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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28. 23:44

만화 토지 1부 1권 - 박경리 글, 오세영 그림

만화 토지 제1부 1
박경리 원작, 오세영 그림/마로니에북스

요즘 국어 교과서에도 여전히 토지가 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1999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에 받은 국어(하) 교과서에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실려있었다.

뭐, 대한민국의 여느 고등학생들이 안그랬겠냐만, 문학 작품이 아닌 "시험 대상"으로 열심히 밑줄 치고 주제 달달 외워가며 배웠었고, 국어 선생님이 시간나면 토지 꼭 읽어보라고 말씀하셔서 정말 읽기 시작했었다.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에 이재은이 나왔던 토지 드라마에 대한 기억도 이 도전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토지 완독을 목표로 삼았고 실제로 정말 전권 16권을 다 읽어내고야 말았다. 읽다가 정말 힘들어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포기할까도 했었지만 오기가 발동해서였을까, 혹은 '나 토지 다 읽었어'라고 자랑하고 싶은 알량한 마음에서였을까, 어쨌든 다 읽어낸 것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억지로 읽어내려간 부작용이었을까, 시간이 지나도 토지의 내용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 거였다. 거기다 예전에 읽느라 힘들었다는 기억만이 남아있어서 다시 도전할 엄두가 안나기도 했었고 말이다.


이번에 마로니에 북스에서 토지를 만화로 출판한다는 기획아래 1부 전 7권을 출판했고 운좋게도 1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토지 1권



책이 좀 크고 종이 질도 좋으며 거기다 올컬러다!!+_+
아쉬운점은 봉투에 담겨서 배송된지라 모서리 한 곳이 구겨져있다는 거ㅠ_ㅠ

택배가 오자마자 뜯어서 죽 훑어봤는데 박경리씨와 오세영씨의 말, 그리고 박완서씨와 박재동씨의 추천사, 작품 소개와 등장인물 소개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만화가 시작되며 후미에는 부록격으로 토지의 역사적 사건과 주제를 소개한다. 한 번 이라도 토지를 접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토지에는 굉장히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1부의 등장인물 소개만 빽빽하게 5바닥을 기록하고 있으니 그들을 다 기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게다.


대강 책을 훑어본후에 정독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배웠던 그 부분이 이 만화 토지 1권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던지라 '아, 맞아, 그랬었어' 하면서 기억을 되새기며 볼 수 있었던게지.


굳이 줄거리 언급은 할 필요 없을테니 생략.
줄거리나 주제 얘기를 하고 싶다면 소설 토지를 다시 읽고 얘기하면 될테니까.


내가 본 것은 '만화' 토지니까 만화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우선 오세영씨는 이번 기회에 알게 된 만화가다. <부자의 그림일기>와 <오세영 중,단편 만화문학관>으로 수상경력이 있으신 분이라하고, 직접 <부자의 그림일기>를 찾아보니 난쏘공류와 흡사해보이는, 내 가슴을 짠하게 할 내용의 만화였다.

추천사에 있는 내용인데 이 분은 토지를 그리시기 위해서 소설에 나오는 배경이나 장면 하나하나를 실제화하는 데 굉장히 신경을 쓰셨다한다. 그래서 책에서도 세세한 컷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으신 게 확연히 드러난다. "예쁜" 그림체는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정감있고 맘에 드는 게 팬이 되버릴 것 같은 예감.

앞에서 수많은 등장인물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만화 토지를 본다면 이 수많은 등장인물도 그닥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박경리씨가 묘사한 인물들의 특징을 그대로 따서 그림으로 옮기신 덕분에 모든인물에 개성이 넘친다. 특히 '용이'는 보는 내가 두근두근 할 정도의 미남이었다. 한참 보다보니 '아, 맞아, 용이가 미남이라는 설정이었지'하는 기억이 나기도 했다지. 여튼, 병약하고 신경질적인 최치수나 신분상승의 욕심이 많은 귀녀, 용의 본처 강청댁, 곰보 목수 윤보, 모두모두 아직까지 내 눈에 선하다. 어찌보면 글자만 나열된 소설의 한계를 확실히 뛰어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화니만치 장면 전환도 빠르고 어린이들이 보기에도 어른들이 보기에도 훨씬 이해하기엔 쉬울 것이라고 감히 자신해본다. 소설 토지, 혹은 청소년용 소설 토지가 부담스럽다면 만화 토지로 토지의 세계에 입문하는 것은 어떨까?

최근에 다음 뉴스에서 박경리씨가 만화 토지를 보고 굉장히 만족하셨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 까다로운 분의 눈에 든 정도니 오죽 혼신의 힘을 쏟아서 그리셨을까, 아마 만화 토지를 보게 되는 사람은 토지의 매력에 풍덩 빠지게 될 게다.
(기사 주소: http://news.media.daum.net/society/region/200705/21/chosun/v16803400.html)


이제 만화 토지는 갓 걸음마를 뗐다. 앞으로 서희와 길상, 그리고 다른 인물들의 앞날에는 멀고도 험한 길이 펼쳐져있다. 눈으로나마 그들을 따라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내 무식함에 대한 부끄러운 사족을 몇 개 덧붙여보자면, 토지의 시작점이 1897년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국사를 배웠지만 전혀 토지와는 연결하지 못했었고 또 그 때는 오로지 책장을 빨리 넘기는데만 집중했었기에 대체 어른들이 토지를 왜 좋아하고 추천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접한 토지는 내게 훨씬 생생하게 다가왔다. 1897년이라는 어중간한 시대적 상황도, 문호개방과 을미개혁,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의 급격한 사회변화와 실제 그 변화와는 동떨어진 시골 마을의 생활, 그리고 윤보가 가담했었다는 동학당.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걸 절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겠지.

교과서에 정확히 어디까지 실려있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래도 만화 토지를 보면서 '아, 맞아, 그랬었어' 하면서 새록새록 되살아다는 옛기억에 혼자 흐뭇해하기도 했다. 왜 그 시절의 나는 오로지 서희와 길상의 애정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했었을까? 정말 어리고 유치했었나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