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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27. 19:55

13계단 -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황금가지

'우와-.'
방금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감탄사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섣불리 덤비다가 이도저도 아닌 쓰레기 감상문이 나올 것 같아서 손가락 놀리기가 무섭기까지 하달까.
그러면 안쓰면 그만이긴 하지만, 음, 지금의 이 느낌을 남겨놓고 싶기도 하고^^;


평소 나는 청개구리같은 못된 심보로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에는 코웃음 치는 편이다.
남들이 알기 전에 내가 읽고 나서 뜨는 건 상관없지만 대중의 부속품이면서 대중심리에는 반발하게 된달까, 뭐, 성격인게다.

뭐, 실제 베스트셀러, 혹은 추천이 많은 것이 정말 좋았던 경우가 드무니 못된 심사가 더욱 굳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반대로 고전이나 명작 소리를 듣는 건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납득하게 되는 것도 많지만 말이다.


이 '13계단'이라는 책은, 알라딘 멤버십 할인쿠폰을 쓰기 위해 구매금액 4만원을 채우려고 뒤지다가 알게 된 책이다. 미야베 미유키나 기시 유스케, 히가시노 게이고, 아카가와 지로 등의 일본 추리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는 편이었고 먼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추천도 많고 해서 속는 셈 삼아 사게 됐다.
사전 정보는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는 것. 그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 생각났던 건 공지영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책에서도 사형제도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영화와 책을 보고난 후 고민도 좀 했었으니까.

결국 다 보고 나서 '아, 사람들이 추천한 이유가 있긴 있었구나.' 납득한 책 목록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얘기는 크게 두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건의 의뢰를 받고 증거를 찾아 헤매는 준이치와 난고, 그리고 실제 등장횟수는 극히 드물지만 이야기의 중요 인물인 사카키바라의 사형집행 결정과 실행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미카미 준이치는 2년 전 식당에서 밥을 먹다 취한 남자와 시비가 붙어 다투다 상대방 남자가 죽게 되면서 상해치사로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된다. 사건 정황과 의도야 어떻든, 그는 '살인자'의 타이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가석방은 받은 그가 겨우 세상에 나왔지만 집안 사정이나 타인의 눈은 너무나 달라져있다. 피해자의 유족이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그를 맞추기 위해 가세는 기울고 게다가 그의 사건이 신문에 알려지면서 가족들에게도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뿐만아니라 그 스스로도 가석방 기간 동안 보호관찰관과 보호사를 주기적으로 만나야하고 경범죄를 저질러서도 안되며 일정한 지역을 벗어날 때는 신고까지 해야 하는 얽메인 자유를 즐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난고 쇼지, 그가 있던 교도소의 교도관이 찾아온다. 반갑지않은 방문이라 그를 경계하지만 뜻밖에도 난고는 미카미에게 자신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이란 현재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한 용의자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함께 찾자는 것이다.


잠깐 그 용의자의 사정을 알아보기로 하자. 한 부부가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는 길에 도로에 쓰러져있는 한 남자와 오토바이를 발견한다. 신고를 하기 위해 급히 아버지의 집으로 달려갔는데 거기에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되어 있는 것이다. 놀라서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부르고 주변을 수색해보니 길가에 쓰러져있던 그 남자의 피가 그 참상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그 남자도 심하게 다친 상태,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정신을 차린 그는 놀랍게도 사고가나기 전 몇 시간의 기억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건데 사카키바라라는 그 남자가 용의자, 아니 범인으로 지목되고 재판을 하지만 범죄에 대한 기억이 없는 그다보니 범죄를 인정할 수 없고 괘씸죄가 적용되버려서 결국 사형선고까지 받게 된다. 7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머리가 꺠질 듯 아파오며 자기가 '계단'을 올라갔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모임'에서 그 얘기를 듣고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난고를 거쳐 미카미에게까지 의뢰가 가게 된 것.

미카미는 고등학교 시절에 여자친구와 함께 가출했다가 붙잡힌 전적이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사카키바라 사건과 관련된 그 지역이 예전에 그가 가출했던 그 지역인게다. 가석방의 조건이니만치 그 지역으로 가자마자 우선 피해자의 아버지를 만나 그의 잘못을 사죄하고 의뢰받은 일에 착수하지만 그가 무죄라는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그가 유죄라는 증거 또한 없다는 거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세상에서 완벽한 범죄란 없는 법인게다. 조각조각 흩어진 사건의 조각들을 이어가다보니 빛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이들의 추적이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만큼 사카키바라의 사형일자도 다가온다. 검사가 사형집행서를 결제보내고 그 후로 조금씩 단계를 밟아 사형절차도 진행된다.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 미카미와 난고, 그러나 뭔가가 이상하다. 그 증거에서 나온 지문은 의외의 인물의 지문, 급기야 사형집행일은 4일 앞으로 다가오고 그네들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진범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사카기바라의 결백을 밝혀달라고 의뢰한 인물은? 그리고 또 다시 숨겨진 비밀은?

뭐, 줄거리를 쓰자니 끝이 없다. 직접 보는 게 역시 제일일 듯 하다. 제일 최근(이라고 해봤자 작년 겨울이던가;)에 꼼짝없이 당했던 책이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였는데 알라딘 리뷰에서 '반전반전' 얘기를 들어서 절대 속지않으리라 다짐하며 보다가 뒷통수를 제대로 후려맞은 기억이 있었다. 이번에는 범인따위 찾아주겠다고 집중해서 보다가 설레발을 제대로 치고 말았다. 마지막 30페이지 쯤 남기고 "아싸, 이 사람이 범인" 이라고 이번에는 속지 않았다고 좋아하며 봤는데 그 남은 30페이지에서 작가에게 철저히 농락당해버린게다.


읽다보면 이것저것 생각할 건덕지도 만들어주고, 그거랑 상관없이 추리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한 번 볼만한 소설이다. 종이 질이 거친듯 하면서도 부드러운데 출판사 얘기로는 e-Light라는 고급종이라는데 글쎄, 손으로 눌러도 그 손에 물기 흡수해서 부풀어 오르는 게 과연 그렇까 싶다.


아, 위에서 얘기하다가 빠트렸는데, 난고는 교도관을 그만둘 심상으로 그 의뢰를 받아들인다. 그가 직업을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합법적인 살인인 '사형제도'에 환멸을 느껴서라고나 할까? 그의 경력에서 두 번, 직접 사형에 관련된 업무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 두 사람의 죽음 앞에서의 행동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사형이라는 것이 쉽게 내려지지 않는 것이니만치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꽤나 잔악무도한 것인데 복역을 하면서 정말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거나 혹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부정하거나 하는 두 가지 반응이었다. 죗값을 치루기 위해서 교도소에 들어오는데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사람에게도 사형은 집행돼야 하는 것일까? 사형제도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던 그의 흔들림은 가정의 불화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이직까지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모습에서 우행시의 윤수를 담당했던 그 교도관이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아직까지도 난 사형제도에 대해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겠다. 어디서 들은 혹은 본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살인현장을 본 사람은 사형제도의 존재를, 사형집행현장을 본 사람은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한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을 신뢰하는 나는 마땅히 사형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긴 하지만, '용서'가 없으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인이 사사로운 혹은 삐뚤어진 감정에서 저지르는 살인은 범죄가 되지만 국가가 법의 이름아래에서 저지르는 살인은 인정받는다니, 생각할수록 어려울 뿐이다. 이제까지 그런 예들이 꽤 있었듯이, 벌써 형을 집행한 후에 그의 무죄가 밝혀진다면 그 때는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의 문제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사족을 덧붙여보자. BL  작가인 코노하라 나리세의 작품 중에 '상자 안/밖' 그리고 구리모토 카오루의 '오와리노 나이 러브송'을 보면 수감생활에 대해서 짤막하게나마 나온다. 뭐, 단편적인 면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되겠지만 그 소설들에 따르면 '상식'을 가진 정상인들이 감옥 안에서는 망가지고 제일 타락하기 쉬워 결국 범죄자가 되버리는 메카니즘이 생기는 것 같다. 교도소에서 진정한 교화가 이뤄지고 그에 따라서 반성한 사람들이 출소하게 되는 걸까? 또 전과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범죄의 소굴로 빠지게 되는 건 정말 그네의 심성이 악하기 때문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밀클 카페에서 퍼온 웹툰입니다. :)
2007. 5. 16. 01:37

들돼지를 프로듀스 - 시라이와 겐

들돼지를 프로듀스
시라이와 겐 지음, 양억관 옮김/황매(푸른바람)


2006년 4분기 드라마였던가; 3분기 드라마였던가;
여튼 2006년에 방송했던 일본 드라마 '노부타를 프로듀스'의 원작 소설 되시겠다.

드라마가 꽤 괜찮았기에 원작 소설을 구입해서 보게 됐었는데,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원작이 있는 경우, 그것을 영상화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잘 없는데, 드물게 이 노부타는 드라마쪽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야마삐가 잘생겨 보여서 그랬을까?^^;


드라마에서의 노부타는 음침한 인상을 가진 소심하고 겁많은 전학생 소녀지만 원작에서의 노부타는 뚱뚱하고 스타일도 좋지 않은, 딱 이지메 당하기 좋은 인상의 소년이다. 뭐, 시청률을 생각해서 노부타를 여자애로 바꾸고, 또 원작에 없는 아키라라는(야미삐가 맡은 역) 인물을 첨가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극의 인물을 더 다양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주인공 키리타니 슈지는 급우들 사이에서의 "인기"에 집착하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소년이다. 아니, 그 또래의 수준에 비해서는 조금 더 생각이 깊은듯하기도 하나, 어찌보면 정저지와격으로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수렁에 빠지기도 했으니 그 생각이 올바르다고만 할 수도 없겠지.


슈지는 "유행어"를 만들거나 "방과후 모임"에 빠지지 않는 등, 친구들과의 원만한 관계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 관계는 겉으로만의 관계일 뿐이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서의 진희가 그러했듯이, 슈지 역시도 진짜 자신과 보여지는 자신을 구분짓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유치하다"고 욕하면서도 미움받거나 따돌림 당하는 건 싫기 때문에 늘 동급생들에게 맞춰주면서 인기인을 유지하는 재미없는 일상의 연속이 계속된다.

그런데 그네 반에 한 전학생이 오게 된다. 그의 이름은 고타니 신타, 외모는 뚱뚱한데다 오타쿠를 연상시킬만큼 음침하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전학 첫날 모두의 관심이 대상이 된 전학생은 순식간에 왕따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 고타니를 보다 못한 슈지, 노부타를 인기인으로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그래서 제목이 노부타를 프로듀스다). 아니, 애초에 고타니가 슈지에게 자신을 바꿔달라고 부탁했었던가; 어찌됐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 따위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슈지는 고타니를 변신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신타의 다른 발음이 노부타라 하고, 노부타는 일본어로 들돼지라한다.)


결과는 어이없을만치 성공적이었다. 노부타는 정말 반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인기인이 되버린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노부타에게 속으로 미안한 감정도 느끼는 슈지,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다.

물론, 사건은 이 때 벌어진다. 편의점에 갔다가 불량학생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괜한 일에 말려들기 싫어서 피했는데 알고보니 그 피해자가 자신의 친구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 동안의 슈지의 가면이 속속들이 들어나게 되고 급기야 그는 왕따가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이까지는 노부타의 성별이나 세세한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드라마와 소설이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결말은 좀 다르다.
드라마에서의 슈지가 노부타와 아키라에 의해서 진정한 "우정"을 깨닫게 된다면(은근 야마삐랑 마키의 커플링을 바랐었는데 그 바람은 산산히 부서졌다ㅜㅜ), 소설에서의 슈지는 다른 학교로 전학가서 거기서 또 새로운 가면을 덮어쓰게 된다.


헉, 어째 줄거리만 길게 늘여써버린 듯 하다, 시작할 떈 짧게 쓰고 말려고 했었는데, 끙;

이 소설의 작가는 상당히 젊다.
나보다 어린 85년생이었던가 83년생이었던가;
그래서 젊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의 문체는 흡사 우리나라의 인터넷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확 들어버려서 책을 덮고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성세대와는 또 다른, 현재 젊은이들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고, 나 스스로도 "보여지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괴리에 종종 고민하기에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로만 보자면 발랄한 청춘물이었던 드라마쪽이 더 유쾌했다.


덧)
책은 1년도 전에 봤지만, 갑자기 쓰고 싶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