상품은 질이 틀려요~' 말이 안되는 경우죠? 상품이 옳지 않다니요...

'다르다'는 영어로 different이고 '틀리다'는 영어로 'wrong'입니다.


4. 맞히다, 맞추다

퀴즈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잘 맞추라는 얘기 하곤 합니다. 맞는 표현일까요?
'맞히다'가 맞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잘 못 알고 있죠.
문제를 푸는 것과 표적을 명중시키는 것은 '맞히다'입니다.

이 두가지 뜻을 다 '맞추다'로 알고 계셨던 분도 계실 거예요.

(영어 문제를 모두 맞혔어. 화살로 저 사과를 맞혀봐. 축구공으로 내 머리를 맞히다니.)

그리고 다른 많은 표현들은 모두 '맞추다'입니다.

(박자를 맞추다, 교복을 맞췄다, 입을 맞추다, 간을 맞췄다.)


5. 잃다, 잊다

이 표현은 알면서도 잘못 사용하시는 분을 계실 듯 합니다.

영어로 '잃다'는 lose, '잊다'는 forget입니다.

'잃다'는 물건이 자기도 모르게 없어진 경우이고 '잊다'는 까먹은 것이죠.

(나 지갑을 잃어버렸어. 숙제를 또 잊었니?)

앞으로는 열쇠를 '잊어'버린다거나 건망증으로 알던 것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겠죠?


6. 가르치다, 가리키다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를 가르치시는 일이고,
선생님은 칠판을 가리키시며 수업을 진행하십니다.

이해가 쉽게 되시죠? 이건 많은 분들이 아시고 계실 거예요.
근데 제가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6번으로 쓴 이유는 어원을 알 수 없는
'가르키다', '가리치다', '알으키다(아르키다?)' 등 이상한 말들이 쓰이기 때문이에요.

참고로, 친구가 저에게 수학문제를 물어보려고 "이 것 좀 아르켜 줘"라고 한다면

'알려 줘' 혹은 '가르쳐 줘'라고 물어오기 전까지 안 가르쳐준답니다.


7. 로써, 로서

쉽게 예문부터 보여드릴게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쌀로써 떡을 만든다. 말로써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신념과 용기로써 시련을 이겨 내자.

보시다시피, '로서'는 '지위나 신분 또는 자격을 가지고'의 뜻을 가지고 있고
'로써'는 '~를 가지고'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로써'의 경우에는 '써' 뺀 '로'만의 경우로도 문장의 의미가 통하죠.
예를 들면, "쌀로써 떡을 만든다"를 "쌀로 떡을 만든다"라고 고칠 수 있겠죠.


여기까지입니다! 휴;; 힘드네요.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말과 글의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던데요.
우리나라의 말은 한국어이고, 우리나라의 글은 한글입니다.


우리나라는 사람간의 정이 두텁고 예의가 바르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들이 많죠.
그래서 한국어는 외국인들이 배우기에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글은 어떤가요. 세종대왕님께서 백성들을 위하여 만드신 한글!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따서 만들었고 모음은 천, 지, 인을 합쳐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한글은 배우기에 쉽고 간편하죠.
게다가 문자 중에 가장 많은 발음소리를 낼 수도 있고요.


잘 아시겠죠? ^^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하자는 게 제 글의 목적이었습니다.
애국심도 많이 키우시기 바래요.
감사합니다!

 

 

엽혹진에서 퍼왔습니다'ㅡ';

사회랑; 직빵으로 관련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 어린 친구들 보면 한글 맞춤법 잘 모르더라구요(사실 어른들도 많이들 모르죠; 저도 완벽하게 잘 아는 건 아니구요ㅜㅜ)

도움됐으면 싶어서 이렇게 글 올립니다.

우리말, 우리가 사랑하자구요!!

2005. 4. 20. 08:36

한국 근현대사 쉽게 풀어쓰기 1

근현대사는 1800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9세기 초반이죠. 조선후기요!

조선 후기쯤 가면 멋진 일을 한 임금이 거의 없습니다.

(조선전기에는 한글만든 세종대왕같은 멋진 임금이 있잖아요)

계속해서 순조 헌종 철종 같은 꼬마임금들이 즉위를 합니다
당근 이 꼬마들은 정치가 안되죠. 그래서 엄마나 아부지가 대신 정치를 해줍니다
이게수렴청정이랍니다.
그래서 순조 헌종 철종 3대 60년간 왕권은 아쭈아쭈 떨어지고(꼬마가 정치 잘 못하니깐!) 외척세력들(꼬마들의 엄마의 친척들)이 아주 높아집니다.
이렇게 세도있는 가문에 의해 나라의 정치가 좌지우지 되는것을세도정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치를 잘하면 괜찮은데 맨날 뇌물 받아먹고 문란하게 정치를 합니다.
그 세도정치의 잘못된결과로삼정의 문란이 있습니다. 삼정은 전정,군정,환곡입니다.

전정ㅡ(지주가 국가에바치는세),
군정ㅡ(국방비),
환곡ㅡ(어려운백성들에게 나라가 대출해주는거)

그런데
전정ㅡ(지주가 나라에 바치는세가 너무 많아지고, 즉 나라에서 돈을 완전뜯어먹고),
군정ㅡ(국방비란 이름으로 돈 엄청 뜯어먹고),
환곡ㅡ(나라가 어려운백성들에게 제대로 대출해줘야하는데. 그러려면 이자도 조금 받고 그래야하는데, 이놈의 나라가 어려운백성한테 이자를 뜯을대로 뜯고 더 괴롭히는겁니다)

이렇게 삼정같은게 문란해지니까 순조때는 홍경래라는 사람이 난을 일으킵니다.
(세도정치는 순조, 헌종, 철종이라고 했었죠?)
홍경래는 저쪽 서북쪽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그당시에 관리를 등용할때 서북쪽에 사는사람들을 차별했다고합니다.
그때 관리에 등용되려면 당시 세력있었던 안동김씨집안에
돈갖다주면 다 되는것이었습니다.
안동쪽과 거리가 먼 서북쪽사람들은 관리에 등용이 잘 안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난을 일으킵니다.

철종때는 임술년에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킵니다.
이를임술농민봉기라고 하는데여
임술농민봉기는 진주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퍼집니다

위쪽으로는 함경도, 남쪽으로는 제주도까지 전국적으로 민란이 벌어집니다
위에서 말한 홍경래의 난보다 더 영향이 큰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아 점점 나라가 피폐해 진다는걸 알수있습니다. 한마디로 완존 망해가는거지요.

여태까지 19세기 나라 안쪽의 일이었고, 나라밖의 일을 살펴보자면 그 당시에 서세동점의 시대였습니다. 서세동점은 서양세력이 동양을 점령 한다는 소립니다.
양키는 19세기에 증기선(배)을 만듭니다 산업혁명때 막 어쩌구 해가지고. 근데 우리나라가있는 아시아에 증기선을 가지고와가지고는 막 대포를 쏘아댑니다.
겉으로 말하기는 "우리랑 문호개방하쟈" 이런거고 속셈은 "조선을 식민지로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이었습니댜.
그래서 아시아에서 덩치큰 순서대로 문호가 개방됩니다. 거의 강제적으로요.

젤 덩치가 큰 청나라가 문호개방됩니다. 영국에 의해서요
담에 일본이 문호개방됩니다. 미국에 의해서요
담에 조선이 문호개방됩니다. 일본에 의해서요.

일본이 강화도로 먼저 처들어왓기땜시 강화도에서 조약을 맺습니다.
그래서강화도조약이죠.

다시 안쪽의 상황을 보자면,
아까 1800년대부터 60년동안 세도정치라고 했잖아요
1860년대부터 세도정치가 막을 내립니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1860년대고종즉위!
그럼 고종이 능력이 있어서 세도정치를 막았느냐? 절대 아님니다.
고종이 사실 조금조금 다운증후군 같은거엿답니다.
하여튼 정상은 아닌가봐여

그니까 고종은 똑똑한게 아니엇고 고종도 꼬마였으니까 그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정치를똑똑히 했습니다.
대원군의 뜻은 자기가 왕이 아니라 아들이 왕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세도정치때로 잠깐 돌아가보겠습니다.
아까 막 세도정치때 이씨가문 말고 다른 외척세력이 힘이있다고했자나여
외척세력들은 이씨가 아니잖아요, 근데 그들은 자기네가 계속해서 왕 하고싶으니까
이씨 세력들은 다 죽여야 할것아녜여. 자기네가 계속 왕 하려면
그래서 그때 죽여야할사람 1순위가 바로 흥선대원군이었댑니다.
당연히 그땐 세도정치 기간이니까 흥선대원군은 정치세력에 못끼던 상태였져
그래서 흥선대원군 죽이려고 사약을 갖다가 줫습니다.
그르니까 흥선대우너군이 막 도망가드니 (안죽어야겠지않습니까)
그래서 도망가드니 막 다리밑에 가서 ..
더러운 똥가튼거를 자기 몸에 막 바르고 개처럼 왈왈짖고 떠라이짓을 했습니다.
사약을 가지고온 포졸같은넘들은 흥선대원군이 떠라이짓을 하니까
무서워서 다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한번또라이짓하고나서 목숨은 구한거져.
그때 흥선대원군은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꼭 정치세력을 잡고말리라."

다시 고종즉위때로 돌아오겠습니당.
결국 그의 아들인 고종이 왕이 되자 흥선대원군은 정책을 폅니다.
나라안쪽으로의 흥선대원군의 정치를 살펴보자면
호포제를 실시합니다. 호포제는 집이 있는사람이면 모두 세금을 내야한다는겁니다.
그전에는 솔직히 양반은 세금 안냈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농민만 세금을 냈져.
정말 불공평한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흥선대원군이 이를 알고, 집이 있는사람이면 모두 세금을 내라고했습니다.
한마디로 양반들을 골탕먹이는거져.

그리고 호포제에서 "호"자가 ,
우리가 흔히 말하는 103동 801호 할때 그 "호"자 입니다.ㅋㅋ

그리고 또 한가지 정책 보자면 서원을 폐지합니다.
서원은 그당시에 양반들이 모여서 놀던 놀이터가튼데입니다.
지금 천원자리 뒷면에 있는 곳이 서원이래는겁니다.
그런데 서원중에서 "사액서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나라에서 운영하는거엿습니다.
사액서원에 양반들이 자기 이름을 올리면,
그니까 서원은 학교같은곳이고 양반은 학생으로 비유되니까~
양반이 사액서원에 이름을 올리면 , 그 명단에 오른 사람들은 학생의 특권으로서 모든 세금을 면제받습니다. 군대도 안갑니다.
이것은 국가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져. 당근 세금이 안들어오니까~
그래서 나라의 좀같은 존재인 서원을 흥선대원군이 철폐를 합니다.
당연히 양반들의 반란이 있었져.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눈도 깜짝 안햇습니다.

또하나의 정책을 살펴보면, "대전회통"이라는 법전을 만듭니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법전이 2개가 있었는데 경국대전, 속대전이있었져.
속대전은 경국대전의 속편입니다.
근데 이 2개의 법전을 완전히 통합해서 만든게 대전회통입니다.

또 정책이 머가있냐면,
그당시에는 비변사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주 힘이 있는 관리회의였습니다.
그런데 비변사에는 누구누구가있었냐면
예전에 세도정치 할때 힘있던 사람들이 있는회의였습니다.
당근 이 비변사도 기능을 낮춰야 흥선대원군 힘이 올라가겠쪄.
그래서 기능을 낮춥니다.
대신에 의정부라는 기구에 흥선대원군의 부하들을 막 심어놓고
의정부의 기능을 높입니다.
여기까지 말한것이 흥선대원군이 잘했던 정치이고요

지금부터는 실패한 정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실정 이라고 합니다.
경복궁 중건이 실정입니다. 여기서 "중건"이란 리모델링 같은겁니다.
경복궁리모델링이져. 절대 경복궁 "창건"이 아니라 "중건"입니다.
임진왜란때 경복궁이 불에타버렸습니다.
다시 짓기는 해야겠는데 돈이 많이 들지 않습니가.
그래서 그전 왕들이 다 미루고미루고있었는데
대원군이 "왕실의 퀄리티가 있찌" 요로면서 경복궁을 리모델링합니다.
앞에서말한대로 돈이 많이 들잖아여.
돈이 필요하니까 원납전(원해서 납부하는 돈)을 받습니다.
말그대로 원해서 납부하는 돈인데여
이것을 양반들한테서 뜯어냅니다. 근데 돈 내고싶어하는사람이 어딨겠습니까.
말은 원해서 납부하는거라고하지만 사실 삥뜯은거져.

또 돈을 구한 방법은 "당백전"이라는 화폐를 발행합니다.
아주아주 많이 화폐를 발행합니다.
화폐가 많아지면 생기는일 아시져?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사람들 손에 돈이 많아지니까 당연히 물가는 높아지게 되고 나라 경제가 완존 망해가는거져.
뭐 사과하나에 2만원씩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게다가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백성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강제노역을 시킵니다.
그래서 양반 농민 할것없이 둘다 막막 괴롭히는 아주 실패한 정치가 바로 경복궁 중건이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대원군이 나라바깥으로 펼친 정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쇄국정책입니다.나라의 문을 완전 닫아버렸습니다.
"봉쇄"할때 "쇄"입니다. 그니까 나라를 막는다는거져.(제나름대로해석-_-;;ㅋㅋ)
그런데 아까 제가 앞에서 말햇는데,
아시아에서 덩치 큰 나라순서대로 문을 열었다고 했잖아여.
청나라가 1842년에 문열고, 일본이 1854년에 문을 엽니다.
그니까 우리나라가 근대화가 너무너무 늦었습니다.
당연히 부작용이 생깁니다. 이 부작용은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쇄국정책으로 인해 전쟁이 터집니다. 2가지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가 일어납니다. 병인양요가 먼저 일어납니다.
이 두 전쟁의 순서를 외우시려면 둘의 앞글자인 병, 신을 외우시면 댑니다.^^
두 전쟁의 순서를 모르면 병신이져. ㅋㅋㅋㅋㅋ

먼저 병인양요를 살펴보겠습니다.병인양요는 프랑스와의전쟁입니다.
그럼지금부터살펴보겠습니다
이당시에 대원군이 사실 문짝을 열려고했습니다. 근데 그냥 열기 쩜 머하니까.
당시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선교를 펼치던 프랑스 선교사를 불렀습니다.
대원군이요.
대원군이 그들에게 한말
"그래 왓구나. 잘왓떵~~ 내가 이제 문호를 개방하려고 하는뎅
막 열면 어느나라가 어떠케 들어올지 모르니까 너희가 너네 나라 프랑스로 가가지고
프랑스 왕한테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등등으로 지원을 해달라고 프랑스왕한테 부탁을 해주라."
이러케 말을 한거에염. 근데 이때 선교사가 한말,
"이런부탁 하지 마세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조선에 왓어염.
우리는 이딴 정치문제같은데에 관심 없어여!"
이런거에여.. 완존 말실수를 한겁니다. 이때 완전 화가 난 대원군!
프랑스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천주교를 전파하려고 왔짜나여,
그니까 화가난대원군이 우리나라에있는 천주교신자들을 몽땅 다 죽여버립니다.
당연히 좀전에 불렀던 프랑스 선교사들도 다 죽여버리져.
근데 그 선교사중에서 몇명은 가까스로 도망을 칩니다.ㅋㅋ
그래가지고 중국근처에 정박해있던 프랑스 배로 도망을 칩니다.
가서 하는말이,
"지금 막 흥선대원군이란 사람이 천주교신자들을 다 죽이고있써여!"이런거에여.
그러자 프랑스 애들이 화가 나자나여.
근데 제가 앞에서 말햇다 시피 서양 열강들의 속셈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자는거였습니다.
근데 식민지는 만들고 싶은데 쳐들어갈 구실이 없었습니다.
근데 마침 우리 조선에서 천주교를 박해하고있따니! 이건 정말 좋은 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천주교 신자 왜 박해하냐면서 쳐들어왔지만 속셈은 식민지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랑스가 우리나라를 왜 식민지로 만들고싶어했냐면, 걔네는 사실 우리나라가 황금으로 뒤덮인 나라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맨날문짝닫고있으니까)
그래서 식민지 만들고싶어했져~
어쩄뜬 프랑스가 우리나라로 쳐들어옵니다.구실은 말했쪄? 쳔주교박해~
그래서 강화도로 쳐들어옵니다. 강화도는 인천옆에 있는섬입니다.
프랑스인들이 이제 배에서 내려서 강화도에 도착햇습니다.
황금으로 뒤덮인줄만 알았던 조선,, 가보니 떵냄새 나는 토굴이었져.
게다가 거기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지같은것들이 이상한 무기를 들고다니고 ㅋ
프랑스인들이 이상한 무기라고 생각했떤 물건이 바로 쟁기와 낫 같은거였을겁니다
프랑스인들이 쳐다본 조선은 아주 그지같은 가난한 떵냄새 나는 나라였습니다.
이를 본 프랑스 대장은
"아...이 그지같은 나라~우리가 만약 식민지로 만들면, 우리에게 이익이 되기는 커녕 우리가 먹여살려야하는게 아닌가."
이런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싸울겨를도 없이 그냥 다시 프랑스로 도망쳐온거져 ㅋㅋ
도망은 아니고 철수죠. ㅋㅋ
어쩄뜬간에 프랑스가 어떤 생각을 했껀간에 우리 조선의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게 아니겠습니까?

프랑스가 먼저 도망갔으니까염.
이것을 우리 교과서에서는 "병인양요 승리"라고 하죠 ㅋㅋㅋㅋ
이것을 본 흥선대원군은, 조선이 잘해서 승리한줄 알고 기고만장해지져. 자 여기까지가 병인양요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기고만장해진 흥선대원군을 염장지르는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바로 "오페르트도굴사건"입니다.
오페르트라는사람은 독일의 상인이었습니다 면티를 파는 상인이었습니다.
이 오페르트가 면티를 팔러 아시아에 왔었습니다.
오페르트가 조선에 와가지고 면티를 팔려니 당연히 흥선대원군이 안산다고 했쪄.
한복입는 조선인이니까 오페르트가 이제 빈털털이로 자기나라에 돌아가게되었잖아요
화가난 오페르트는 일을 저지릅니다.
흥선대원군이 미워진 오페르트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무덤을 파헤칩니다.
흥선대원군이 완전히 빡돌앗죠. 유교사회인 조선이니까!
흥선대원군 뿐만아니라 백성들도 화가 납니다. 온 나라가 유교로 똘똘뭉쳐있잖아요,
그래서 조선 사람들 모두 서양세력을 더욱더 미워합니다.

그때 미국이 쳐들어오죠. 바로 신미양요입니다.
근데 신미양요를 일으키게 한 구실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바로 "제너럴셔먼호 사건"입니다.
제너럴셔먼호사건은 병인양요 전에 일입니다.
그니까 병인양요전에 제너럴 셔먼호 사건일어나고 !
병인양요일어나고!
오페르트도굴사건 일어나고!
신미양요일어나는겁니다.

다시한번~
★제너럴셔먼호사건→병인양요→오페르트도굴사건→신미양요★

이 중간에 병인양요신미양요 순서모르시면 병신이라고 햇졍?
음음어쩄뜬 그래서 제가 지금 신미양요 설명하려고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설명할라구염 ㅋㅋ
"제너럴셔먼호사건"은 제너럴셔먼호라는 배가 일으킨 사건입니다.-_-;'
제너럴셔먼호는 미국의 배입니다. 상인들이 탄 배입니다. 면티팔러 왔어여 얘네들도.
먼저 청나라에 가가지고 면티를 팝니다.
근데 재고가 남으니까 조선에 와서 마저 팔려고 조선으로 들어옵니다..완전 미친짓을 한거져
제너럴셔먼호에서 외국인들이 평양에 도착합니다.
외국인을 처음 본 조선의 평양인들!
키는 너무 커서 완전 올려다봐야하고
눈동자는 퍼렇고
코는 찝개로 찝은듯이 높고ㅋㅋ
그리고 게다가 몸은 금빛 털로 덮여있고
말도 이상한 꼬부랑말하고 ㅋㅋ
그러니까 조선인들이 당연히 무서워서 다 도망가죠!
외국인들은 이걸 보고 조선인들에게서 약탈을 해갑니다.
조선인 집에 불지르고 돈도 뺏고 그럽니다. 양키새끼들이 ㅋㅋ
자 근데 지금 그곳이 평양 아닙니까.
지금 북한사람들을 생각해 보시면 댑니다.^^*
무서운 평양인들이져!
이 평양인들은 밤을 기다립니다. "내레 두고 보자우!"요로면서 ㅋㅋ
밤이 되자 평양인들이 제너럴셔먼호에 와서 불을 지릅니다.
제너럴셔먼호에 있떤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ㅋㅋ 한명도 안빼놓고요
제너럴셔먼호가 다~~~다 불타버립니다. 흔적도 없이!
자.. 이제 시간이 좀 흐릅니다. 미국에서는 제너럴셔먼호를 찾습니다.
"어? 얘네 왜 안오지?"이러면서...
그래서 청나라한테 물어봅니다. "너네~ 제너럴 못봤니??" 이러니까
청나라가 "아..그거???제너럴 .. 그거 조선에서 불타지 않았나?" 이런거에염
그러자 미국이 화가 나져.
근데 얘네도 아까 프랑스랑 마찬가지로 속셈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드려고 쳐들어옵니다.
드뎌드뎌 신미양요가 일어났쪄!!
그리고 이 뒤로는 병인양요와 똑같습니다.
우리나라가 그지나라인것을 알고 미국 스스로 도망가죠 .
이것도 교과서에서는 신미양요 승리라고 나옵니당.

이일로 더더더더더더욱 기고만장해진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웁니다.
척화비는 비석이져.
그 비석에 뭐라고 써놨냐면..대충
"외국못된놈들과 어울리는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일이다."
대강 이런뜻으로 비석을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