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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 8. 01:33

절대 잊어선 안되는 이름들. 그리고 1987년 6월10일

절대 잊어선 안되는 이름들. 그리고 1987년 6월10일

한 학생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다른 학생이 그를 위태롭게

잡고 있다.

1987년 6월 9일... 숨막히는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아직은 앳된 모습을 벗지못한 저 청년은 왜 피를 흘리며 안타깝게 쓰러져만 가는가.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경, 이한열(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년) 군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b>



1987년 6월 9일, 1,000여 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국민평화대행진(6·10대회)을 하루 앞두고 이 대회에 출정하기 위한 연세인결의대회를 마친 뒤,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해 7월 5일 뇌 손상으로 인해 심폐기능이 정지됨으로써 결국 사망하였다.



1986년과 1987년은 학계·문화계·종교계 등 각계각층에서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었던 때로, 1987년 5월 18일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직후에 발생한 일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후 5일이 지난 7월 9일 '애국학생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학생·시민·정치인과 재야단체 회원 등 총 7만여 명이 참석하였고, 시신은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묻혔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에게 더욱 깊은 불신감을 심어주었고, 이에 분노한 국민들의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을 번져나갔다.

이어 전국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이는 등 이른바 6월항쟁이 정점에 이르게 되자, 전두환 정권은 시국 수습을 위해 6월 29일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었던 노태우로 하여금 대통령 선거의 직선제 개헌을 발표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6·29선언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할말이 없데이' 라고 아버지는 울부짖지만,  민주화 투쟁의 불씨가 된 23살의 영원한 청년 박종철.

열불 나는 세상이 물 속에 잠겼다/우리 아이가 익사했다/뜨거운 정열과 불타는 의지가 물 속에 잠겼다/우리 아이는 대학 3학년/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다 그만/짐승의 발톱에 물려 죽었다

우리는 분노한다/이 시대의 인간임을 포기하고 싶다/(후략)’


(1987년 2월 연세대 2학년 이한열이 쓴 ‘박종철’이란 제목의 습작시.)



박종철의 죽음 은폐에 온몸으로 저항하고자 거리로 나왔던 이한열.
전경이 쏜 최루탄 직격탄이 뒷머리에 꽂혀 거리에서 쓰려졌다.
“뒷머리가 몹시 아프다.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이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한 그가 분노하던 세상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두 청년의 죽음에 수많은 이들은 피눈물로 항의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종철이를 살려내라!' '한열이를 살려내라!' '군사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
훗날 '6월항쟁'이라 불리는 민주화 항쟁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돌을 들고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트를 넘어 전국의 거리는 민주화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87년 6월항쟁은 끝내 군사독재로 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시민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수 없었다. 너나 할것없이 최루탄과 무기,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항쟁에 참여했다.)





< b>(당시 제자들의 죽음을 보고 일어선 연세대 교수님들)



(대기업직원들인 넥타이부대의 시위참여)



(집회를 개최하고 시내에 나가려다 교문을 봉쇄한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있는 여학생들)


(1987년 6월 26일 부산 문현동 4거리에서 경찰이 다탄두 최루탄을 일제히 발사하자 군중 속에서 갑자기 태극기가 펼쳐지고 그 태극기 앞에 위통을 벗어 던진 청년이 '더 이상 최루탄을 쏘지 마라'며 아스팔트를 달렸다.)





(고 박종철 영결식)


(고 이한열 영결식)







그대 왜 가는가

                   이한열

그대 왜 가는가
어딜 가는가
그대 등 뒤에 내려깔린 쇠사슬을
마저 손에 들고 어딜 가는가
이끌려 먼저 간 그대 뒤를 따라
사천만 형제가 함께 가야 하는가.
아니다.
억압의 사슬은 두 손으로 뿌리치고
짐승의 철퇴는 두 발로 차 버리자.
그대 끌려간 그 자리 위에
민중의 웃음을 드리우자.

그대 왜 갔는가.
어딜 갔는가
그대 손목 위에 드리워진 은빛 사슬을
마저 팔찌 끼고 어딜 갔는가.





출처 : 베스트 드레서 아나만나유반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