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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26. 18:34

뿌리 깊은 나무 - 이정명

뿌리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밀리언하우스

이벵신의 강림으로 손에 떨어진 책.
시험의 압박으로 읽기를 미뤄놓고 있다가 시험 결과야 어떻든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니 집에 와서 드디어 이 책을 펴들고 2시간 걸려 겨우 헤치우다.
잠도 모자라고 마음도 싱숭생숭한 것이 집중 안되서 꽤 곤란했었다지.


지난 번 '반야'에 이어서 또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반야가 숙종대에서 시작해서 영조대를 배경으로 하고 시간도 쑥쑥 잘 지나가서 굵직한 사건이 쉬지 않고 터지는 반면, 뿌리 깊은 나무는 오로지 세종대왕대, 그것도 1443년 훈민정음 반포일 직전의 며칠 동안의 얘기를 진득하게 풀어낸다.


2권까지 마저 다 읽고 리뷰를 써야 마땅하지만, 따로 주문한 2권이 언제 올지 모르므로 방금 내려놓은 1권 중심으로 일단 얘기해보고자 한다.(이래서 시리즈물은 한 번에 질러줘야 되는거다;)


우선 책 허리띠에 씌여진 말을 소개해본다.

충격과 감동, 꼬리를 무는 입소문, [다빈치 코드]보다 놀랍고 [장미의 이름]보다 재미있다!
2006 네티즌 선정도서

뭐, 대강 이쯤이다.
원래도 추리소설을 좋아하며 역사물 또한 내 취향인데, 한국형 팩션인, 그것도 추리소설의 형실을 빌고 있는 이 소설은 일단 외형적으로는 내 취향 100% 되시겠다.
장미의 이름은 어디까지 보다 말았는지 기억이 모호하고 뒤늦게 주변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해서 접하게 됐던 다빈치 코드도 허술한 헐리우드 영화 한 편 보는 느낌이었기에(결국 영화화되긴 했지만ㅎㅎ;) 결국 이 책도 그러면 어떡하나 조금 걱정도 됐었다.


음, 관련없는 서두가 너무 길었다. "책"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이 책은 차례가 다른 책에 비해서 굉장히 특이하다. 소제목과 페이지의 나열이 일반적인 책의 목차라면 이 책은 큰 장 안에 작은 소제목이 없이 번호로만 나뉘고 그 챕터 안의 내용을 몇 줄로 요약하고 있다. 그 소제목들만 읽어보면 대강의 줄거리가 파악 될 정도.  

주인공은 강채윤이라는 말단 겸사복 청년이다(겸사복은 조선시대 기병 중심의 왕실 친위군이라 한다.). 어린 시절 세종이 지은 '농사직설'을 바탕으로 농사를 지어 그 효과를 체득한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함길도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는 야인들의 침입에 결국 그의 가족은 살해당하고 그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야인들에 맞서싸운다. 그러다가 김종서 장군의 밑에 들어가 병졸 노릇을 하다 그의 소개로 궁에 들어가 겸사복의 지위를 얻게 된다.

사건은 그가 숙직을 맡던 어느날 밤 궁내에서 살인사건이 밝혀지면서 시작된다. 왕의 친애를 받은 집현전의 말단 학자가 가슴에 칼을 꽂은 채 우물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말단 겸사복인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사체의 상태, 그리고 검시결과, 주변 정황을 미루어 꼬리를 하나 잡아내나 싶으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지니 정말 사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실제 강채윤이라는 인물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바 없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국사 교과서 혹은 야사에서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들이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봤던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 그네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데 어찌나 기뷴이 묘하던지.

국사책에서 "시험용"으로 외워야했던 했던 단편적인 지식들이 총출동되서 하나의 짜임새있는 이야기로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은 꽤 묘했다. 게다가 국정교과서에서 하는 애기와는 살짝 다른 해석들이 돋보이기도 했다. 늘 자주민족, 독립국가를 강조해왔던 조선이 사실은 명에게 있어서 속국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나 그 외에 다른 지배층에서 숨기고 싶어하는 얘기들을 까발린 점이라던가 말이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립하고 싶어하는 성향은 조선 후기 근대가 되어서야 나타났다고 생각했는데 성리학자들이 등한시하는 율서산이나 음악 등의 잡학을 장려하고 고유의 활자를 만들어 낸 등을 미루어보건데 세종대왕 때 일찌기 그것을 꿈꿨다고 하겠다.

시험용으로 배웠던 지식에서 조선 초기의 훈구파들은 다른 학문에 관대하고 부국강병에도 힘썼으며 자주적이었다는데 소설속에 나오는 그네들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이 책이 신선하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그 외 반인(백정) 가리온이나 무수리 소이 등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들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허준보다 앞서 사람의 해부를 하고, 어의들과는 또 다른 치료법을 가진 가리온을 보고, 또 그런 그를 혐오하는 채윤을 보면서 중세의 서양에서도 그랬지만 동양에서도 크게 다른 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불만을 하나 꼽아보자면,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화가 좀 어색했다는 것 정도?
"~~했어요"라는 현대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전형적인 그 시대의 어휘와 어투를 사용하기도 하니 이도 저도 아니어서 못돼먹은 성질머리에 마음에 걸리더라는 거다. 또 직위나 서적, 사건에 대해서 주석을 달아준 것은 좋았지만 사전을 찾아봐야 알 수 있는 단어도 꽤나 있었다는 것. 뭐, 문맥적으로야 대강 파악은 되지만 그래도 어려운 어휘가 꽤나 눈에 띄였다. 하지만 예쁜 고유어를 많이 쓴 건 칭찬할 점!!


일단 1권을 다 읽고난 소감을 얘기하자면, 역시 소문난 잔치에는 생각보다 먹을 게 없다, 정도일까? 혹은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수도 있겠지.
어찌보면 이제까지의 상식이나 통념을 뒤엎는 발상임이야 틀림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알려진 사실의 논리적인 배열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물론 이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일깨운 것은 높게 산다.).
아직 2권까지 다 보지 못했으니 섣불리 판단할수야 없는거니 일단 2권 주문 완료.
다 읽고 괜찮으면 다시 얘기하는거고, 귀찮으면 마는거고 ㅎㅎ;

또 하나 사족을 덧붙인다면, 이 책에 대해서 알았을 때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어? 별순검 소설판?!"이었다. 조선시대 과학수사, 비슷하잖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