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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 29. 06:22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 조지 펠레카노스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조지 펠레카노스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하드보일드의 정확한 정의가 뭘까?
예전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드보일드 하드럭'을 읽으며 '하드보일드'의 의미가 궁금해져서 사전을 찾아봤었는데 '무미건조한' 정도의 개념이어서 전혀 납득을 못했었던 기억이 난다.
방금도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하드보일드hard boiled [명사] 문학이나 영화 따위의 창작에서, 감상(感傷)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인 태도나 문체로 사실을 묘사하는 수법. (다음 검색)


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하, 감정보다는 객관적으로 묘사하니, 결과적으로 무미건조와도 맞아떨어지게 되는구나. 누아르(noir, 느와르가 표준어가 아니라니!)와도 일맥상통하게 되려나?


왜 하드보일드라는 말로 글을 시작했냐면, 이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이하 살인자)'의 소개에 하드보일드 소설의 수작이라는 문구를 봤기 때문이다.


이 살인자는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밀리언셀러 클럽'의 올해 3월 출간작이다. 대부분의 시리즈물은 첫이미지가 중요하기 마련, 제일 처름 손을 댔던 '밀리언셀러 클럽'의 '13계단'이 꽤나 마음에 들었기에 망설임 없이 살인자와 후속작 '지옥에서 온 심판자' 두 권을 빼들었다. 그러고 나름 기대에 가득차서 두근대면서 읽어갔지만 웬걸, 그 동안 너무 일본소설, 혹은 우리나라 소설에 익숙해진 탓이었을까, 읽는데 꽤 시간이 꽤 걸리고 말았다. 손에 잡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끝낸 13계단과 사뭇 비교되는 결과다.^^;


워싱턴 디시, 밤에 순찰돌던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은 한 남자가 사망한다. 알고보니 그 또한 디시의 경찰. 둘 다 경찰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가해자는 백인, 그리고 피해자는 흑인이라는 것. 여러 정황을 참고하여 가해자는 '무죄'로 밝혀졌고 피해자는 알고보니 비리가 많은 경찰이었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이 '흑인이 그러면 그렇지.'라고 여기는 분위기고 사건은 종결되지만 피해자의 유족은 '이건 말도 안되는 모함'이라며 디시의 한 탐에게 진실을 파헤쳐달라는 의뢰를 한다. 이 탐정이 바로 이 시리즈의 주인공 '데릭 스트레인지'다.

전직 경찰이었던 데릭은 별 소득이 없을 걸 알면서 의뢰를 받아들이고 가해자인 경찰, '테리 퀸'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면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여러 정황을 따져보니 테리에게는 정말 큰 실책 따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사건에서 뭔가 찜찜한 냄새가 난다. 알고보니 여러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그 결과 디시 경찰은 거물급 마약상들을 잡아들이고 경찰 내부의 부패를 발견하며 이 건은 마무리된다.


개인의 심리묘사나 잘 짜여진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이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구르고 싸움박질하는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실제로, 원작자가 제작에 참여해서 영화 제작중이라고하니 조만간 영화 소식도 들을 수 있지 싶다.

하지만 내게 이 영화를 보겠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no'다. 워낙 어설픈 권성징악 & 백인과 미국 만세라는 공식의 헐리우드 액션물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원작을 보면서 몰입되거나 흥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는 것도 한 몫 했다.


우선 이 책에는 깜짝 놀랄만치 많은 비속어가 등장한다. 처음에 볼 땐 "아니, 무슨 욕이 이렇게 많이 나와?"라고 깜짝깜짝 놀랐지만 어느 정도부터는 그러려니 하고 납득하게 됐었고, 에필로그 후에 나오는 역자의 말에서도 역자가 스스로 '욕쟁이 번역가'라고 밝힐 정도다. 평소 딱히 고상하고 착하고 바른 것들을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난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듣기 좋은 것도 한두번이기 마련인데 난무하는 욕설이라니, 어이쿠.

또 살인자에는 굉장히 많은 음악이 나오고 그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하고 또 예찬하지만 이 중에서 내가 아는 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도 안됐다. 책이나 영화도 아는 얘기를 해야 공감도 하고 재미나는데 내가 모르는 얘기만 줄창 해대고 있으니 도저히 몰입할 수 없었던 원인 중의 하나.

마찬가지, 차 얘기도 줄기차게 하는데 내가 차에 대해서 아는 건 트럭과 승용차를 구별하는 것 정도. 잡다하게 차에 대해서 늘어놓는데 '어쩌라고'가 절로 나오던걸.

그리고 이야기의 70% 이상에 등장하는 테리와 데릭은 '서부극' 마니아. 서부극 하면 '보안관 장고' 정도 말고는 생각도 안나는데 마찬가지, 주구장창 '황야의 7인'이 어쩌고저쩌고, 서부극 얘기를 해서 건성으로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 외 각종 마약과 뒷골목 얘기 또한 무시못하게 나와주시니, 문화적, 정서적 차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 어찌됐든 정말 이 소설은 말도 못하게 적나라한 소설인게다.
그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려대니 오히려 이게 하드보일드구나 하는 깨닳음이 올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리뷰를 쓰냐면, 미국 사회에 아직까지도 뿌리깊이 박혀있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아주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고, 나도 당연시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철퇴...까지의 충격은 아니라도 여튼 반성의 기회를 줬기 때문이리라.

데릭은 테리에게 '만약 크리스토퍼(피해자)가 백인이었어도 자네는 망설임 없이 총을 쐈겠는가?:라고 묻는다. 처음 테리는 'NO'라고 단언하지만 사건을 다 해결한 후, 그 당시의 자신과 다시 한 번 직면한 후 충격을 받게 된다. 뿌리깊이 각인되버린 '백=선, 흑=악'이라는 공식, 이는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의 폐단의 하나겠지. 어찌보면 백인들이 흑인과 같이 여기는, 아니 혹은 더 무시하는 유색인종인 내게도 흑인보다 백인을 더 긍정적으로 여기는 사고가 잠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등장인물의 80% 이상이 흑인이라는 점, 으례 주인공은 백인, 흑인은 보조자 내지는 범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편견을 철저히 깨부숴준다. 아마 백인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만 나오지^^;




으, 읽고나서 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그만, 글이 너무 길어졌다.

차, 서부물, 범죄소설, 헐리우드 영화를 좋아한다면 강추.
잔잔한 심리묘사, 치밀한 두뇌게임, 끝내주는 반전을 기대한다면 비추.



참, 번역한 아저씨에게 불만이 있다면, 내내 '주아나'로 나오는 아가씨의 이름이 사실은 '후아나'가 아니었을까 한다는 것. 라틴계 혼혈인 아가씨 이름인데, 라틴계 이름의 발음을 생각해보면 후아나가 더 맞지 않을까요??(Jose는 조세가 아니고 호세듯이!!)


이 작품의 원제는 'Right as Rain'이다. 무슨말인고 하니, perfectly all right or in order, 완벽하게 잘 돌아가는 정도가 되려나? 원제와 번역본의 제목에서의 아무 연관성을 찾을 수 없어서 난감했다지^^;

쌩뚱맞은 얘기긴 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별 거 아닌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급기야 죽음까지 선사한다. 본인에게 중요한 문제랍시고 연관된 혹은 무관한 타인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테러 같은 짓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뭐, 반대로 바꿔말하면 내겐 별 거 아닌 일이 누군가에겐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이 되는 거지만 그래도 인간으니 기본인 인륜을 거스르는 짓은 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판 제목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에 대해 곱씹다가 나온 결론, 지 나름대로 옳다고 결론 내려봤자 그건 말 그대로 '자기 나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