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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26. 17:17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 최혁곤 외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 8점
최혁곤 외 지음/황금가지


영화나 소설을 볼 때 꼭 남자여자 편을 가르자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로맨틱 코미디'나 '할리퀸류의 로맨스'는 여자 쪽이, '액션'이나 '스릴러'는 남자 쪽이 더 선호하지 싶다. 나는 별나게도 어릴 때 부터 "여성스러운"(분홍색이라던가 프릴, 하늘하늘하거나 공주풍, 인형놀이) 것은 딱히 좋아하지 않았었고 두 살 어린 남동생과 함께 로보트 놀이를 하거나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의 영향일까 나이를 먹은 지금도 내 취향은 로맨틱 코미디 보다는 호러나 스릴러 영화다.

그래서 결국 얘기하고 싶은 건 제목에도 썼듯이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이라는 책이다. 작년 여름 이맘 때에는 '한국 공포문학단편선 2'가 나왔던 것 같은데 올해는 조금 빨리 추리스릴러 단편선이 출판되었다. 밀클 카페 눈팅 결과 조만간 공포문학단편선 3가 나온다고 하니 목을 쭉 빼고 기다리는 재미가 있을지도. 이러나저러나 무서운 이야기는 여름에 접해야 제맛이니까 말이다.


추리스릴러 단편선에는 총 10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여느 단편집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재밌게 잘 읽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추리와 스릴러, 그리고 공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기에 공포문학선에 가도 괜찮을 것 같은 이야기도 더러 눈에 띈 덕분이리라.


우선 첫 이야기, '푸코의 일생'.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살인 청부업자의 얘기라고 하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정규교육의 힘일까, 푸코라는 단어를 본 후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푸코의 진자였다. 하지만 얘기 속의 푸코는 듣지도 짖지도 못하는 유기견의 이름이었다. '버려졌다'는 것에 자신과의 동질감을 느낀 주인공이 함께 사는, 감정이입의 대상이랄까. 살인청부업자로 살고 있는 주인공, 한 번의 실수로 인해서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게 된다. 언뜻 아닌 듯 두 편의 에피소드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패턴은 알고나면 "뭐야, 뻔하잖아"싶지만 모르고 보면 "아하~" 싶을지도.


그 다음은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의한 불가사리'. 우선 형식의 독특함에 10점 만점 기준, 10점을 주고 싶다. 처음엔 재미없겠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괜찮아져서 더 마음에 들었달까. 평소 밀실살인에 큰 관심이 없어 설렁설렁 읽어내려간 게 미안할 정도로 후반부에 정독을 하게 된 작품. 추리 잡지의 형태를 빌려서 소설을 진행할 줄이야! 그나저나, 그래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세 번째 얘기는 '암살'. 제주도 4.3 사건을 소재로 갖고 와서 한 군인의 죽음에 대해서 파헤치고 있다. 나름 탄탄했지만 4.3 사건에 대한 생각보다는 지루하게 진행됐지 싶다. 나는 4.3 사건 하면 어째선지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라는 단편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암살'이 재미없게 느껴진 이유는, 이 소설이 순이 삼촌 처럼 만큼은 내 마음에 와닿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네 번째 '싱크홀'. 동굴이 붕괴되어 생긴 구멍을 싱크홀이라고 하나보다. 어쩐지 공포문학단편선 2권에 있던 '길 위의 여자'가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감금'을 소재로 다루었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되게 성격 안맞는 사수랑 남주인공의 이름이 같아서 감정이입 해가면서, '이런 나쁜 놈!' 해가면서 읽은 작품. 그러고보니 영어 사전에서는 싱크홀이 '악의 소굴'이라는 뜻도 있다. 작가가 의도한 건 '악의 소굴'이었을까?


'안녕 나의 별'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 연예인에 미쳐있던 한 소녀가 그에게서 벗어나 정도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긴데, 살인 사건을 접목시켰다. 빼어난줄은 모르겠으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도 여자지만 글을 읽으면서 와닿는 건, 역시 여자는 무서운 존재라는 거^^;

나머지 작품들은 그냥그냥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트랜스젠더와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 '거짓말', 현대가 아닌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불의 살인'과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리니', 몇 년 전부터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대두된 스토킹을 다룬 '일곱 번째 정류장', 어쩐지 영화 '본 얼티메이텀'이 생각났던 '오리엔트 히트'.


한 달 전부터 조금씩 덧붙여서 쓰다보니 어째 글이 상당이 난잡해진 기분. 책을 읽은지도 오래 되서 띄엄띄엄 떠오르는 기억에 의존해서 쓰다보니 어 따로국밥이 되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끙!

어찌됐든, 이번 단편선도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 더더욱 요즘같이 바빠서 장편 소설 한 권도 제대로 못 읽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단편선이 훨씬 더 몰입해서 즐기기 편하기 때문이다. 늘 단편집을 읽으면 하는 말이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다 있는 종합선물세트를 접하는 기분을 또 한 번 맛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들의 나이는 나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어쩌면 나와 시대를 공유한 그들의 작품이기에 더 기대되고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