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22. 11:44

Hot Music - 줄리아 하트(Julia Hart ) 4집

Julia Hart (줄리아 하트) 4집 - Hot Music - 10점
줄리아 하트 (Julia Hart) 노래/신나라뮤직



당신 안의 성숙한 소년 소녀를 깨워라
Julia Hart - Hot Music

첫 번째 물방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꼭 이 모양이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우산을 들고 나오면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더 많고, 그 때마다 투덜거리기보다 "언젠가 중요한 날 나쁜 일기예보가 틀릴 때도 있겠지" 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음에도 꼭 그런 날에는 일기예보가 맞는다. 이를테면 그녀와 처음 떠나는 여행에서 말이다. 어젯밤 TV에 나왔던 예쁜 기상캐스터도, 학교 다닐 때 기압과 대기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했던 자연선생님도, 보험에 당첨된 것 같은 표정으로 싸구려 우산을 길바닥에 늘어놓은 우산장수들도, 멍청한 얼굴로 과자 부스러기를 찾아 다니는 비둘기도 모두 밉기만 하다. 아침 일찍 나온 거리에는 무서울 정도의 적막만이 감돌았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처럼 잔뜩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억울한 마음에 "우산만은 쓰지 않겠어"라고 다짐했지만 옆에 있는 그녀를 생각하니 지나친 고집처럼 느껴졌다. 결국 내가 선택한 절충안은 비옷이었다. 비닐로 만들어진 싸구려 비옷. 그녀는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옷을 입고 아이처럼 좋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하지만 듣고 싶다는 사실조차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말을. 소나기의 첫번째 물방울이 떨어진 것은 그때였다. 머리 위로, 눈동자 위로 떨어지기 시작한 소나기를 세상에서 제일 먼저 맞은 것은, 바로 나였다. 마법 같은 그 순간, 어디선가 풋풋한 목소리의 코러스로 시작되는 노래가 귀에 들려왔다.

빠빠빠빠빠빠- 빠빠빠빠빠빠-
줄리아 하트를 아나요
그렇다. 줄리아 하트가 돌아온 것이다. 정바비(보컬/기타)를 주축으로 2002년 [가벼운 숨결], 2005년 [영원의 단면], 2006년 [당신은 울기 위해 태어난 사람]까지 발표하며 전국 소년 소녀들의 마음에 풋풋함이라는, 하나의 오롯한 감성을 불어넣었던 바로 그 줄리아 하트 말이다. 청춘의 사랑을 경험하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줄리아 하트의 노래들은 언제나 사운드트랙이 되어 주었고, 또 위로가 되어 주었다. 어느새 4집을 발표한 밴드되어서일까. "너무 자주 본 것 같나요. 지겨운가요"('JH Loves You')라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그들. 그러나 [웨딩 싱어]에서 로비 하트와 결혼한 줄리아 설리번이 지금도 잘 살고 있을 거라고, 그녀의 이름이 여전히 줄리아 하트일거라고 믿는 이들이라면 그들이 "불러주기만 한다면 기뻐할" 웨딩 싱어들이란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뜨겁지 않은 그녀의 뜨거운 음악

총 12곡으로 구성된 4집의 앨범명은 [Hot Music]이다. 앨범명을 듣고 "혹시?"하고 음악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빙고!"라고 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메탈 밴드가 내한했을 때 자신들이 표지로 나왔던 핫뮤직을 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기념 사진을 찍는 걸 볼 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정말 '미치겠다'고 생각했었다. 'Hot'이란 단어가 가진 '뜨거운', '최신유행의', '섹시한' 등의 뜻에 줄리아 하트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맘에 들었다."

'뜨거운 음악'이란 앨범 타이틀이 무색하게 자켓에 떡 버티고 있는 무표정한 펭귄 두 마리. 타이틀 곡인 '펭귄을 기른다는 것'은. 동물원이나 영화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줄 알았던 펭귄을 버젓이 집에서 기르는 사람들이 - 마치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일군의 사람들처럼 - 소수지만 분명히 세상에 있다고 전제한다. 펭귄과 함께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에 이젠 눈빛만으로도 통하며 자신이 돈이 없을 땐 펭귄도 같이 굶어준다고 천연덕스럽게 노래하는 이 곡에서 여러분은 새로운 줄리아 하트를 만나게 된다. 농담을 하는 줄리아 하트 말이다.

"[Hot Music]이란 제목을 달 수 있는 건 이번 앨범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실 전곡에 걸쳐 지난 앨범을 관통하던 어두운 면은 싹 걷혔지만 아직도 '서글픈 일들만 가득 차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던 그때'(천사들의 오후)는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런 멜로디들과 함께 줄리아 하트에게는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 무기는 날카롭지도 딱딱하지도 않아서 다른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기 보다는 간지럼을 태우는데 더 적당해 보인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이 새로운 공격에 못 참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일만 남은 것 같다. '나쁜 농담을 자꾸 반복하는 건 나쁜 농담에 자꾸 웃어주기 때문'(넘쳐나는 인생)이라지 않는가.

[자료제공: 석기시대레코드]


처음 들었을 때는 줄리아 하트 5집 안내려고 이러는건가 싶었었는데 들을수록 발랄한 것이, 줄리아 하트의 초심을 잃지 않은듯 한 앨범.

설명이야 위에 구구절절히 잘 적혀있고, 직접 들어보는 게 최고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