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8. 22. 06:09

오랜만에 욕을 하다

문형군이 충주에서 내려왔다

새벽 바다가 보고 싶다 한다

 

그 녀석 며칠 연속 술마시고 논다고 밤 새서 수면 부족 상황

나 역시 수면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오전에 알바하고 넘어가서 피곤한 상황

 

어차피 술집에서 술 마시고 노닥거리다가 디비디룸에서 불편하게 자거나, 사람 많은 찜질방에서 불편하게 자느니, 그냥 여관방 잡아서 푹 자고 새벽에 첫 차 타고 해운대 가기로 하고 온천장 주변에 있는 모여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동 과정에서 비 오는 날 차들이 무섭게 달려서 도로 옆으로 피하다가 빗물에 발이 미끄러져서 신고갔던 슬리퍼 끈이 끊어져버리는 긴급상황 발생 ㅇㅁㅇ;;

시간은 12시 직전, 어디서 신발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찌어찌해서 불편하게 모텔로 이동했다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진짜 온갖 추한꼴은 다 보여버린 셈이니 이거 원 내 특기인 이미지관리는 어느 순간부터 완전 사라지고;;;(다음 날 해운대에서 햄버거 먹다가 "누나 입가에 너무 많이 묻었어"하면서 닦아줄 때의 민망함이란!!ㅜㅜ)

 

젊은 성인 남녀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서 있으면 벌어질 일 따위가 생길 사이가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방은 하나만 잡았는데; 카운터 뒤에 비디오 테잎이 있더라;

거기서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던 건 바로 이놈!!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라마 삼쑤니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삼순이에서 미지왕이 나온 후 여기저기서 봤던 기사에서 "시대를 잘못탄 영화"라는 글 때문이었을까, 정 심심하면 이거라도 보자고 이 놈을 뽑아서 갖고 갔다;(공포영화로 보려고 하니까 하도 무냉이가 기겁을 하기도 했고;)

 

아무리 별 사이 아니라도 모텔방에서 티비 보면서 뻘쭘해 하고 있다가 결국 미지왕을 틀었는데;;

진짜 오티엘이었더랬다- _-;;

웬만하면 한 번 보기 시작한 건 끝까지 보는 편인데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ㅜㅜ

초반에 10분인가 15분인가 보다가 때려치우고 그냥 불 끄고 자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잠자리를 심하게 가린다는 것!!!ㅜㅜ

○->이런 모양으로 생긴 침대(침대는 네모나다는 상식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의 양 끄트머리에 하나씩 누웠는데 눈만 말똥말똥, 잠이 안오는 것이었더랬다;

그런데 그 녀석은 "난 모르겠는데 나 디게 피곤하면 잘 떄 이간대~"라는 말을 남기고 잘 자더라(...진짜 이를 갈아서 깜짝깜짝 놀래고;)

 

어찌어찌해서 잠이 들만하면 그 넘이 덥다고 에어콘 켜고, 내가 춥다고 징징대면 다시 끄고, 켜고, 끄고를 반복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좀 있다 나가야 하는데 신발이 퍼뜩 떠올랐다- _-;

마찬가지로 그 새벽에 신발을 파는 가게가 문을 열 리가 없지 않은가!!

급한대로 순간접착제라도 사와서 끈 붙여서 오전만이라도 버텨보자라는 생각에 무냉이 신발을 꿰고 가방만 메고 건물 밖으로 쭐레쭐레 걸어나갔다(...욕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이제부터 진짜군요, 이제까지는 다 서론= _=;)

 

편의점을 찾을 수가 없어서 건물들 많은 쪽으로 걸어갔는데 24시 슈퍼가 하나 나왔다, 그런데 카운터에서 주인으로 추측되는 할아버지가 꾸벅꾸벅 졸고 계시지 않은가;

괜시리 깨우기 미안한 마음에 방향을 돌려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지 1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옆 도로를 달리던 어떤 차가 서면서 운전하던 아저씨가 "예쁜 아가씨가 이 시간에 어디 가요? 가시는 데 까지 태워드릴게요, 타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더랬다

새벽 4시가 넘어서, 왜 그런 말을!!

순간 살짝 무서워지기도 하고 어이도 없고 해서 괜찮다고 가던 길 가시라고 하고 그냥 몸을 돌려서 가던 길을 계속 갔더랬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어깨를 툭 치지 않는가

진짜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돌아보니까 좀 전에 그 차 몰던 아저씨였다= _=;

괜찮다고 하는데도 자기 나쁜 사람 아니라고 진짜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다면서 내 손목을 질질 끌고가는 센스란;(나쁜 사람이 자기 입으로 나쁘다고 얘기하고 다니냐, 응?-0-)

 

어찌어찌 뿌리치지 못하고 그 차에 타게 됐는데(이 떄 부터 심하게 실수-_-) 가는 곳 까지 태워다준다길래 편의점 찾는 길이라고 하니까 자기가 찾아주시겠단다

다행스럽게도 모서리를 돌자마자 바로 편의점이 눈에 띄였고, 저기라고 이제 내려달라고 하니까 뭘 살거냐고 자기가 사다주시겠단다

괜찮다고, 내가 살 거 사겠다고 이제 가 보시라니까 다시 또 데려다주시겠단다

"바로 앞에 여관에 있는데요"라고 쏘아붙이지 못한 게 내 잘못OTZ

 

편의점에서 순간접착체랑 딸기우유, 커피우유를 사들고 나왔는데 그 아저씨가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ㅜ_ㅜ

모른 척 냅다 뛰었어야 했지만 또 뒤에 따라와서 잡을까봐 주저주저하면서 다시 그 차를 타게됐다(→완전 바보ㅜㅜ)

집이 어디냐고,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해서 창원이라고 하니까 이 시간에 그 까지 어떻게 가겠냐고 해서 동생이랑 바다보러 왔다고, 이따 버스 다니면 해운대 갈 거라고 하니까 자기가 태워다주겠다가 뭐라나

괜찮다고, 남자친구랑 왔다고 하니까 자기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면서 모텔 가까운 도로에 세워주더라

혹시나 차 문 잠글까봐 진짜 무서웠고, 핸폰 안갖고 온게 그렇게 후회될 수 없었고, 얼굴 한 번만 제대로 보자면서 내 머리카락 계속 만지고 하는데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의외로(?) 무사히 내려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냅다 뛰어서 모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진정한 공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던 것이었다ㅜㅜ

엘리베이터를 타서 6층을 누르는데 저어기 건물 입구에서 그 아저씨가 "잠깐만요"를 외치면서 막 뛰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진짜 난 공포영화에서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러대는 여주인공이나 엑스트라의 심정으로 닫힘 버튼을 미친듯이 눌러댔지만 그 아저씨가 한 발 빨랐다ㅜㅜ

문히 닫히는 찰나, 그 아저씨의 손이 엘리베이터 사이로 쑥 들어왔고 난 정말 패닉상태에 빠져서 덜덜 떨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와서 "밝은데서 아가씨 얼굴 한 번 보고싶어서 그래요"이러면서 계속 내 얼굴을 만지려고 하는 게 아닌가

고개를 푹 숙이고 "왜 이러세요, 진짜 안돼요, 저 올라가봐야 되거든요, 보내주세요"라고 하면서 울먹울먹거려도 들은 척도 안하고 내 어깨며 가슴이며를 더듬다가 진짜 왜 이러시냐고, 소리지르고 경찰 부르겠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찔끔 하면서 떨어져나가더라

 

엘리베이터안에서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채 덜덜 떨면서 난 "미친 새끼"를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욕을 해서라던가, 제대로 떼내지 못하고 상황을 그렇게 만든 내 불찰인걸 알지만, 그래도 입 밖으로 욕지거리가 삐져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래봤자 미친 새끼, 또라이가 다였지만;)

 

...다시 방에 들어갔을 때 쌕쌕거리면서 잘 자고 있는 류문형군이 괜시리 얄미웠다-.-;

 

 

 

난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때 마다, 혹은 이런 비슷한 얘기를 들게 될 때 마다  정말 사람을 혐오하게 된다

특히 나이에 상관없이 정욕에 미친 남자들은 정말 최악이다

 

딱히 밖에다 자랑스럽게 할 얘기는 아니지만, 이 날의 공포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에는 이런 또라이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무모한 포스트 하나 올림!!

 

...여담이지만, 문형군이 깊게 잠든데다가 새벽에 비가 많이 와서 새벽바다행은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