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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27. 01:17

어쩐지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


요즘 고등학교 동창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물론 만나는 사람은 정해져있으며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주 만나는 거니, 흠, 뭐, 그리 자주라고 하기는 그런가^^;


어찌됐든, 오래 알던 사람을 만나면 과거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고 당연히 내 과거도 나오는데 그 때 마다 흠칫 놀라는 내 모습, 아, 이것 참!^^;
나름 사소한 기억력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 거였던가orz


성혜의 증언.

야자시간에 컵라면을 끓여먹을 때 매운 게 싫다고 스프도 반정도만 넣고 물도 많이 넣고 해서 먹던 내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단다.;;;
지금도 매운 거 잘 못먹냐고 묻는데 이것 참;;;

고3 때 매운 거 먹다가 운 기억은 있는데 라면 먹으면서도 저 유난을 떨었단 말인가, 으음;;
물론 지금도 라면 끓일 땐 스프 다 안넣긴 하지만 ㅠ_-
매운 거랑 뜨거운 것도 잘 못먹긴 하지만ㅠ_-



현정이의 증언.

시험기간이고 시험기간이 아니고 펑펑 잘 놀아대던 내가 결국은 시험을 망치고 우울해하더란다. 그러고 잊고 사나 싶더라니 성적표를 받아본 후 반에서 10등했다고 죽을 상을 하고 앉아있더라는 것. 아, 이 인간이 이제서야 정신차리고 공부 좀 하려나 싶어서 계속 지켜봤더랬다.

사실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내심 "드디어 니가 공부하는 모습 봤어!!"라는 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정이는 말했다.

"그러고 또 놀더라, 열심히."

......아, 정말 듣는 순간 부끄러웠다.
나름 고3 때는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러나저러나 노는 내 모습이라니ㅠ_-
아니었다고,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이후로 반에서 두 자리는 내 인생에 없다고 얘기해봐도 증거자료가 없으니 안믿는 분위기!ㅜ_ㅜ


"왜, 일관성 있어서 좋잖아!!"라고 항변해봤지만 이것 참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였다.


그러고 또 하나.

평소 나보다 더 심하게 놀던 현정, 시험기간이 다가오니 숙적 영어 과목을 대비하기 위해 필기를 베끼려 마음 먹었단다. 내 영어 성적이 괜찮았던 걸 기억해내고 내 책을 빌려온 현정, 필기는 커녕 밑줄도 제대로 안 그어져있는 새 책에 가깝게 깨끗한 내 책에 경악을 했다나 뭐라나.;;;

아닐거라고, 그럴리가 없다고 항변해봐도 책을 깨끗하게 보는 걸 좋아하는 나다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orz
거기다가 고2 때 영어 담당은 허남민, 고3 때는 이성곤 이었으니;;;
그렇다해도 새 책 수준이라니, 너무하잖아. ㅠ_-;;(지금 생각해보니 고3 때는 문제집을 봤었기 때문에 답 표시도 제대로 안하고 새 책에 가까웠던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뒤늦게 "나 2학년 때 생물은 필기 진짜 열심히 했어, 선생님한테 칭찬도 받았는데!!"라고 외쳤지만 "생물 필요없거든, 영어만 필요했거든."이라는 냉정(?)한 만두의 대꾸.
크윽, 우리 친하잖니, 친구야;ㅅ;


권화의 증언.

중학교 때 소심한 성격 덕에 안좋은 일까지 있었다던 권화. 고등학교 와서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찰나 옆자리에 내가 앉아있었더랜다. 특이하게도 1학년 때 담임 권정호 선생님은 번호순으로 자리에 앉혔다, 덕분에 키 차이 거의 20cm 나는 꼰이랑 짝이 될 수 있었지만.

어떻게 친해질까 고민을 잠깐 하던 찰나 활발하고 붙임성 넘치는 내가 친한 척을 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고. 여기저기 뭐 할 때 마다 같이 다니고 하면서 점점 친해졌다고.
그래,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스스로 "스펀지"라고 칭할 정도로 주변 사람의 행동이나 성격을 잘 흡수하는 권화. 나랑 친하게 지내면서 애들을 갈구게 되고 먹이사슬의 상층부에서 군림하는 법을 배웠다나 뭐라나.

내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아닌데 본인이 나를 만난 이후로 다른 사람을 갈구기 시작했다니 믿는 수 밖에. 이것 참.


"니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 나야? 그럼 나한테 평생 고마워 해!"라고 얘기하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역시 갭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

권화씨, 당신은 진정 청출어람이야!ㅋㅋㅋ



고등학교 때 사귀어서 친하게 지내던 애들 중 몇몇은 연락이 끊기고 몇몇은 연락이 지속된다.
대학 처음 가서는 꽤나 여러 사람을 만났었는데 몇 번의 잠수기를 거치고나니 남은 친구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물론 양끗 친한 척 하다가 나한테 죄짓고 날 쌩까는 삐리리한 인물들도 몇 분 계신다.) 곁에 남아있는 친구들아, 사랑한다믄스, 우리 결혼할 때 선물 뭐해줄까?ㅋㅋㅋㅋ

어찌됐든, 지금과 비교해보면 그 때가 정말 순수하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고 할 수 있던 때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