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어머님 이야기 - 프롤로그
꿈에 그린 두 장의 그림
친하게 지내는 분들이 가끔씩 집에 올 때면 으레 한번쯤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진호 어머님. 그 그림 좀 한번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면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몇 번이고 손사레를 치다가 결국에는 앨범에 고이 접어둔 두 장의 그림을 꺼내오곤 합니다. 진호가 여섯 살, 그러니까 한 13, 4년쯤 전이었을까요. 진호의 자폐증세가 한창 때였을 것입니다. 진호와 밀고 당기는 싸움으로 하루하루가 전쟁 같던 시절. 너무도 암담하고 두려운 현실에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메워갈 무렵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주위의 권유로 교회에 막 나가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어느 주일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바라봄의 법칙’이란 주제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난 후 꿈결처럼 내가 너무도 소망하는 미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다가왔는데 너무도 선명한 영상에 놀라 나도 모르게 그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장은 예쁜 교복을 차려입은 진호가 교실 뒷자리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이었고, 다른 한 장은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말풍선이 그려진 그림 속에서 나는 싱크대 앞에 서 있고 식탁에는 맛있게 보이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남편과 진호는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진호가 나에게 ‘엄마 밥 한 그릇 더 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그린 두 장의 그림을 눈에 가장 잘 띄는 거실 중앙에 걸어두고 매일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림 속의 모습이 현실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그것은 한낱 부질없는 꿈으로 끝날 것만 같았습니다. 네 살이 넘도록 엄마 소리는커녕 듣기에도 끔찍한 쇳소리 밖에 내지 못하던 아이, 유리를 깨부수어 얼굴에 자해를 해대는 아이, 하루 종일 장난감 바퀴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혼자 낄낄대는 아이가 바로 진호였으니까요.
그러나 그 그림은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기는 했지만 기적 같은 도움으로 학교도 다닐 수 있었고, 진호의 학교 문제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사는 탓에 한 달에 두어 번뿐이지만 가족끼리 행복한 저녁식사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삼키며 그렸던 두 장의 그림.
이제는 현실이 된 소박한 우리 가족의 행복.
간절하게 기원하고 또 기원하면 그것은 언제고 현실이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너무나도 소중한 은혜입니다.
진호를 사랑해주시고 용기를 북돋워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진호를 대신해 그 마음을 전하려 합니다.
“여러분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