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7.12.30 줄어드는 남자 - 리처드 매드슨 4
  2. 2007.11.30 머더리스 브루클린(Motherless Brooklyn) - 조나단 레덤 6
  3. 2007.10.30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두 번째 방문 - 김미리, 김종일, 김준영, 신진오, 안영준, 이종호, 장은호, 최민호, 황희 2
  4. 2007.08.22 그레이브 디거 - 다카노 가즈아키 4
2007. 12. 30. 15:44

줄어드는 남자 - 리처드 매드슨

줄어드는 남자 - 8점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했겠지만 대중들에게는 '나는 전설이다'로 유명해져버린 리처드 매드슨의 다른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줄어드는 남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밀클 카페의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 처럼 사실 처음에 표지를 보고 좀 많이 웃었었는데 다 읽고나서는 어쩐지 끄덕끄덕. 주인공 스콧의 상황을 이보다 더 적절히 표현할 수 없는 표지라고 여겨진다. 디자이너분, 센스쟁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던 남자가 방사능에 노출된 후 온 몸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다. 하루에 0.36cm, 미약하지만 확실히 줄어드는 자신의 몸에 스콧과 그의 가족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원인조차 알 수 없어 당황하고 뒤늦게야 원인을 알게 된 후에는 이미 그의 몸은 100cm 근처, 치료방법도 없고 이미 그의 가정과 일상은 망가진 지 오래다.

그렇게 온 몸이 줄어들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조금씩 잃어가는 스콧, 급기야 지금 그의 키는 3cm도 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하실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제일 심각한 것은 식량난, 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지하실에 살고 있는 거미다.

바로 이 상황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굶주림과 거미에 맞서 싸우면서도 조금씩 줄어드는 스콧, 조금씩 줄어드는 과거를 회상해봐도 현재의 자신의 상황을 살펴봐도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간다. 힘들게 냉장고 위까지 기어올라가서 곰팡이가 핀 비스켓을 구해오고 핀을 무기로 거미를 퇴치한다. 개미만한 몸이 되었을지언정 그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계속 줄어들다 결국 0cm에 가까워진 스콧, 엉뚱하게도 난 그의 마지막을 '다시 조금씩 자라나서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는 것'을 기대했고 간절히 바랐었다. 난무하는 반전에 익숙해진 탓일걸까, 아님 스콧이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났으면 싶었던 걸까?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은 예상과 전혀 달랐고 탄성을 내뱉게 해줬다. 이래서 역시 소설가는 아무나 못하는 거다!!!


상처 위에 난 딱지가 서서히 벗겨지듯이 그렇게 그도 조금씩 인간사회에서 분리되어 갔다.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나도 그와 함께 마음 아파하고 또 절망하고 때로는 기뻐할만큼 흡입력이 강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전설이다보다도 줄어드는 남자가 내 취향에 훨씬 더 재미있었다.^^;


중편 줄어드는 남자 이외에도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이 9개나 실려있다. 1954년작 부터 1994년작까지 그의 작품 변화를 잘 알 수 있다. '결투'와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은 영상화도 되었다는데 내가 본 기억이 없어서 그냥 이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음, 재미있었다. 다 재미있었지만 특히 마지막의 '파리지옥'이 제일 재밌고, 또 공감되기도 했었다. 종종 방에 파리나 모기 한 마리가 들어와서 왱왱거리면서 신경을 자극하는데, 여름 밤에 모기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쳐 본 사람이라면 절대 공감할 수 잇는 얘기가 아닐까?


내가 본 그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서서히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면서 외부와도, 자기 자신과도 처절하게 맞서싸우게 되는데 그래도 그들은 절망은 하되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책 읽으면서 주인공의 상황에 잘 동화되는 나로서는 푹 빠져서 보면서도 정말 견디기 힘든 경험을 하게 해준달까. 역자가 후기에서 말했듯이, 내가 그 상황에 빠진다면 정말 으악이다. 난 리처드 매드슨의 주인공들처럼 잘 견뎌낼 자신이 없다. 뭐,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또 모를 일이긴 하지만.


2007. 11. 30. 23:37

머더리스 브루클린(Motherless Brooklyn) - 조나단 레덤

머더리스 브루클린 - 6점
조나단 레덤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틱 증후군(틱증, tics)

눈을 깜박이는 운동, 고개를 끄덕이는 운동, 고개를 갸웃거리는 운동, 머리를 흔드는 운동, 혀를 차는 운동 등을 심하게 반복하는 증세를 들 수 있다. 히스테리성격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추체외로계(錐體外路系)의 장애에 의한 것이 있다. 특히 뇌염 후의 파킨슨병에 합병하는 수가 많다. 유효한 치료법은 아직 없고, 진정제를 투여한다. 규칙적인 체조가 효과를 볼 때도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쉽게 말해 일정한 동작을 반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혹은 상황에 맞지 않는 말들을 뱉아내는 것 또한 해당되겠지.

갑자기 틱 증후군의 얘기를 꺼낸 이유는 막 책장을 덮은 '머더리스 브루클린(Motherless Brooklyn)'이라는 책의 주인공이 틱 증후군, 그것도 개중에 꽤나 심각한 투렛 증후군(아마도 몸짓틱과 언어틱을 동시에 가지는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표지에 원제가 표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주의하게 한글 제목만 본 나는 머더리스를 murder라는 단어와 연관지어 생각했었더랬다. 여태까지 읽어온 밀리언셀러 클럽의 특징 상 살인자와 피해자가 등장할 것은 틀림없을 것 이기에 당연한 사고의 과정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뒤늦게야 머더리스가 엄마가 없다는 단어를 뜻함을 알고 혼자 얼굴을 붉히기도 했었다.


내게 있어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을 읽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나', 즉 주인공과 가장 일체감을 느끼며 이야기를 즐길 수야 있지만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정보에 따라 생각하고 또 그의 사고와 행동을 따라 얘기가 진행되기에 전체적인 구조의 파악이 후반부에 가서야 다급히 이뤄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이다. 그래서 원래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부담스러운 내가 틱 증후군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에 푹 빠지는데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단순히 '산만하다'라는 말로만은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이야기의 맥을 툭툭 끊어놓았기 때문이다.

틱 증후군에 시달리는 나, 라이어넬 에스로그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튀어나온 틱으로 인해 일찌기 '미친놈'으로 유명했던 그는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 셋과 함께 프랭크라는 사람의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라이어넬과 그의 친구들은 고아원에서의 삶을 벗어나게 해 준 프랭크를 우상으로 생각하며 그의 똘마니로 지내고 어느새 어른이 된다.

여느 때와 같은 임무를 하는가 했는데 어쩐지 오늘은 이상하다. 도청기를 몸에 달고 한 선당(禪堂)으로 들어간 프랭크,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끌려가고 급기야 그들 앞에 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병원으로 옮겨가지만 목숨을 거두고 만다. 프랭크의 똘마니로만 살아왔던 프랭크맨인 그들에게 프랭크의 죽음은 더할나위 없는 충격이다. 설상가상으로 뉴욕 경찰은 프랭크를 병원으로 데려간 라이어넬과 그의 친구 길버트를 용의자로 생각하는 눈치다.

프랭크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서 복수를 결심하는 라이어넬에게 주어진 힌트는 거의 없다. 프랭크가 죽기 전에 누군가와 했던 대화에서 나온 '라마 라마 딩동', '어빙' 등의 이름과 그 선당을 조사하는 것 등으로만 진범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틱 증후군에 시달리는 라이어넬은 동료들에게조차도 "꼴값"으로 불리며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 그를 따라 사건을 쫓아가는 나도 어휴, 정신이 없다, 이건 도대체 뭐가 뭔가 싶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그의 틱들, 고백하건데 이탤릭체로 표시되지 않았다면 중간에 책을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그의 틱과 함께 추적을 하다보면 비밀이 밝혀진다. 이것 참, 세상에는 역시 믿을 놈이 없다.


프랭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도록 하자. 다만 옆에서 귀에 대고 쉼없이 중얼거리는듯한 주인공의 산만함은 각오하고 책을 펴는 게 좋을거다.


간간히 영어 독해를 할 때나 초벌번역된 글을 볼 때면 생각하는 일이지만 다른 언어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다. 특히나 이번 머더리스 브루클린은 번역자의 힘이 제대로 돋보인 소설이다. 특히나 작가도 힘들었다고 고백한 라이어넬의 틱들, 단순히 의미 뿐만이 아니라 어감까지 같이 전달해야 했기에 더더욱 힘들었을게다. 그래서 사실 중간중간 말도 안되는 억지로 끼워맞춘 듯한 틱들이 없지만은 않았었다. 어찌됐든, 라이어넬의 틱은 단순 번역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것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소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귀여니의 끄적임들이 중국에서 출판되면서 훌륭한 소설로 재탄생했듯이 말이다.). 데릭 스트레인저 시리즈와 800만가지 죽는 방법에서 이미 충분히 단련되었기 때문일까, 이젠 웬만한 욕설에서는 놀라지도 않고 책장을 넘기는 내 모습에 어쩐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2007. 10. 30. 11:21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두 번째 방문 - 김미리, 김종일, 김준영, 신진오, 안영준, 이종호, 장은호, 최민호, 황희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8점
이종호 외 8인 지음/황금가지

지난 여름에 손에 떨어졌던 책. 받자마자 한 번 읽고 감상을 쓸 엄두가 안났었는데 다시 한 번 더 읽고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단편집, 그것도 한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 아니라 '공포'라는 대주제 안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단편을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고로 취향따라 골라잡을 수 있는 뷔페와 흡사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려나.


보기에도 꽤나 두꺼운 이 책은 400페이지에 달하며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해설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서운 괴담을 듣는 듣한 느낌의 유일한의 '어느날 갑자기'에 비해 공포문학단편선의 작품들은 괴담보다는 환상문학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보는 동안 팔뚝에 소름이 오스스 돋고 등골이 서늘한 기분을 맛보게 하는 점 또 주인공의 심정에 동조해서 긴장을 느끼는 점에서는 공포가 맞지만 이게 긴가민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갸우뚱 하는 내 이해를 벗어난 부분에서는 갈피를 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건 영상매체에 익숙해진 내 머리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영화 주온에서 그러했듯이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서도 일상적인 것들을 공포의 소재로 삼았다. 세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 층간소음(벽, 김종일), 빈부격차와 개념없는 아이들의 행동(레드 크리스마스, 안영준), 습기로 인해서 집 구석에 피는 곰팡이(벽 곰팡이, 황희), 병원과 환자의 죽음(캠코더, 장은호), 악몽(드림머신, 김미리), 갑자기 몸에 생긴 혹(통증, 김준영) 같은 누구나 한두번쯤은 경험해본 적 있는 것들로 그런 얘기들을 만들어내다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족을 달자면 난 정말 주온의 귀신 그 자체보다는 머리를 감거나 잠을 자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미지의 존재와 공유할 수 있다는 설정이 소름끼쳤었다.


나는 안영준의 '레드 크리스마스'가 참 슬펐고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던 노인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철이 없다 못해 개념이 없는 아이들의 행동에서 이 사회의 단면이 보여서 섬뜩했고, 슬펐다. 예전같았으면 '저런 애들이 어딨어.'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그네들보다 더한 '어른 아이'들이 넘치는 세상이기에 뒷맛이 더 쓸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도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날인 크리스마스를 결국 잔인한 복수와 함께 레드 크리스마스로 만들어보인 노인. 객관적인 결과만 본다면 몇 명을 살해한 범죄자지만 그래도 그의 손을 잡아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건, 어쩜 내 스스로가 부(富)층보다는 빈(貧)층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며,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부층들의 행위에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다양한 단편들이 모여있다보니, 정말 몰입해서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게 되는 작품도 있었고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앞장을 뒤적이거나 혹은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는 작품도 있었다. 작품의 호불보야 철저히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인테니 재미를 느끼는 작품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됐든 종합선물세트같은 단편집이었다.

공포문학단편선 1권의 작품들이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있던데, 원작의 맛을 잘 살려내준다면 좋겠다. 원작에서 소재만 빌려오고 링의 사다코가 넘쳐나는 그런 실패작이 아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섬뜩함과 소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http://nicky82.tistory.com2007-10-30T02:24:180.3810
2007. 8. 22. 07:25

그레이브 디거 - 다카노 가즈아키

그레이브 디거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황금가지


사놓고 한 달 넘게 쟁여놨다가 드디어 볼 수 있었던 그레이브 디거.
으아, 말이 필요없다, 이번에도 역시 최고, 다카노 가즈아키!!


당신은 '그레이브 디거'에 대해서 아는가?
갑자기 너무 쌩뚱맞은 소리를 한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조금 더 많이 알려져있는 중세 유럽의 곳곳에서 펼쳐졌던 마녀사냥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는가?

지금이야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만(솔직히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국교가 정해져있지 않을 뿐이지 어느 특정 종교가 나라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은데다가 특정 후보를 언급하기는 그렇지만 그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번엔 대한민국을 봉헌하겠다는 말도 서슴치 않을 것 같긴 하다-_-;) 거의 제정이 일치되어있던 중세시대에는 다수의 민중을 소수의 지배자들이 효과적으로 장악하기 위해서 그네의 생활인 종교의 힘을 빌어서 통치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들의 지배체제에 위협이 될 것 같은 불온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단심판관'을 활용, 각종 말도 안되는 이유들을 붙여서 남녀를 불문하고 '마녀'딱지를 붙여서 처형하고 대중의 고통과 공포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도, 글을 읽는 당신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문헌에 따르면 이렇게 마녀 딱지가 붙어서 죽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이 억울해서였는지 무덤을 파고 다시 나와서 자신을 고문했던 이단 심판관들에게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복수를 한다고 한다. 이들을 무덤을 파는 자, 혹은 돌아온 사자를 의미하며 그레이브 디거(the grave digger)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레이브 디거의 의미를 알고나서 책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사람 많은 길가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두 남자가 다툰다. 그 중 젊은 남자가 나이 많은 남자를 칼로 찔러서 살해하고 시체를 싣고 도망가지만 수많은 증인의 증언으로 잡히고 만다.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후 한 변사체가 발견되는데 그 변사체가 알고보니 예전에 죽은 그 남자였다. 거기다가 신기한 것은 죽은지 1년 반이 지난 사체가 사망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까지 하다. '제 3종 영구시체'로 분류된 그 사체의 부검을 앞두고 갑자기 그 사체가 사라진다. 사건은 결국 미결 표제를 달고 어둠속으로 묻히게 된다.

이와 별개로, 소설의 주인공인 야가미 도시히코, 명색이 주인공인데 이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인상은 매우 험악한 범죄자형이다. 외모와 별개로 성품은 착한데 외모 때문에 오해를 받는다고 하면 오죽 좋겠냐만 사실 그는 스스로 인정하는 삶이 얼굴에 나타나는 범죄자인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잘한 공갈 협박과 사기를 일삼고 나이를 먹어서는 어린 소녀들을 속여 오디션비를 떼먹거나 목소리가 비슷한 국회의원의 사무실에서 돈을 빼앗기도 하는 둥, 스스로 생각하고 마냥 착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 사람이다. 이런 그가 새 사람이 되기 위한 결심을 하고 골수이식을 결심한다. 수술 전 날 병원에 가기 전 돈을 빌리기 위해 간 자신의 집에서 흉측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시체를 발견한 그는 자신의 전과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그냥 도망쳐서 병원으로 가기로 한다.

그렇게 멀지않은 병원과의 거리지만 그의 앞길에는 무수한 장애가 뒤따른다. 처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따라붙이 시작해 급기야 경찰까지, 하지만 그는 누군지도 모르는 골수이식 대상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잡힐 수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음 날 오전까지 병원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도망가고 다른 자들은 그를 뒤쫓는다. 뿐만이 아니다. 도시 곳곳에서 짧은 시간 간격으로 계속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네들의 죽은 모습은 흉측하기 그지 없다, 바로 전설의 '그레이브 디거'가 이단 심판관들에게 그들의 복수를 하던 그런 잔인한 모습으로 하나같이 죽어있는 것이다. 하나 더, 죽은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젊은 남자가 살인을 했다는 증언을 했던 증인이라는 것. 이런, 몇 달 전에 실종된 시체가 다시 살아와서 증인들을 헤치고 다니는 것일까? 연이어 발견되는 사체들 때문에 경찰들도 바쁘기 그지없다. 영화의 화면전환처럼 야가미의 상황과 그의 뒤를 쫓으며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상황이 번갈아가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지난 번 13계단에서 마지막 30페이지에 완벽하게 낚였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그냥 추리를 포기하고 야가미를, 그리고 겐이치와 후루가와를 따라 열심히 손과 눈을 움직이기만 했다. 사건이 파헤쳐질수록 내 입은 딱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어쩜 이런 것들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작가가 전작에서 사형제도에 대해서 생각케 했다면 이번 그레이브 디거에서는 정치와 종교, 그리고 경찰, 권력이 뒤섞여서 만들어진 추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일본과 우리의 경찰조직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소설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되는 보안부가 하는 일은 흡사 우리나라의 안기부 혹은 국정원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럼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는거잖아!!!


늘 느끼지만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직소퍼즐을 맞추는 것 같다. 그 두께와 내용의 방대함에 따라서 500피스짜리 작은 직소가 되기도 하고 2000피스짜리, 정말 시작하기 엄두도 안나는 그런 어려운 직소가 되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느낌은 직소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과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어찌됐든 추리소설 읽기를 즐기는 당신이라면 지금 당장 다카노 가즈아키의 '그레이브 디거'를 선택해서 보길 바란다. 절대 시간이 아깝다거나 후회한다거나 할 일은 없을지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요건 밀클카페에서 퍼온 웹툰.
 그림이 느므느므 귀엽다>ㅅ<)b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