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4. 09:54

럭키걸 - 세오 마이코

럭키걸
세오 마이코 지음, 한희선 옮김/비채


양파 시디와 다른 리뷰에 낚였다고 해야 할까?

오랜만에 돈 주고 산 책이 마음에 안들어서 몸서리치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슬프다.

표지나 책 소개를 보면서 "혹시나" 했었지만 따라오는 부록에 마음이 팔려서 눈 딱 감고 선택한 결과, 시디는 내 손에 들어왔지만 책을 읽고난 후에 "역시나"가 되버렸다.
고로 최면을 걸자, 양파 시디를 7천원에 샀고 럭키 걸은 부록이야, 레드 썬!!

주인공 루이제는 점성술사.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4명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책이다.


문제는, 주인공 루이제가 내 맘에 너무나도 안들어버렸던 것, 그래서 책장을 넘기는내내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다 가끔씩 코웃음 칠 수 밖에 없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인건지, 아님 무인(巫人)들과 점성술사의 차이인건지, 맙소사, 루이제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너무 없다. 처음에는 가이드 라인에 따라서 충실하게 점을 보지만 알고보면 그 조차도 계산을 틀리거나 해서 틀린 경우가 많았던 것, 그래서 그냥 그녀는 자신의 직감을 믿는다. 그리고 '도를 아십니까'나 손금 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일반적인 성향"에 대한 얘기를 그럴듯한 말로 꾸며낼 뿐이다.  애초에 영업직으로 일하다가 "사람들과의 관계 맺는 것이 피곤해서" 택한 직업이 점성술사라서 그런 거였을까? 상대적으로 점보러 오는 사람들은 1회성 만남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직접 대하는 일인데 말이지.

거기다가 베리 나이스한, 大吉의 운을 가진 남자친구를 만들 때의 상황도 세상에나, 한 커플이 점을 보러 왔는데 그 남자의 운이 너무 좋아서 멀쩡히 잘 사귀는 커플을 찢어놓고 그 남자에게 대시해서 자신의 남자로 만들어버린다. 내가 너무 윤리의식에 얽매여있거나 혹은 쟁취심이 없는 건거야?


첫 번째, '엄마야, 아빠야?"를 선택해달라는 초등학생의 이야기. 돈 많은 부잣집 아들로 여기고 대강대강 찍어서 선택해주다가 심각한 문제를 물으니 발을 뺀다, 참, 나. 뭐, 상식적이나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면 그녀의 태도가 옳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무 불온한 자세였는걸. 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는 똑같이 중요한 문젤수도 있을텐데 어떤 건 별 거 아니니까 대강, 어떤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니 점보기를 거부. 나랑 안맞아, 안맞다구. 결과적으로야 진지하게 뒷조사를 해서 잘 해결되긴 하지만, 그래도 보는 내내 찝찝했다는 것이 사실.

두 번째는, '그의 눈에 띄고 싶어요'라는 요청을 한 여고생. 짝사랑하는 요즘 아이겠거니 여겨 여전히 점이 아닌 잡지에나 나올 얘기들로 일관하다가 뒤늦게 제대로 된 사정을 알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충고. 루이제도, 상담하러 온 여고생도 둘 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불가. 점보러 가서 소품이나 화장 바꾸랜다고 바꾸고, 머리도 자르고, 아, 몰라, 모르겠다구.

세 번째는 '끝이 보이는 남자'의 이야기. 신기가 약간 있다고 해야 할까? 수행삼아 루이제의 옆에서 억지로 보조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남자가 루이제보다 더 유능한거다, 웁스!!
본인은 자신의 끝을 예고하는 자신의 능력이 불만이지만, 그가 사실을 말해준 덕분에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이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헤쳐가고 감사했기에 결국 사고방식의 전환. 하지만 그는 루이제에게 '당신도 끝이 보여'라고 하고 떠나간다.

네 번째는, 루이제의 이야기. 보조를 둔 그녀, 하지만 보조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게다가 미치히코랑 헤어질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마찬가지, 결국은 잘 해결돼서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보는 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지.

아, 초등학생 줄거리 요악 독후감 쓰는 기분인걸;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은 '아, 이모티콘 없는 귀여니류다'. 혹은 십수년 전에 유행했던 틴틴문고였던가, 분홍색 표지에 일본 만화가들이 쓰고 그린 전형적인 소녀소설이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느낌.


가볍고, 가볍고, 가볍다.
가벼운 걸 욕하는 건 아니다. 가벼운 걸 보고 기분 전환이 될 수도 있고, 실제 아무 내용 없는 BL이나 할리퀸 시리즈, 혹은 출판된 인터넷 연애소설들을 보면서 낄낄대거나 가슴 설레하기도 하는걸.
하지만 이 책은 이도저도 아니고 불쾌감만을 줬기 때문에 용서가 안된다.


딱히 책을 가리는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오랜만에 맘에 안들어버린 책이다.
내게 있어서는 절대 소장가치 없고 1회용 오락거리 조차도 안되는 책, 미용실 가서 보는 잡지만큼의 가치도 없는 책.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 '비채'였는데 이 출판사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라는 black & white 시리즈에 대한 호감도는 바닥.
'살인의 해석'을 주문해놨는데 주문하고보니 이 책도 '비채'에서 나와서 걱정했는데 다락방님이 재밌다고 하셨으니 그나마 안심.



덧)

세 번째 도전-_-
가뜩이나 맘에 안 든 책인데 몇 번 날려먹은거야-_-;;

그래도 다 쓰고 보니 예상보다 길다;;
몇 줄 욕하고 말 줄 알았는데-_-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